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산의 배일주 대표와 그가 개발한 비소 성분 항암제인 테트라스(캡슐 형태).
“신약 샘플 활용하고 비밀유지 계약도 안 지켜”
배 대표는 법무법인 ‘서정’을 변호인으로 선임해 바이오벤처 ㈜코미팜(대표 문성철)의 전 연구소장 이모(53) 씨를 특허법 위반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6월2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고, 이에 검찰은 6월29일 이 사건 관련 수사를 서울 동작경찰서에 이첩한 상태다.
널리 알려졌듯, 일부 암환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항암제’로 통했던 천지산은 배 대표가 1996년 ‘가짜 항암제’ 파문의 장본인으로 법정에 선 뒤 ‘암환자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한 가짜약’이라는 판결에 따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음으로써 사장(死藏)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 후 천지산의 비공식적인 임상효과에 눈 돌린 일부 의대 교수들의 과학적 연구결과가 뒷받침되고, 배 대표가 2000년 3월 ㈜천지산을 설립한 뒤 2003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임상시험을 승인받음으로써 천지산은 드라마틱한 ‘부활’ 소식을 알렸다.
천지산은 임상 1상시험에서 기존 항암제와 달리 독성에 따른 부작용이 거의 없고 종양표지자(암세포가 있음을 나타내는 물질)가 감소했으며, 다른 항암제와 병행 사용할 경우 항암효과가 더욱 높을 것이라는 ‘추정 결과’를 얻어냈다. 지금은 상품화를 목표로 임상 2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천지산의 주성분은 비소 화합물인 육산화비소(As4O6). 비소(As)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지녀 통상 의약품으로 쓰는 것을 금한다. 하지만 육산화비소는 각종 실험에서 독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대부분 주사제로 만들어진 기존 항암제와 달리 먹는 약(경구용)인 천지산의 약품명은 ‘테트라스(TetraAs)’다.
“배 대표의 육산화비소와는 무관한 신물질”
이번에 배 대표가 검찰에 낸 고소장에 나타난 ‘고소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98년 당시 배 대표는 육산화비소에 ‘HD-2’라는 이름을 붙인 뒤 국내 제약회사인 I신약 측에 동물효능시험을 의뢰하면서 ‘비소 함유 항암제 HD-2 개발단계 및 관련 정보와 공개’에 관한 비밀유지 계약을 맺은 일이 있는데, 이 과정에 간여한 I신약의 당시 이사이자 이 계약 실무자였던 피고소인 이씨가 시험에 필요한 HD-2 샘플 10g을 건네받은 뒤 이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으면서도, 이후 비밀유지 계약을 어기고 코미팜이 주도하는 또 다른 비소 성분 항암제 개발에 참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특허와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당시 이씨는 HD-2 샘플을 네덜란드로 보내 그곳의 ‘일자(Ilsa)’라는 실험실에 동물효능시험을 의뢰했는데, 그 결과를 배 대표에게 알리지 않은 채 1999년 자신이 몸담고 있던 I신약을 그만둔 후 2003년 한국미생물연구소(코미팜의 전신)에 입사해 2006년 3월까지 전무이사(한때 연구소장 겸임)로 재직했다.
배 대표는 이런 전력(前歷)을 지닌 이씨가 코미팜에 입사한 뒤, 1998년 당시 시행했던 동물효능시험 결과를 코미팜에 제공하고 마치 자신이 메타아르세나이트염(NaAsO2)이라는 새로운 항암물질의 개발을 주도한 것처럼 대내외에 알려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천지산 배일주 대표가 서울중앙지검에 낸 고소장.
참고로, 삼산화비소를 주성분으로 한 ‘트리세녹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현재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의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배 대표는 자신이 개발한 육산화비소에 대해 1998년 5월 ‘천연 화학물질 육산화비소의 신규한 항종양 치료제로서의 용도 및 그 약학적 조성물’이라는 명칭으로 특허등록을 하는 등 한국을 비롯한 세계 25개국에서 특허를 얻은 바 있다. 반면 이씨와 코미팜의 양모 회장(당시는 대표이사)은 2002년 4월 ‘메타아르세나이트염을 함유한 항암제 조성물’에 대한 특허를 출원해 2004년 11월 특허등록을 했다. 배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이씨와 코미팜 양 회장이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5월30일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해놓은 상황이다.
