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여행자’의 한 장면.
그런데 작품성에 대한 평가와는 관계없는 엉뚱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끈 것은 주인공의 직업이다. 주인공 메이칸은 여행가이드북 작가다. 세계 각 나라를 다니며 호텔에 묵고, 식당에서 음식 먹은 경험 등을 쓰는 게 그의 일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1988년. 국내에 소개된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제작 직후 소개됐다면, 주인공의 직업에 대해 국내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여행가이드북 작가라는 직업은 당시로서는 꽤 생소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활발하지 않았던 때라 주인공의 직업이 실감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신종 직업에 대한 안내서 구실을 하기도 한다. 또 영화에는 실제 이상으로 특이한 직업세계가 펼쳐진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로비스트, 무기거래상, 경찰의 특수감식반, 소리 연출가 등의 이색 직업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영화나 드라마 속의 현실이 초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직업이 4만 종 정도라는 통계가 있다. 분류기준에 따라 수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미국의 직업 종류는 한국보다 5배가량 많다고 한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한국 관객들은 신종 직업, 미래 유망직업에 대해 정보를 얻는 셈이다. 물론 두 나라의 차이는 갈수록 좁아지는 추세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성 덕분에 한국의 신종 직업 출현속도에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직장을 구하는 것이 아닌 ‘직업’ 자체를 새로 만드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새롭다고 다 직업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새로운 직업은 원인이 아닌 결과다. 신종 직업이라는 현상의 밑에는 새로운 산업과 사회변화라는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정확히 포착할 때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신종 직업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요행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