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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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허위의 왕관을 벗어라!

‘황제’대접받다 밑바닥 추락 이유 있는 방황 … 네덜란드 복귀 새 출발 다짐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esnews.co.kr

    입력2008-01-16 1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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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수 허위의 왕관을 벗어라!
    지난해 11월27일 이천수(27·페예노르트·사진)가 구단에서 휴가를 받아 귀국한다는 소식이 갑작스럽게 전해졌다. 휴가 명목은 향수병. 뭔가 이상했다. 사실을 알아보니 그는 K리그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페인 진출 때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면서 네덜란드로 떠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황당하고 안타까웠다. 이천수가 부평고에 다닐 때부터 막역하게 지내온 터였다.

    네덜란드로 떠날 때 그는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게다가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네덜란드의 우울한 겨울날씨로 그의 심지(心志)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그는 K리그 구단들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받아달라고 호소했다. 무턱대고 K리그로 복귀하겠다는 그의 말에 에이전트사도 안절부절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비밀리에 복귀를 추진했지만 기자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젠 그라운드에서 목숨 걸겠다”

    이천수는 언론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알려지자 당황했고, “네덜란드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2주 휴가를 마친 뒤 네덜란드로 돌아간 그는 자숙하며 차츰 출전시간을 늘렸다. 그런데 공식 휴가를 얻어 한국에 온 지난해 12월31일 그는 또다시 사고를 쳤다. 폭행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1월5일 출국하면서 이천수는 “이제는 사고 그만 치겠다. 그라운드에서 목숨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기자는 2006년 독일월드컵 스위스전에서 패한 후 이천수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며 잉글랜드의 축구 영웅 폴 개스코인을 떠올렸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옛 서독에 패한 후 울부짖던 그 개스코인 말이다.



    1990년대 잉글랜드 선수 가운데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추앙받던 개스코인은 음주와 이혼 등 복잡한 사생활로 ‘악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웸블리 사상 최고의 프리킥골을 터뜨렸다는 찬사를 받은 직후 상대 선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최악의 파울로 구설에 올랐고, 유로 96을 통틀어 최고의 골로 꼽히는 스코틀랜드전 득점 이후 아내를 구타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며 만인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이천수에 대한 평가도 개스코인처럼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한다. 독일월드컵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으로 ‘호감 모드’를 되찾았지만 K리그에서 심판에게 욕하는 모습이 TV 화면으로 중계되면서 다시 ‘비호감’으로 돌아섰고, 지난해 축구팬들에게서 ‘올해 최고의 골’로 선정된 그리스전 프리킥골을 뽑아낸 뒤 연말엔 온갖 구설수로 실망을 안겼다. 개스코인을 비롯한 악동들의 공통점은 선수생활을 남들보다 빨리 마쳤다는 것이다.

    튀는 행동은 어려움 벗기 위한 방어책

    “내 성격이 실제와는 반대로 미디어에 비쳐져 오해를 많이 받는다. 마음에서 우러난 일도 가식으로 비쳐질까 두렵다”는 게 이천수의 하소연이다.

    당차고 자신감 넘쳐 보이지만 곁에서 지켜본 이천수는 약하다. 그는 “나는 원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에서 고생이 많았다. 스페인에서도 말이 잘 안 통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밖으로 드러난 그의 자신감은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방어책이다. 이천수가 해외에서 보이는 모습을 놓고 박지성 이영표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적응할 때까지 애정으로 기다려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있었다. 그리고 한 팀에서 뛰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천수는 네덜란드에서 늘 혼자였던 데다 벤치에 주로 머물렀으며, 뛴 경기에서도 골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을 테고 욕을 먹더라도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절실했을 것이다.

    이천수는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자기 중심으로 경기를 해온 선수다. 그는 공이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환경에서 경기를 펼치는 ‘황제 플레이’에 능하다. 이천수는 게임이 그런 식으로 풀려가지 않으면 불안감을 억제하지 못하고 술을 찾았다.

    그는 스페인에서 뛸 때 “한국으로 돌아가면 황제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자신의 약함을 숨기기 위해 그는 ‘황제의 왕관’을 쓴다. 그 허위의 왕관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는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왕관을 벗어던지지 않는 한 유럽에서의 성공은 요원하리라는 것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천수가 낙천적이라는 점이다. 독일월드컵 스위스전을 마치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운 뒤 믹스트존에서 평상심을 되찾았듯, 마음의 상처를 빠르게 치유하는 게 그의 장점이다.

    네덜란드로 돌아간 이천수는 경쟁자인 안드벨레 슬로리와 함께 오른팔에 문신을 새기며 우의를 다졌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예비 엔트리 50명 안에 들지 못했을 때도 “허정무 감독님은 나를 대표팀에 처음 발탁했고 네덜란드에서도 선수생활을 했던 분이다. 지금으로선 소속팀에서 입지를 굳히는 게 중요한 만큼 네덜란드에서 더 열심히 뛰라는 배려로 알겠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스물일곱 살의 청년 이천수가 올해 명심해야 할 것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인내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가짐과 스스로 밝힌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사명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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