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치권에서 시작돼 논란이 됐던 이른바 ‘반값 아파트’가 10월 초 경기 군포 부곡 택지지구에서 첫선을 보인다.
‘반값 아파트’란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방식으로 분양하는 아파트를 말한다. 토지임대부는 기존의 아파트 분양방식과 달리 토지는 사업 주체인 국가나 공공기관이 소유한 채 건물만 팔겠다는 방식이며, 환매조건부는 토지와 건물을 모두 분양하지만 일정 기간 공공기관이 아닌 제삼자에게 팔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두 분양방식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아파트와 비교해 가격을 많게는 절반 가까이 낮출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다. ‘반값 아파트’라는 별칭도 그래서 붙여졌다.
집 없는 서민 처지에서는 눈이 번쩍 띄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수도권에 사는 직장인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8년 동안 모아야 겨우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아파트 값이 비싼데, 반값에 집을 장만할 수 있다니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10월 초 군포 부곡지구에 첫선
그러나 반값 아파트의 실상이 공개되면서 그러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내 집을 갖고 싶다’고 희망했던 이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전문가들도 반값 아파트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책을 집행하는 담당 공무원들조차 “반값 아파트가 성공할지는 가봐야 안다”는 식이어서 정부도 처음부터 분명한 목표나 실행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빈축을 사고 있다.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는 총 2737가구의 국민임대주택이 들어서는 군포 부곡 택지지구에 10월 토지임대부(389가구)와 환매조건부(415가구) 방식으로 804가구를 시범 분양할 계획이다. 분양주택 규모는 전용면적 기준으로 75㎡(22.7평)와 84㎡(25.45평) 두 가지다.
건교부는 토지임대부 아파트의 분양가격은 3.3㎡(1평)당 450만원으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일반 아파트(3.3㎡당 825만원)의 5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환매조건부의 경우 3.3㎡당 750만원으로 분양가상한제 아파트보다 10% 저렴하며, 분양가상한제 아파트가 주변 시세보다 20%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30%가량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기존 아파트보다 획기적으로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토지임대부 아파트 가격이 낮은 이유는 토지비를 제외한 건축비만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지임대료를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건교부는 가구당 월 35만~40만원의 토지임대료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임대료 부담을 토지비로 환산하면 3.3㎡당 약 337만원이다. 결국 토지비(337만원)와 건축비(450만원)를 합하면 3.3㎡당 787만원이므로 건교부가 제시한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거의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값’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라는 얘기다.
특히 건교부가 제시한 토지임대료는 3.3㎡당 400만원이 넘는 기존 신도시 아파트 토지비를 감안할 때 최소 수준이어서 실제로는 입주자가 월 40만원 이상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임대료는 2년 동안의 평균 지가상승률을 고려해 최고 5%까지 오른다.
또 다른 걸림돌은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나뉨으로써 생기는 문제다. 장일 부동산컨설턴트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오르는 토지와 달리 건물은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권리 없이는 입주자가 전혀 이익을 가져갈 수 없다”며 토지임대부 아파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환매조건부 아파트는 20년 동안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입주한 뒤 10년 안에는 질병, 해외이민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매가 제한된다. 입주 후 10년이 넘어도 정기예금 이자 가산가격이나 공시가격 중 낮은 금액을 받고 주택공사 등 사업주체에 팔아야 한다.
김광수 경제연구소 소장은 “환매조건부 아파트는 변형된 전세제도에 지나지 않으며 가격변동 위험을 거래자 양쪽이 부담해야 하므로 비현실적”이라며 “분양가격이 민간 전세와 같거나 낮아야 성공할 수 있지만, 전세와 달리 입주자가 거래세나 보유세를 부담해야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 수단 생색내기로 끝내선 안 될 말
이처럼 실효성이 떨어지는 반값 아파트 공급이 추진되는 배경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요자에게도 큰 혜택이 없고, 정부로서도 재정 부담을 안아야 하는데 강행하는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값 아파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장본인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다. 홍 의원은 지난해 아파트 값을 절반으로 낮출 수 있다며 ‘대지임대부 분양특별법’을 제안했고 한나라당은 이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야당의 반값 아파트 정책이 서민에게 호응을 얻자 청와대도 “이미 검토한 사안이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대책을 내놓겠다”며 가세했다. 이어 이계안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환매조건부 분양특별법’을 제출하면서 반값 아파트 논란은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후 반값 아파트의 위험성이 보고되면서 정부는 한발 빼는 듯했지만 결국 관련 법안이 1·11 부동산대책의 후속 법안인 주택법 개정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정치권은 재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를 들어 스스로 내놓은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등 반값 아파트 공급 근거를 담은 관련법을 아직까지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게 된 건교부도 썩 내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건교부 관계자는 “말 그대로 시범사업이다. 성공할지는 지켜봐야 아는 문제다. 향후 계획을 예견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앞으로의 계획이 불투명함을 암시했다. 반값 아파트 공급이 그야말로 시범사업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반값 아파트 공급정책의 근본적인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 경실련 윤순철 국장은 “새로운 방식으로 시세보다 몇 % 싸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며 “건축비와 택지조성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얼마든지 실질적인 반값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은 “중산층에게는 토지임대료를 높이고 서민에게는 낮추는 동시에 환매조건부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정치적 목적에서 생색내기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