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가 들어서는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주변은 아직 철거되지 않은 대형 축사와 가옥들로 황폐한 풍경이다. (작은사진) 이주한 음성주민들로 구성된 혁신도시대책위원회 사무실.
2월10일 오전 11시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일대. 692만4000㎡의 이 부지는 충북 혁신도시 1공구 구간이다. 2012년 말까지 이전 공공기관의 직원 4만2000여 명이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대형 축사와 가옥들이 빚은 황량한 풍경. 방문한 날은 비까지 내려 분위기가 더 으스스했다. 이곳은 2008년 9월 착공했지만 지장물 철거와 수목 제거, 문화재 시굴조사 등 기본 작업만 마쳤다. 터다지기나 도로 건설 등 본격적인 작업은 시작도 못한 상태. 이처럼 공정이 더딘 까닭은 뭘까.
여기엔 여러 이유가 얽혀 있다. 혁신도시 지구 선정에 대한 정부와 충북의 이견, 보상단가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 분묘와 지장물 철거를 둘러싼 주민 간 갈등 등이 그동안 주요 걸림돌이었는데 이런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는 5월 토지·지장물 조사, 6월 보상계획 공고, 10월 보상 개시를 거쳐 남은 부지를 편입해야 한다. 문화재 시굴조사도 60%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아 속도를 낼 수 없다. 지난해 7월 순차적으로 착공한 2~5공구도 3%대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 따르면 전북 혁신도시는 1공구 공정률이 5.2%이고, 2~5공구는 1%도 안 된다. 경남 혁신도시는 1공구 5.2%, 3공구 2.6%, 4공구 1% 수준이다. 대구, 강원, 울산도 전체 공정률이 6∼7%에 머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전 기관과 부지 분양을 체결한 혁신도시는 한 곳도 없다. 민간 사업자들은 혁신도시가 제대로 조성될지 의문을 품고 있는 데다 경기도 나빠 투자를 꺼리고 있다.
당초 12곳에서 10곳만 내려올 수도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서울 잔류 문제다. 충북 혁신도시는 기관들의 서울 잔류 방침 때문에 골치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으로서는 많은 곳이 내려올수록 환영인데 기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미 확정된 이전기관의 수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곳으로 이전하는 기관 12곳 중 1곳은 폐지가 결정됐고, 2곳은 타 혁신도시 이전 대상 기관과 통합돼 이전기관이 10개밖에 안 될 수도 있다. 충북으로 이전이 확정된 기관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소비자보호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기술표준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법무연수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고용정보원으로 모두 10곳이다.
이에 대해 충북혁신도시사업단 김지훈 차장은 “반쪽짜리 혁신도시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구별 시공업체와 협의해 차질 없이 공정을 추진하도록 독려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원안 수정 추진의 영향도 크다.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자 혁신도시 지역의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혁신도시건설촉진국회의원 모임’은 “혁신도시는 공공기관과 연관된 민간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동반 이주해 시너지 효과를 거둬야 광역경제권의 성장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세종시로 이전하는 기업, 연구소, 대학에 주어지는 값싼 토지와 무차별적 세제혜택 때문에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건설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반발에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여러 지원책을 제시했다. 주·간선도로, 상·하수도 등 기초 인프라를 공급하고, 미개발 상태인 원형지 공급을 확대하며, 분양가를 14% 인하하고, 세종시와 동일한 수준의 세제를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혁신도시가 들어서는 지자체의 걱정은 여전하다.
원형지 공급할 만한 땅 적어
먼저 혁신도시에는 원형지로 공급할 만한 땅이 적다. 충북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이전용지(85만6000㎡)와 산·학·연 혁신클러스터용지(19만5000㎡)를 비롯해 주택건설용지(148만3000㎡), 공원·녹지·도로(297만3000㎡) 등이 전부다. 원형지는 규모가 커야만 효과가 있다. 그런데 혁신도시는 물량이 적고 조성 중인 부지 대부분은 이미 용도가 결정된 상태라, 새로운 물량을 찾기도 쉽지 않다.
또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혁신도시의 자족용지를 244만㎡에서 338만㎡로 38% 확대해 분양가를 14%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지난해 9월 지자체와 함께 마련한 혁신도시 발전방안을 확정한 것일 뿐 추가적인 인하조치가 아니다. 이 자족시설용지가 원형지 가능 부지로 검토될 수도 있지만, 혁신도시별로는 33만8000㎡에 불과한 데다 주변 지역과의 조화나 도시개발계획, 입주 기업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대부분 검토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혁신도시대책위원회 임윤빈 공동위원장(음성혁신도시주민대책위원장)은 “충북 혁신도시는 특수목적고등학교 등 우수 학교 유치와 선진도시 기법의 도입, 정주 여건 및 기업환경 개선 등 다른 혁신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원 계획이 전혀 없다. 이전 기관의 토지매입을 신속히 완료하고, 협력 민간 기업의 동반 이전을 유도하는 등 기업투자 유치대책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