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 불교방송 앞 한 빌딩에 사무실(30평 규모)을 차려놓은 K씨. 그는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며 늘 자신을 낮춰 소개한다. 그의 명함에는 이름과 전화번호만 기재돼 있다. 처음 만나면 그가 뭘 하는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를 몇 번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동선(動線)이 생각보다 길다는 데 놀란다.
그는 수시로 경찰, 국정원 등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만나 주 1~2회 점심을 먹는다. 그중에는 고위직 인사도 있다. 때로 술자리를 갖기도 한다. 인근 H호텔에서 원로 학자들과 식사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보통사람들이 만나기 힘든 중진 정치인들을 만날 때는 이 호텔 커피숍을 이용한다. 기자들을 만나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야기만 들을 뿐, 특정 사안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런 요구 없이 밥과 술자리를 마련하는 그에게 여의도 사람들은 아는 바를 모두 털어놓는다. 기자들은 그를 모 대선후보 캠프의 비선(秘線) 조직에서 일하는 ‘얼굴 없는 참모’라 부른다.
주로 여의도 인접한 마포에 사무실 내
마포에는 K씨처럼 대선후보의 숨겨진 캠프(비선)에서 일하는 참모가 많다. 대선을 6개월여 앞둔 요즘 이런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마포대교 인근의 빌딩숲에 사무실을 차리고 비밀리에 움직인다. 이들이 여의도를 외면하고 마포에 사무실을 연 이유는 간단하다. 여의도보다 임대료가 싸다는 이유도 있지만, 권력 현장인 여의도에 사무실을 차리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불가근(不可近)의 원칙’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1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같은 이유로 마포에 사무실을 연 적이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분신이던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여권 정치기상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이런 그의 ‘여의도 입성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민주당 지도부에 쇄도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권 전 고문은 방향을 틀어 마포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후 이 사무실은 ‘마포당사’ 구실을 수행했다.
정치 1번지, 여의도와 멀리 떨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참모들도 있다. 이들 역시 마포에 둥지를 튼다. ‘불가원(不可遠)’이다. 불가근불가원이라는 권력의 원칙을 적용할 경우, 마포는 지리적으로 최적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
마포에 사무실을 차리는 참모들은 대부분 ‘얼굴’이 없다. 비선으로 움직일 때가 허다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하다 최근 이명박 전 시장의 주민등록초본 문제로 논란을 빚은 홍윤식 씨도 일부 정치인과 기자들만 그의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홍씨는 평소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앞서 언급한 K씨도 비슷한 처지였다. 지난 6월, K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자 “연(緣)을 끊자”고 응수했다.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은 얼굴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비선조직의 참모들은 음지를 지향한다. K씨의 설명이다.
“얼굴이 알려지면 주변 시선 때문에 일을 못한다. 지금은 가고 싶은 곳에 다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 만난다. 그러나 얼굴이 공개되면 나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사람들의 견제가 들어오지 않겠는가.”
그 대신 그는 자신이 모시는 보스(대선후보)와의 깊은 신뢰관계를 무기로 삼는다고 말했다.
선거철에 더 많이 생기는 비선조직은 마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 ‘캠프’가 차려진다. 특히 2007년 대선을 앞둔 지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논현동팀, 신사동팀, 강남팀을 비롯해 광화문팀, 수송동팀, 서대문팀 등 서울의 웬만한 지역에 캠프가 차려졌고 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공개됐다.
