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해외동포가 많은 국가에 해외지부를 설치키로 했다. 3월경 첫 해외지부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실무 차원의 검토까지 끝냈다. 미국, 일본 등 해외동포가 많은 국가엔 대도시별로 지부를 세울 계획이다.
해외지부 설치는 “당 차원에서 해외동포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황진하 한나라당 국제위원장) 것이다. 그러나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문제가 공감대를 얻고 있는 상황인 만큼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지지세 확보에 나서겠다는 속셈도 있다.
현재 세계 각국에 살고 있는 해외동포는 630여 만명. 그중 외국의 시민권자가 아닌 영주권자와 유학생 등 재외국민은 270만명에 달한다. 재외국민은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있지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주미대사, 자이툰부대원도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없는 것.
영주권자 등 재외국민 270여 만명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겐 지방선거 참정권을 주면서도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에겐 투표권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난센스다.”(재유럽한인총연합회 김다현 회장)
여야는 재외국민에게 ‘한 표의 권리’를 주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표 계산을 하면서 득실을 따지고 있는 것. 1997년, 2002년 대선은 초박빙 승부였다. 따라서 재외국민에게 한 표의 권리가 주어지면 결국 해외 표심이 승패를 가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1975년, 76년에, 독일과 영국은 85년에 재외국민 부재자 투표제를 도입했다. 이탈리아는 OECD 가입국 중에선 비교적 늦은 2003년부터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외국 영주권을 가진 자국민을 선거에 참여시키고 있는 것.
흥미롭게도 한국은 선진국보다 먼저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준 적이 있다. 1967년 실시된 제6대 대선과 제7대 국회의원 선거, 71년 제7대 대선과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외국민은 한 표를 행사했다. 그렇다면 박정희 정부는 왜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었을까.
속살을 들여다보면 씁쓸해진다. 당시의 해외 부재자 투표는 여당 후보에게 우호적인 베트남 파병군의 표를 확보하기 위한 ‘꼼수’였던 것. 독일의 광부와 간호사들도 선거에 일부 참여했으나 해외 투표자 중 군인 비율은 90%에 달했다. 군인 표가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음은 자명하다.
1972년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법이 발표되고 기존의 대통령선거법이 폐지됨으로써 네 번의 선거에서 시행된 해외 부재자 투표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파월 한국군은 71년 11월 베트남 정부와 협정을 체결한 뒤 단계적으로 철수를 시작해 73년 철군을 완료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해외 부재자 투표 관련 논의는 박정희 정부의 ‘꼼수’를 연상케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국회엔 3개의 법안이 제출돼 있는데 한나라당에서는 유기준, 홍준표 의원이, 열린우리당에선 김성곤 의원이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덕룡 의원도 재외국민 투표권 관련 법안을 조만간 제출할 예정이다.
홍 의원의 개정안은 선진국처럼 단기 체류자뿐 아니라 한국 국적을 가진 영주권자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것으로 돼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270만명가량의 유권자가 새로 생기는 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언명해왔다.
또 다시 투표권 접점 못 찾을 수도
김성곤 의원의 개정안은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해온 대로 유학생, 해외 상사원 등 단기 체류자에게만 먼저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게 골자다. 해외 단기체류자는 70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제15대 대선 때 39만 표, 제16대 대선 때 57만 표 차로 승패가 갈린 점을 감안하면 이들도 대선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다.
정당들은 온전한 참정권을 갖게 되는 재외국민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선거에서의 득실이 달라진다고 보고 있다. 재외국민의 선거참여 문제가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특정 정당 또는 입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조정하는 행위) 식으로 논의되는 까닭이다.
한나라당은 재외국민이 보수적일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계 교포 40만명 중 절반가량만 유권자로 참여하더라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 한나라당은 중산층 정서를 가진 재미교포들도 우군으로 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해외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주면 납세나 병역의무 불이행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 영주권자를 선거에 참여시키는 데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반면 유학생을 비롯한 해외 단기체류자 중에는 20, 30대가 많아 투표권을 주더라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는 태도다.
선거법은 정치인들에겐 일종의 ‘레퍼리’다. 선거법은 여야가 100% 합의하지 않는 상황에선 표결이 이뤄지기 어렵다. 12월 대선에 재외국민이 참여하려면 늦어도 5월 임시국회에선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해외 부재자 투표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만 3개월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
“여야는 표 계산을 해본 뒤 각자에게 유리한 선거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여야가 상대당의 제안은 우리에게 손해라면서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다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문제를 다음 대선 때 논의하자고 ‘합의’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은 언제까지 당리당략 차원에서만 재외국민 투표권 문제를 다룰 것인가.”(재외동포신문 ‘세계로’ 김제완 대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셈법처럼 재외국민을 한 뭉텅이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12월 세계 각국의 부재자 투표소에서 한국의 대통령을 뽑는 재외국민들을 볼 수 있을까.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해외지부 설치는 “당 차원에서 해외동포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황진하 한나라당 국제위원장) 것이다. 그러나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문제가 공감대를 얻고 있는 상황인 만큼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지지세 확보에 나서겠다는 속셈도 있다.
