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0

..

잔혹 살벌 이발사 엽기 사회를 향한 복수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입력2008-01-16 18: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잔혹 살벌 이발사 엽기 사회를 향한 복수
    1979년 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초연됐을 때, 이는 과거 모든 뮤지컬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양동이로 피를 퍼붓고 20명의 등장인물이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주인공들이 모두 죽어버리는 이 기이한 뮤지컬이 뭐가 대단했기에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 ‘뮤지컬의 기적’ ‘미국 뮤지컬의 자존심’ ‘전대미문의 걸작’ 등과 같은 월계관을 씌워주었을까.

    ‘스위니 토드’의 작곡가인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은 흔히 ‘콘셉트 뮤지컬’로 요약된다. 그의 작품은 음악과 무대와 배우가 하나의 콘셉트에 따라 유기적으로 결합함으로써 매순간 리듬과 박자, 음계가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뮤지컬의 진경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은 수녀 마리아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마리아를 어떻게 할까, 그녀는 골치꾸러기, 그녀는 악마냐 천사냐’식으로 가사를 만들고 여기에 음악을 얹는 데 비해 ‘스위니 토드’는 무한 변주되는 단조와 불길한 저음, 불협화음이 로맨틱한 가사와 부정교합을 이루며 잔혹하고 이중적인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식이다. 한마디로 손드하임의 뮤지컬에서 음악은 캐릭터의 일부고, 상투적인 후렴구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때문에 뮤지컬을 예술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으면서도, 관객들이 한 구절조차 따라 부르기 어려운 손드하임의 작품에 대해 할리우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실험적인 축에 들었다.



    ‘스위니 토드’도 ‘빌리 엘리엇’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러셀 크로와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결국 손드하임에 버금가는 잔혹한 상상력의 소유자 팀 버튼 감독에게 넘어가게 됐다.

    따끈따끈한 개봉작 ‘스위니 토드’를 보니 역시 팀 버튼의 손을 거치면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단순히 번안되는 게 아니라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것, 아니 걸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줄거리만 보면 가위 대신 면도칼을 든 에드워드가 삼팔반점 인육만두의 여주인과 함께 올리버 트위스트 거리에서 이발소를 차린 형국이지만 말이다.

    잔혹 살벌 이발사 엽기 사회를 향한 복수
    자신의 아내를 탐내는 판사로 인해 15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썩은 벤저민 바커라는 사내가 있다. 스위니 토드로 이름을 바꾼(토드는 독일어로 ‘죽음’을 뜻한다) 이 사내는 옛 거리로 돌아와 복수의 칼날을 벼린다. 사체를 처리해야 하는 이발사와 진짜 고기가 필요한 파이집 여주인. 이 ‘죽여주는’ 궁합의 이발사와 파이가게 주인은 진짜 손님을 죽이며, 바야흐로 손발이 착착 맞는 전대미문의 연쇄살인범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영화 속 이미지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목을 베는 면도날의 반들반들한 감각에 있을 것이다. 물론 사체는 고기파이의 재료가 돼 살점이 으깨지지만, 팀 버튼이 매료된 것은 그보다 이발사의 면도날에 묻은 핏자국임이 틀림없을 터. 그는 이를 위해 산업혁명기인 19세기 런던 거리를 창백한 새벽과 모든 것이 탈색돼버린 듯한 무성영화의 흑백 화면으로 단장했다. 주인공이 루비라고 부르는 피의 색깔만이 붉디붉을 뿐이다. 팀 버튼은 자신의 영화가 ‘밸런타인데이’에 어울릴 것이라고 능청 떨었지만, 사실 스위니 토드는 전혀 스윗(sweet)하지 않다.

    오히려 이 영화는 원작 뮤지컬이 보여준 캐릭터와 무대 분위기를 독특하게 재해석하고 시각적으로 재구성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스위니 토드의 캐릭터도 원작의 느릿하고 능청스런 유머 감각으로 뭉친 살인자와 달리,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죽는 순간까지 그리워하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에 가깝다. 스위니 토드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처럼 오해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는 비극의 주인공이며, 그와 파이가게 러빗 부인은 창백한 얼굴과 동굴처럼 깊은 눈, 그리고 사랑을 열망하지만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도플갱어처럼 닮았다.

    팀 버튼은 이 영화에서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클로즈업을 사용한다. 깨진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스위니 토드는 분열증적인 안티히어로인 동시에 감정이 앞서는 위장술의 달인이라는 점에서 ‘배트맨’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런던도 죄악과 빈부격차에 찌든 고담 시티와 닮아 있지 않은가.

    흑백화면·클로즈업 사용 19세기 분위기 ‘물씬’

    여기에 인간을 착취하고 고혈을 짜내는 자본주의의 비인격성은 인간이 인간을 잡아 그 속을 먹어치우는 고기파이를 통해 형상화된다. 그래서 길거리에 지나가는 인간 군상을 보며 고기 근수로 그들의 인격을 따지는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의 이중창은 ‘스위니 토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신부는 몸을 막 굴리지 않아서 맛있겠다는 둥, 변호사는 비싼 고기라는 둥, 정치인은 기름이 좔좔 흐르고, 배우는 살은 많지 않지만 자만심이 세다는 둥 손드하임-팀 버튼 커플은 잔혹한 유머 속에 사회 비판의 직격탄을 날린다.

    영화 내내 조니 뎁(스위니 토드)은 노래를 부르고 헬레나 본햄 카터(러빗 부인)는 밀가루 방망이를 치대지만, 둘 다 최적의 캐스팅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밖에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의 영국 코미디언 사챠 바론 코헨이 이발사로, 앨런 릭맨이 판사로 나와 열연한다.

    춤은 거의 없고 대사의 70% 이상이 음악으로 처리되지만, 스위니 토드는 여전히 팀 버튼의 영화다. 이 영화의 슬로건 ‘never forget, never forgive(절대 잊지 마라, 용서는 없다)’도 잊을 수 없다. 스위니 토드는 ‘슬리피 할로’와 함께 팀 버튼의 최고 작품 중 하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