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에 만들어진 원형극장.
페트라에 가려면 먼저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가야 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레바논 전쟁, 이란 핵문제 등으로 중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암만에서는 주변 정세와 무관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처음 가보는 도시는 설렘과 긴장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인사말조차 모르는 아랍어와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렵사리 찾아낸 여행자 숙소의 응접실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여행자들과 합류하는 순간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암만에서 며칠 보내며 ‘웰컴 투 요르단’이라는 현지인의 인사말에 익숙해졌다. 건장한 남자들이 다가와 ‘웰컴 투 요르단’이라고 한마디 건네고 사라질 때면 그 상황이 어색해 혼자 웃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인디아나 존스 3’ 촬영지 … 보존 상태도 양호
페트라에 도착한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겨울의 끝 무렵이었는데 비로 인해 날씨는 더 춥게 느껴졌다. 여행자들은 호텔 응접실 난로 옆에 앉아 샤이(홍차)를 마시며 비디오를 본다. 페트라가 등장하는 ‘인디아나 존스 3-최후의 성전’이다. 마차를 타고 협곡에 들어서면 숨겨진 도시가 나오고, 도시 안의 보물창고가 모험가를 반기던 영화 속 장면을 다음 날엔 나도 직접 보게 될 것이다.
페트라를 제대로 보려면 이틀이 필요하지만 넉넉하게 4일 머물기로 했다. 페트라를 온전히 천천히 느끼고 싶어서다. 첫날은 늦어진 아침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카메라만 챙겨 나서는 내게 페트라 유적에 들어가면 먹을 데가 별로 없다며 호텔 주인장 아저씨가 빵과 치즈를 챙겨준다. 물 한 병까지 곁들이면서 즐거운 시간이 되라고 손짓한다. 덕분에 출발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페트라의 입구는 협곡이라는 뜻의 아랍어인 ‘시크’라고 불린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과 색채가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하는 시크를 걸어 들어가며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30분 정도 걸어야 하는 시크 덕분에 페트라 유적은 오랫동안 잊힌 채로 남겨져 있었다.
시크가 끝나는 곳에 알 카즈네(Al-Khazneh)라고 하는 보물창고가 있다.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 왕의 무덤이지만 보물이 숨겨져 있지 않았을까 해서 후대에 보물창고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페트라가 ‘붉은 장미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는 데 큰 구실을 한 곳으로, 보존 상태와 완성도가 뛰어나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한다. 특히 태양이 보물창고를 비추는 아침 9~10시에는 몽롱한 아름다움에 심취하게 된다.
알 카즈네를 지나면 시크가 점차 넓어지면서 본격적인 도시 내부가 나타난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바위산들만 가득하다. 산에는 무덤은 물론 원형극장도 있다. 2000년 전 나바테아 왕 시절의 사람들이 사암 바위를 깎아 만든 원형극장을 필두로 ‘석주기둥 길(Colonnade Street)’이 인상적이다. 거대한 사원과 궁전, 상점, 시장, 분수대…. 시크를 걸으며 느꼈던 경쾌함과 알 카즈네의 아름다움을 넘어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이 밀려든다.
페트라를 대표하는 유적 ‘알 카즈네’.
시크에서 알 데이르까지 쉬지 않고 걸으면 2시간이 걸린다. 페트라 유적의 특성상 같은 길로 되돌아 나와야 하므로 체력 소모가 많다. 서두르면 하루 동안 기본적인 볼거리를 다 볼 수 있지만 1000m가 넘는 산을 몇 개씩 오르려면 며칠이 더 필요하다.
페트라에 머물면서 내가 택한 하이킹 코스는 세 곳으로 한 곳에 반나절씩 투자했다. 가까운 곳은 특별한 등반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40분 정도의 짧은 코스였지만,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곳도 있었다. 어느 곳이든 페트라 일대의 풍경이 장관을 이뤘지만, 내게 특별함을 선사한 곳은 제벨 알쿱타(Jebel Al-Khunbtha,제벨은 아랍어로 산이라는 뜻)였다.
아침 8시에 출발해 제벨 알쿱타에 오른 시간은 9시30분.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알 카즈네가 가장 잘 보이는 바위 절벽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워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았다. 고고학자나 탐험가도 아니고 사진작가도 아니지만, 그런 풍경을 독식한 나는 분명 행운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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