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 발보아’
비단 노인을 위한 일자리 마련, 사회복지 시스템 구축만을 묻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나이 든다는 것, 늙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마음가짐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죄악이라고 할 정도다. 50, 60대에도 20대 몸을 가진 이들에게 마치 현대판 영웅이나 되는 양 환호를 보내는 것이나 ‘동안(童顔) 신드롬’ 등은 이 같은 이상현상의 일단이라 할 수 있다. ‘건강 지상주의’야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있어왔지만 이젠 탈정치화된 현대사회의 신종 이데올로기라 할 정도로 숭배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요즘에는 사회·경제적인 요인까지 가세해 ‘반(反)노령’ 기류를 더욱 부추긴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에서처럼 나이 든다는 것 자체가 무능, 퇴출 대상과 동의어가 돼버렸다. 그러니 사람들은 미용상의 이유만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주름살을 제거한다.
사회는 고령화되는데 사람들의 심리적 나이는 오히려 거꾸로 치닫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보다 더한 ‘청춘(회춘) 숭배’의 나라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지난해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한 편이 만들어졌다. 60대 노인이 ‘회춘의 기적’을 보여준 ‘록키’의 새 시리즈물이다. 아마 록키 열성팬들도 기대하지 못한 영화였을 텐데 제작자와 감독,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인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 놀라운 일을 해냈다. 상상할 수 있는가. 환갑이 다 된 나이의 전직 복서가 20여 년 만에 링에 복귀해 그것도 현역 최고의 젊은 선수와 세계 타이틀을 놓고 일전을 벌인다는 것이.
실베스터 스탤론의 ‘노익장’ 연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 영화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이 영화에 아무리 휴먼 드라마적인 요소가 있다 한들 내게는 코미디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시인 새뮤얼 울먼은 “청춘은 나이가 아닌 열정”이라고 읊었다. 그 열정은 결코 ‘록키’식의 초인적인 체력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 나이에 맞게 늙고, 그래서 신체적으로는 노화했지만 그 나이가 돼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해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령화 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대비책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