7월18일, 이 전 시장 측의 박형준 대변인은 박 전 대표 측의 ‘논현동팀’을 거론했다. 이 전 시장 측은 논현동팀을 이끄는 사람이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라고 믿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논현동팀이 마포팀보다 훨씬 비밀스러운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는 데는 반대하지만 조만간 이 비선조직과 참모들의 역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의 숨겨진 참모와 캠프도 예외는 아니다. 4월 종로구 수송동 P오피스텔에 둥지를 튼 이른바 수송동팀이 이 전 시장 측의 비선조직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이 캠프에서는 전직 국정원 관계자와 이 전 시장의 측근, 학자, 정치권 인사 등 10여 명이 활동했다. 이들의 역할은 정보 수집. 수집한 정보는 분석을 거쳐 보고서로 옮겨진다. 이 보고서는 매주 한 차례씩 이 전 시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활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 전 시장의 한 측근은 “당시 팀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누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송동팀은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4월 사무실을 폐쇄했다. 그러나 멤버들은 현재 다른 곳에 사무실을 열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경험 많은 학자·언론인·경찰 출신 활약
비선조직의 멤버들은 일반적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대학교수 같은 학자, 현장 판단이 빠른 언론인, 정보 취급에 능한 국정원, 경찰 출신 등이 고정 멤버다.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이를 캠프의 전략으로 연결하는 활동을 하는데, 이들의 전문성은 매우 효율적으로 작용한다. 한나라당 모 대선후보의 마포팀에서 활동 중인 한 인사의 설명이다.
“얼굴 없는 조직의 경우 대부분 정치 상황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한다. 이런 작업에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력이 필요하다.”
학자, 언론인 등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인물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는 “주 1회 정도 대선후보에게 직접 보고서를 올린다”고 말한다. 물론 대선후보와의 독대는 가변적이다.
후보의 약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확대하는 전략전술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런 비선조직에서 만들어져 유통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경우 동숭동팀의 책사 전병민 씨가 만든 보고서를 통해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도 부국팀의 직간접적 지원이 큰 힘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비선참모들의 역할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역기능도 눈에 띈다. 비선조직에서 일하는 참모들은 많게는 수백명이 넘는다. 이들의 역할에 대한 교통정리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특정 이슈가 생기고 상황이 다급해지면 여기저기서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캠프 핵심부로 몰린다. 이 경우 경쟁은 불가피하다. 캠프 내부의 조직력이 살아 있으면 이런 혼란은 쉽게 통제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선후보가 모든 사안을 직접 컨트롤하려 할 경우 혼란은 증폭된다. 지난 6월 추락하는 지지율을 놓고 분석작업을 하던 이 전 시장 캠프는 전국에서 쇄도하는 대응방안 문건 때문에 심한 내홍을 겪었다.
박 전 대표 측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박 전 대표 캠프의 홍사덕 선거대책위원장은 “외곽그룹에서 정책 건의안이나 보고서를 만들어오는데, 하루에 수십 건이 넘어 다 볼 수가 없다. 이것들은 문서파쇄기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비선조직 참모들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대선후보 주변을 파고드는 각종 보고서와 이를 둘러싼 파워게임의 실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보호막 없어 상황 발생 땐 독박 쓸 가능성
친목모임 형식으로 운영되는 사조직과 달리, 정치적 성향이 강한 참모들의 비선조직은 상대 후보의 비리를 뒤지는 등 네거티브 선거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 후보의 부동산과 군복무 기록, 이력 등을 뒤지는 것은 기본이다. 은밀한 사생활을 파고드는 경우도 있다. 비선조직원들이 늘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전 대표의 마포팀이 네거티브 의혹에 휩싸인 이유도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한 것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 캠프의 진수희 대변인은 박 전 대표의 비선조직인 마포팀을 ‘박 전 캠프의 국정원’이라고 부를 정도로 피해의식이 크다.
대선후보 캠프의 외곽에서 얼굴 없이 뛰는 참모들이 100명은 훨씬 넘으리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뛰지만 정치적 지향점은 유사하다. 권력 창출을 통한 정치적 신분상승이 그들이 노리는 최종 목표다. 역대 많은 비선조직에서 활동했던 참모들은 청와대로, 총선으로, 정부투자기관으로 진출했다. 비선조직에서 활동하는 한 인사는 “뛴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비선조직 참모들에겐 정치적 보호막이 없다. ‘상황’이 발생하면 대선후보 진영은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다. 박 전 대표의 마포팀이 초본 문제로 코너에 몰리자 홍 선대위원장은 “캠프와 관련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비선조직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그럴수록 일이 꼬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윗선으로 번지지 않도록 몸을 던져 막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만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경험에서 나온 정치권의 진리다.