이에 앞서 배 대표는 5월15일 이씨와 양 회장에게 △항암제 조성물의 유효성분이라는 메타아르세나이트염이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그것의 입수처 또는 제법(製法)에 대한 기술적 구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에 따른 항암효능이나 기작(메커니즘)을 인정할 만한 설명 또는 동물실험 결과 등 항암제로서의 효과에 대한 기재가 미비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자신의 특허를 침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비소 함유 항암제 취급계약 위반 및 특허침해 중지의 건’이라는 제목의 경고장을 내용증명으로 보냈다.
이에 양 회장은 5월29일 배 대표에게 보낸 답변서에서 ‘(배 대표가) 경고장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사실관계는 모두 이씨와 관계된 것으로, 이는 본인(양 회장)이 직접 관여하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사항’이라고 답했다.
육산화비소와 메타아르세나이트염의 성분과 효능, 연관성에 관한 비교·분석은 그 특성상 해당 전문가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배 대표가 문제삼는 특허침해 의혹의 열쇠를 쥔 당사자는 테트라스(천지산)와 코미녹스라는 두 항암제의 교집합에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씨다.
이씨는 코미팜을 그만둔 뒤 경기도 안산의 한 제약회사 공장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7월16일 ‘주간동아’와의 통화에서 “1998년 당시 배 대표의 의뢰로 HD-2 샘플을 네덜란드에 특급우편으로 보냈고, 그 결과 동물효능시험은 독일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개발한 메타아르세나이트염은 삼산화비소를 기반으로 한 것인 만큼 배 대표의 육산화비소와는 무관한 새로운 물질이므로 특허를 침해하고 비밀유지 계약을 위반했다는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공박했다.
코미팜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아
한때 이씨와 손잡고 일했던 코미팜 측의 입장은 어떨까. 코미팜은 7월9일 자사 홈페이지 ‘IR 자료실’에 올린 문성철 현 대표 명의의 ‘주주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자사의 특허는 제법 특허가 아니므로 물질의 입수처 또는 제법에 따른 기술적 구성을 밝힐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배 대표가 코미팜 연구소장을 지낸 이씨에게 HD-2 샘플 10g을 줬다는 점을 들면서 이를 활용해 코미녹스를 개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1998년 배 대표와 I신약이 공동으로 HD-2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을 때 이씨가 I신약 이사로 개발에 관여한 것은 맞지만, 당시 독일 온코테스트연구소에서 동물(마우스)을 대상으로 HD-2의 효과실험을 한 결과 암세포에 대한 치사율이 34%(경구투여의 경우)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7월18일 양 회장은 “이씨와 코미팜이 자신의 육산화비소를 도용해 또 다른 비소 성분 항암제를 개발 중이라는 배 대표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코미팜은 육산화비소에 전혀 관심 없다”며 “배 대표에게 국가기관이나 시민단체 등 공신력을 지닌 제삼자를 선정해 우리와 서로의 항암제 개발에 대한 확인 절차를 밟을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편 코미팜은 2006년 4월 증권선물거래위원회가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시세조종 혐의로 양 회장을 검찰에 고발해 서울중앙지검이 이와 관련한 증권거래법 위반 사건을 아직도 수사 중이다.
이번 특허침해 사건을 담당할 서울중앙지검 최현기 검사는 “원래 이번 사건 수사를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하도록 지휘했지만, 피고소인 이씨가 자신의 주소지인 경기도 안양에서 수사받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밝혀와 관할 지방검찰청인 수원지검에서 수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계류 중인 코미팜 관련 증권거래법 위반 사건은 금융조사부에서 맡고 있으므로 이번 사건과는 따로 취급된다”고 덧붙였다.
21세기 BT(생명공학)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향후 세계 항암제 시장에 돌풍을 불러올지도 모를 비소 성분 항암제들을 둘러싼 배 대표와 이씨, 코미팜의 ‘진실 공방’은 이 땅의 수많은 암환자와 투자자들에게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자연 검찰의 이번 사건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