주간동아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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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공세 펴다 안 되면 또 도발?

북 2011년 신년사설 강온 대남전략 담아…‘강성대국 총공격’ 북 주민들 생고생할 듯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1-01-10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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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공세 펴다 안 되면 또 도발?

    새해 첫날 북한 주민들과 군인들이 평양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 동상에 참배하기 위해 올라가고 있다.

    북한이 1월 1일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에서 남한에 대해 대화와 위협의 이중전술을 들고 나오자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보수 진영에서는 사설 내용 중 “북남 대결상태 해소” “대화와 협력사업 적극 추진” 등의 언급은 위장평화 공세이고, “핵 참화”라는 대목이 상징하는 대남 무력 위협이 이번 사설의 본질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3일 신년 특별연설에서 “민간인에게 폭격을 가하고 동족을 핵 공격으로 위협하면서 민족과 평화를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은 정반대로 해석한 것 같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전 통일부 장관)은 4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직접 면담을 요청했다.

    보수도 진보도 한쪽 측면만을 강조하고 다른 측면은 애써 무시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양측은 받아들이기 싫은 반쪽을 무시하기 위해 “1994년까지 김일성 주석이 발표하던 신년사와 달리 신년 공동사설에 발표된 것에 큰 무게를 둘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한다. ‘노동신문’이나 군 신문인 ‘인민군보’와 ‘청년전위’에 실리는 사설은 한국으로 치면 ‘한나라당보’나, ‘국방일보’, 한나라당 청년위원회보에 그치는 정부 홍보물이 아니냐는 소리도 들린다.

    신년사설 상당 부분 현실화

    북한 신년 공동사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북한이 과거 사설에서 밝힌 새해 정책 기조가 얼마나 실제 정책으로 현실화됐는지를 돌아보는 게 유용할 것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08년 1월 1일 사설을 비롯해 2010년 1월 1일자까지 3편의 사설을 살펴본 결과, 대남 분야에 대해서는 사설의 기조가 일정 기간 상당 부분 실제 정책에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2008년 사설을 통해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 강령인 10·4정상선언의 이행”을 강조했다. 비록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0여 일 전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 대통령에게 ‘취임하면 6·15와 10·4선언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실제 북한은 그해 6월까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보다 자신들의 요구가 무시되자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을 시작으로 대남 위협 공세를 시작했다.

    이어 북한은 2009년 신년사설에서 남한 정부를 ‘파쇼’라고 하는 등 비난으로 일관했고, 그해 3월 개성공단 통행 차단 조치를 단행하며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를 억류하는 등 대남 위협의 수위를 높였다. 그러다 그해 하반기 이후 남북 정상회담 개최 논의 등 유화 공세로 전환했고, 이어진 2010년 사설에서 전향적인 대화 제의를 내놓았다. 개성에서의 당국 간 비밀접촉이 무산된 뒤였지만 북한은 여권 정치인 A씨 등을 통해 정상회담을 계속 요구하던 때였다. 이 평화 공세는 3월 26일 천안함 사건 때까지 이어졌다.

    과거 사설에서는 대내 정치·경제 정책에서 앞으로 자신들이 할 일을 암시한 대목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2010년 사설은 “경사스러운 10월의 하늘가에 터져 오를 장엄한 축포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단순히 지난해 10월 10일로 예정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일을 언급한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결과적으로는 3대 세습 후계자인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직접 북한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사변’을 예고한 것이었다.

    2009년 사설은 난데없이 1950년대 김 주석의 속도전 구호인 ‘강선의 봉화’ ‘천리마 대고조’ 등의 구호를 끌고 나와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라는 슬로건을 화두로 삼았다. 결국 북한 경제당국은 그해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를 앞세워 주민들을 극한의 노력 동원 운동에 몰아넣었다. 북한은 2008년 사설에서는 “사회주의적 본태(本態)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했고, 이후 자본주의 기풍과 시장경제에 대한 대규모 단속이 시작됐다.

    북한은 어쩔 수 없는 ‘계획’의 사회다. 정치와 경제, 대외관계 등 모든 것이 사전에 짠 치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 따라서 매년 1월 1일 사설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전년 11월 이후부터 말일까지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올해 사설은 2010년 11월부터 12월 말까지 김 위원장과 후계자 김정은, 그리고 주요 엘리트의 ‘집단사고’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10년 사설부터 내용과 형식이 새롭고 젊어진 것으로 볼 때 이전까지 김 위원장이 하던 ‘데스킹’을 아들 김정은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신년사설에 케케묵은 문체가 경쾌한 단문으로 변하고, 갑자기 ‘축구 경기를 잘하자’는 대목이 튀어나오는 등의 변화는 쓰는 자와 감수하는 자가 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이 ‘데스킹’한 흔적 발견

    대화 공세 펴다 안 되면 또 도발?

    곳곳에 표어가 붙어 있는 평양 거리 풍경.

    이런 흐름에 따르면, 북한이 2011년 사설에서 ‘남북 대결상태 해소’와 함께 ‘핵 참화’를 외친 것은 지도부 스스로 대남 정책에서 두 가능성을 모두 가정하고 있는 상태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차례의 핵실험과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 등을 통해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핵 능력을 충분히 과시했기 때문에 우선 전향적인 대화 공세를 편 뒤 잘되지 않으면 언제라도 연평도 포격 같은 무력 도발을 자행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통일연구원도 1일 내놓은 사설 분석보고서에서 “북한의 ‘화전(和戰)’ 양면에 모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연구원은 “북한이 선군정치와 국방력 강화, 군사모험주의를 핵심으로 해 김정은의 업적 쌓기에 나설 것”이라면서 “내부 정치, 경제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유화적인 태도를 취할 동기가 증대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연구원은 북한의 대화 공세에 대해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와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사설대로 된다면 북한 주민들은 또 한 번 고단한 한 해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사설은 내년 김 주석 생일 100주년을 “최상최대의 명절”이라며 “김일성 조선 100년사를 총화”하기 위해 “총진군 총공세”를 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또 2012년 강성대국의 완성을 1년 앞둔 올해를 “인민생활 대고조와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총공격전의 해”라고 강조했다.

    북한 지도부가 2012년 잔치에 쓸 돈과 물자를 쥐어짜기 위해 주민들을 강도 높은 노력 동원에 몰아넣을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2009년 1월 김 위원장의 아들 후계자 지명과 함께 시작된 ‘150일 전투, 100일 전투’보다 더한 것이 온다는 불안감이 엄동설한에 먹을 게 없어 거리로 내몰리는 북한 주민들을 휘감고 있을 것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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