얼굴 없는 비선조직의 참모들은 오늘도 꿈을 품고 마포로, 여의도로, 강남으로, 광화문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지금으로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과거의 예로 미뤄본다면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비선조직 참모들의 활동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그는 수시로 경찰, 국정원 등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만나 주 1~2회 점심을 먹는다. 그중에는 고위직 인사도 있다. 때로 술자리를 갖기도 한다. 인근 H호텔에서 원로 학자들과 식사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보통사람들이 만나기 힘든 중진 정치인들을 만날 때는 이 호텔 커피숍을 이용한다. 기자들을 만나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야기만 들을 뿐, 특정 사안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런 요구 없이 밥과 술자리를 마련하는 그에게 여의도 사람들은 아는 바를 모두 털어놓는다. 기자들은 그를 모 대선후보 캠프의 비선(秘線) 조직에서 일하는 ‘얼굴 없는 참모’라 부른다.
주로 여의도 인접한 마포에 사무실 내
마포에는 K씨처럼 대선후보의 숨겨진 캠프(비선)에서 일하는 참모가 많다. 대선을 6개월여 앞둔 요즘 이런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마포대교 인근의 빌딩숲에 사무실을 차리고 비밀리에 움직인다. 이들이 여의도를 외면하고 마포에 사무실을 연 이유는 간단하다. 여의도보다 임대료가 싸다는 이유도 있지만, 권력 현장인 여의도에 사무실을 차리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불가근(不可近)의 원칙’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1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같은 이유로 마포에 사무실을 연 적이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분신이던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여권 정치기상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이런 그의 ‘여의도 입성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민주당 지도부에 쇄도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권 전 고문은 방향을 틀어 마포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후 이 사무실은 ‘마포당사’ 구실을 수행했다.
정치 1번지, 여의도와 멀리 떨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참모들도 있다. 이들 역시 마포에 둥지를 튼다. ‘불가원(不可遠)’이다. 불가근불가원이라는 권력의 원칙을 적용할 경우, 마포는 지리적으로 최적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
마포에 사무실을 차리는 참모들은 대부분 ‘얼굴’이 없다. 비선으로 움직일 때가 허다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하다 최근 이명박 전 시장의 주민등록초본 문제로 논란을 빚은 홍윤식 씨도 일부 정치인과 기자들만 그의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홍씨는 평소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앞서 언급한 K씨도 비슷한 처지였다. 지난 6월, K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자 “연(緣)을 끊자”고 응수했다.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은 얼굴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비선조직의 참모들은 음지를 지향한다. K씨의 설명이다.
“얼굴이 알려지면 주변 시선 때문에 일을 못한다. 지금은 가고 싶은 곳에 다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 만난다. 그러나 얼굴이 공개되면 나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사람들의 견제가 들어오지 않겠는가.”
그 대신 그는 자신이 모시는 보스(대선후보)와의 깊은 신뢰관계를 무기로 삼는다고 말했다.
선거철에 더 많이 생기는 비선조직은 마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 ‘캠프’가 차려진다. 특히 2007년 대선을 앞둔 지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논현동팀, 신사동팀, 강남팀을 비롯해 광화문팀, 수송동팀, 서대문팀 등 서울의 웬만한 지역에 캠프가 차려졌고 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공개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원 조직인 `마포팀` 사무실.
이 전 시장 측의 숨겨진 참모와 캠프도 예외는 아니다. 4월 종로구 수송동 P오피스텔에 둥지를 튼 이른바 수송동팀이 이 전 시장 측의 비선조직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이 캠프에서는 전직 국정원 관계자와 이 전 시장의 측근, 학자, 정치권 인사 등 10여 명이 활동했다. 이들의 역할은 정보 수집. 수집한 정보는 분석을 거쳐 보고서로 옮겨진다. 이 보고서는 매주 한 차례씩 이 전 시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활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 전 시장의 한 측근은 “당시 팀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누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송동팀은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4월 사무실을 폐쇄했다. 그러나 멤버들은 현재 다른 곳에 사무실을 열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경험 많은 학자·언론인·경찰 출신 활약
비선조직의 멤버들은 일반적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대학교수 같은 학자, 현장 판단이 빠른 언론인, 정보 취급에 능한 국정원, 경찰 출신 등이 고정 멤버다.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이를 캠프의 전략으로 연결하는 활동을 하는데, 이들의 전문성은 매우 효율적으로 작용한다. 한나라당 모 대선후보의 마포팀에서 활동 중인 한 인사의 설명이다.
