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수업을 받는 1학년 학생들.
“Me!”(저요) “Me!”(저요)
3월19일 오후 부산 금정구 구서동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 영어회화 시간.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는 질 선생님의 질문에 1학년 학생들이 앞다퉈 영어로 답한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형용사를 익히는 것. 영국과 미국 출신 원어민 교사들에게 교대로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영어 악센트를 체험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미국의 명문 보딩스쿨(기숙학교) 모델을 도입한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 교육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존의 브니엘예술중학교가 교명 변경 인가를 받아 이번 학기부터 새출발을 하는 이 학교는 대규모 투자로 최첨단 시설을 확보하고 커리큘럼까지 싹 바꿨다.
올 개교 전국서 모인 학생들
이러한 변신에는 학교법인 브니엘학원 정근 이사장의 결단이 크게 작용했다. 기러기 아빠였던 그가 “외국 명문사립학교의 모델을 한국식으로 수정해 조기유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학교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해 이뤄진 것. 학교는 외국 사립학교처럼 예능·리더십·전인교육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부산은 물론 서울 대전 대구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온 70여 명의 신입생들은 세 반으로 나뉘어 소수 정예 수업을 받는다. 외국어, 수학·과학, 예능 등 각기 다른 분야에 재능을 지닌 학생들이 모이다 보니 과목마다 실력편차가 나게 마련. 하지만 학생들은 심화수업(국어 수학 영어 논술 과학)을 통해 자신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오랫동안 외국에 거주해 한국말이 서툰 학생은 국어를 보충하고, 과학 영재는 한 단계 어려운 커리큘럼을 공부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에는 사교육을 받는 학생이 없다. 이 학교의 한 달 학비는 70여 만원(기숙사비 30만원은 별도)으로 일반 학교보다 비싸지만, 사교육비가 들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다. ‘사교육 1번지’인 서울 목동에서 얼마 전 이곳으로 전학 온 한정언(13) 군의 얼굴엔 생기가 넘쳤다.
“이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교 동창의 얘길 듣고 전학을 결심했어요. 서울에선 학원을 네 곳이나 다녔는데, 여기선 학원에 안 가고도 주요 과목은 물론 예능과 외국어 회화까지 배울 수 있잖아요. 기숙사 생활도 재밌어요.”
미술시간에 데생을 배우는 1학년 학생들.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예술 클래스다. 모든 학생은 음악, 무용, 미술 중 원하는 예술과목을 매일 한 시간씩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기자 일행이 미술 클래스를 기습 방문했을 때, 학생들은 데생 배우기에 한창이었다. 능숙하게 명암을 넣는 학생부터 선긋기가 미숙한 학생까지 이들의 실력은 천차만별. 하지만 여기서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학생들에게 예술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좋은 강사 모시기’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미국식·영국식 영어를 동시에 훈련할 수 있도록 두 나라 출신 영어교사를 함께 채용했고, 중국어 교사도 배치했다. 매주 한시간씩 진행되는 스피치리더십 수업 강사로는 ‘우리말 웅변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채권 씨를 초빙했다. 학생들에게 발성법, 연설법, 토론법 등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전인교육, 학부모들 남다른 기대
각 교실의 최첨단 시설은 학생들의 시청각을 자극해 교육효과를 높였다. 사회 시간, 이형진 교사는 손으로 터치하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컴퓨터 칠판’에 갑문식 운하의 단면을 그렸다. 밀물 때 물을 가둬 배가 항구에 떠 있게 하는 갑문식 운하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어 교사가 파워포인트와 동영상 자료를 보여주자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 교사는 최첨단 시설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멀티미디어로 정보를 찾고 그것을 의미 있게 구성하는 방법까지 알려줄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각 교실에 설치된 CCTV는 합리적인 교원 평가와 학생 감시의 도구로 활용된다. 각 가정에서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녀의 수업 장면을 체크할 수 있도록 한 것. 교사는 자신의 수업이 녹화되는 만큼 더욱 책임감을 갖고, 학생들도 수업 시간에 딴청을 피우지 못한다. “인권침해 아니냐”는 질문에 강규철 교감은 고개를 저었다.
영국인인 질 선생님의 영어회화 수업.<br>기숙사에서 한방을 쓰는 네 명의 여학생들(아래).
선발시험을 거쳐 입학한 학생들이 서로 경쟁하다 보니 학업 스트레스가 클 법하다. 하지만 학교 측은 “학사과정을 과목별, 단계별 수업으로 진행하되 상대평가를 하지 않고 평균과 편차만 산출해 성적 스트레스를 없앴다”고 밝혔다.
출범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의 교육성과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 학교의 교육실험에 학부모들은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서울에서 둘째 아들을 이 학교에 보낸 학부모 백혜성(42) 씨는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가 조기유학 열풍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첫째는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둘째는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해외에 있는 첫째는 걱정될 때가 많은데, 둘째는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어 안심이 됩니다. 둘째가 일반학교에 다녔다면 어린 시절 배운 악기도 모두 포기했을 텐데, 계속 특기를 기를 수 있어 만족스러워요. 셋째도 조기유학을 보내는 대신 이 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