현재 세계 각국에 살고 있는 해외동포는 630여 만명. 그중 외국의 시민권자가 아닌 영주권자와 유학생 등 재외국민은 270만명에 달한다. 재외국민은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있지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주미대사, 자이툰부대원도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없는 것.
영주권자 등 재외국민 270여 만명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겐 지방선거 참정권을 주면서도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에겐 투표권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난센스다.”(재유럽한인총연합회 김다현 회장)
여야는 재외국민에게 ‘한 표의 권리’를 주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표 계산을 하면서 득실을 따지고 있는 것. 1997년, 2002년 대선은 초박빙 승부였다. 따라서 재외국민에게 한 표의 권리가 주어지면 결국 해외 표심이 승패를 가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1975년, 76년에, 독일과 영국은 85년에 재외국민 부재자 투표제를 도입했다. 이탈리아는 OECD 가입국 중에선 비교적 늦은 2003년부터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외국 영주권을 가진 자국민을 선거에 참여시키고 있는 것.
흥미롭게도 한국은 선진국보다 먼저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준 적이 있다. 1967년 실시된 제6대 대선과 제7대 국회의원 선거, 71년 제7대 대선과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외국민은 한 표를 행사했다. 그렇다면 박정희 정부는 왜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었을까.
속살을 들여다보면 씁쓸해진다. 당시의 해외 부재자 투표는 여당 후보에게 우호적인 베트남 파병군의 표를 확보하기 위한 ‘꼼수’였던 것. 독일의 광부와 간호사들도 선거에 일부 참여했으나 해외 투표자 중 군인 비율은 90%에 달했다. 군인 표가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음은 자명하다.
1972년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법이 발표되고 기존의 대통령선거법이 폐지됨으로써 네 번의 선거에서 시행된 해외 부재자 투표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파월 한국군은 71년 11월 베트남 정부와 협정을 체결한 뒤 단계적으로 철수를 시작해 73년 철군을 완료했다.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 미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이 2004년 10월11일 대통령 선거 부재자 투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자이툰 부대원들은 현지에서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없다.
홍 의원의 개정안은 선진국처럼 단기 체류자뿐 아니라 한국 국적을 가진 영주권자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것으로 돼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270만명가량의 유권자가 새로 생기는 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언명해왔다.
또 다시 투표권 접점 못 찾을 수도
김성곤 의원의 개정안은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해온 대로 유학생, 해외 상사원 등 단기 체류자에게만 먼저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게 골자다. 해외 단기체류자는 70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제15대 대선 때 39만 표, 제16대 대선 때 57만 표 차로 승패가 갈린 점을 감안하면 이들도 대선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다.
정당들은 온전한 참정권을 갖게 되는 재외국민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선거에서의 득실이 달라진다고 보고 있다. 재외국민의 선거참여 문제가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특정 정당 또는 입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조정하는 행위) 식으로 논의되는 까닭이다.
한나라당은 재외국민이 보수적일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계 교포 40만명 중 절반가량만 유권자로 참여하더라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 한나라당은 중산층 정서를 가진 재미교포들도 우군으로 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해외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주면 납세나 병역의무 불이행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 영주권자를 선거에 참여시키는 데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반면 유학생을 비롯한 해외 단기체류자 중에는 20, 30대가 많아 투표권을 주더라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는 태도다.
선거법은 정치인들에겐 일종의 ‘레퍼리’다. 선거법은 여야가 100% 합의하지 않는 상황에선 표결이 이뤄지기 어렵다. 12월 대선에 재외국민이 참여하려면 늦어도 5월 임시국회에선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해외 부재자 투표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만 3개월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
“여야는 표 계산을 해본 뒤 각자에게 유리한 선거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여야가 상대당의 제안은 우리에게 손해라면서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다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문제를 다음 대선 때 논의하자고 ‘합의’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은 언제까지 당리당략 차원에서만 재외국민 투표권 문제를 다룰 것인가.”(재외동포신문 ‘세계로’ 김제완 대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셈법처럼 재외국민을 한 뭉텅이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12월 세계 각국의 부재자 투표소에서 한국의 대통령을 뽑는 재외국민들을 볼 수 있을까.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