“얼굴 없는 조직의 경우 대부분 정치 상황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한다. 이런 작업에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력이 필요하다.”
학자, 언론인 등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인물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는 “주 1회 정도 대선후보에게 직접 보고서를 올린다”고 말한다. 물론 대선후보와의 독대는 가변적이다.
후보의 약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확대하는 전략전술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런 비선조직에서 만들어져 유통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경우 동숭동팀의 책사 전병민 씨가 만든 보고서를 통해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도 부국팀의 직간접적 지원이 큰 힘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비선참모들의 역할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역기능도 눈에 띈다. 비선조직에서 일하는 참모들은 많게는 수백명이 넘는다. 이들의 역할에 대한 교통정리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특정 이슈가 생기고 상황이 다급해지면 여기저기서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캠프 핵심부로 몰린다. 이 경우 경쟁은 불가피하다. 캠프 내부의 조직력이 살아 있으면 이런 혼란은 쉽게 통제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선후보가 모든 사안을 직접 컨트롤하려 할 경우 혼란은 증폭된다. 지난 6월 추락하는 지지율을 놓고 분석작업을 하던 이 전 시장 캠프는 전국에서 쇄도하는 대응방안 문건 때문에 심한 내홍을 겪었다.
박 전 대표 측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박 전 대표 캠프의 홍사덕 선거대책위원장은 “외곽그룹에서 정책 건의안이나 보고서를 만들어오는데, 하루에 수십 건이 넘어 다 볼 수가 없다. 이것들은 문서파쇄기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비선조직 참모들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대선후보 주변을 파고드는 각종 보고서와 이를 둘러싼 파워게임의 실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2001년 3월28일 서울 마포에 개인사무실을 연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동교동계 인사들의 축하를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친목모임 형식으로 운영되는 사조직과 달리, 정치적 성향이 강한 참모들의 비선조직은 상대 후보의 비리를 뒤지는 등 네거티브 선거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 후보의 부동산과 군복무 기록, 이력 등을 뒤지는 것은 기본이다. 은밀한 사생활을 파고드는 경우도 있다. 비선조직원들이 늘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전 대표의 마포팀이 네거티브 의혹에 휩싸인 이유도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한 것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 캠프의 진수희 대변인은 박 전 대표의 비선조직인 마포팀을 ‘박 전 캠프의 국정원’이라고 부를 정도로 피해의식이 크다.
대선후보 캠프의 외곽에서 얼굴 없이 뛰는 참모들이 100명은 훨씬 넘으리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뛰지만 정치적 지향점은 유사하다. 권력 창출을 통한 정치적 신분상승이 그들이 노리는 최종 목표다. 역대 많은 비선조직에서 활동했던 참모들은 청와대로, 총선으로, 정부투자기관으로 진출했다. 비선조직에서 활동하는 한 인사는 “뛴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비선조직 참모들에겐 정치적 보호막이 없다. ‘상황’이 발생하면 대선후보 진영은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다. 박 전 대표의 마포팀이 초본 문제로 코너에 몰리자 홍 선대위원장은 “캠프와 관련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비선조직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그럴수록 일이 꼬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윗선으로 번지지 않도록 몸을 던져 막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만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경험에서 나온 정치권의 진리다.
얼굴 없는 비선조직의 참모들은 오늘도 꿈을 품고 마포로, 여의도로, 강남으로, 광화문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지금으로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과거의 예로 미뤄본다면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비선조직 참모들의 활동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