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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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목숨 건 ‘젯셋족’ 아십니까?

비행기와 크루즈로 여유 있는 인생 추구 … 여행 서비스와 용품도 업그레이드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7-02-12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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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 목숨 건 ‘젯셋족’ 아십니까?
    여행에 목숨 건 ‘젯셋족’ 아십니까?

    정장과 리조트 웨어를 매치한 에르메스의 크루즈라인(좌).<br>골드와 블랙 · 화이트라는 요즘 유행을 반영한 수영복과 가운. 에르메스(우).

    “2~3년 전만 해도 ‘여행=여름휴가’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1년 내내 여행 중입니다. 여행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거나요.”(싱가포르 항공사 김명성 상무)

    “놀랄 만큼 많은 한국 사람들이 겨울철에 크루즈를 떠나고 있어요. 아시아에서 메이저 크루즈 회사가 처음 들어온 나라도 한국이고, 현재 한국에서 대형 크루즈 회사만 12개가 영업 중입니다.”(크루즈 인터내셔널 이현주 과장)

    “예전엔 겨울철에 리조트로 떠나는 소수의 부호들을 위해 몇 가지 여름용품을 선보이는 정도였는데, 2000년 무렵부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 올해부터는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크루즈 컬렉션을 내놓고 쇼를 열었어요. 그러니까 세계 컬렉션 자체가 1년에 3회로 늘어났죠.”(샤넬코리아 장회정 차장)

    ‘젯셋(jet-set)족’과 ‘크루즈족’이 날고 있다. 원래 전용 제트기나 호화 유람선을 타고 세계 여행을 다니는 상류층을 가리키던 이 말은 오늘날 비행기와 크루즈로 여유 있게 여행 다니는 라이프 스타일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최초의 젯셋족으로 꼽히는 재클린 케네디나 ‘젯셋족의 아이콘’ 패리스 힐튼(힐튼호텔 재벌가의 상속녀)만큼 엄청난 부자는 아니어도, 여행과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며 돈뿐 아니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진짜 상류층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세대와 나이를 초월해 ‘여행’이라는 취향 하나로 떠오른 독특한 소비층이기 때문이다.

    2000년 코스타크루즈라는 크루즈 선박이 처음 한국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업무상 자주 해외에 체류하는 기업인들이나 시간과 돈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아지면서 ‘여행에 목숨을 건’ 젯셋족이 급증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주5일 근무제 도입이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잠재적 젯셋족을 증가시켰음은 물론이다.



    여행에 목숨 건 ‘젯셋족’ 아십니까?

    도시 혹은 해변에서 겨울옷과 여름옷에 모두 잘 어울리는 ‘크루즈 컬렉션’ 구두. 샤넬.<br>스몰 체스, 4칸짜리 필박스<br>긴 여행을 즐기는 젯셋족을 위한 여행용품들. 수채화 드로잉 키트,(왼쪽부터).

    한국에서 대형 크루즈 회사 12개 영업 중

    여행에 목숨 건 ‘젯셋족’ 아십니까?

    세계 최초로 바퀴 달린 트렁크를 만든 샘소나이트는 한국에 세계 최대의 매장을 열었다.

    젯셋족과 크루즈족에게는 여행지보다 여행 과정과 여행지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느끼며,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여행의 큰 즐거움이 여행하는 자신의 모습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 탄생한 젯셋족 바비인형은 나풀거리는 랩스커트를 입고 한 손엔 여권과 화이트 빅 백을, 다른 손엔 인기 디자이너 다이안 폰 퍼스텐버그가 디자인한 트렁크의 손잡이를 쥐고 있다. 운동화와 청바지 차림에 허리에 벨트색을 차거나 등에 배낭을 멘 채 기념사진 찍기에 바쁜 ‘관광단’과 젯셋족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여행의 질과 폼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여행 관련 서비스와 용품도 한층 다양해지고 럭셔리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크루즈 컬렉션이다. 겨울에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는 젯셋족과 크루즈족은 장롱에서 지난 여름옷을 꺼내지 않는다. 크루즈 컬렉션이 새로운 트렌드를 미리 보여주고,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맞는 아이템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크루즈 컬렉션의 소비층은 홍콩이나 일본으로 잠깐 ‘도깨비 여행’을 다니는 여성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영하의 겨울 날씨에 백화점 쇼윈도의 마네킹들이 모피 안에 수영복과 샌들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도 크루즈 컬렉션이 상당히 대중화했음을 보여주는 예다.

    “정통 s/s(봄/여름)와 f/w(가을/겨울) 컬렉션에는 회사나 일상생활에서 입기에 부담스런 옷들이 많은 반면, 크루즈 컬렉션은 기능성을 살린 아우터 중심이기 때문에 실용적인 데다 로고를 강조한 디자인이 많아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부담이 없는 편이죠. 여행 가기 전 크루즈 컬렉션을 사면 여행지에서 돋보일 뿐 아니라 도심에서도 입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크루즈 컬렉션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어요.”(서은영, 스타일리스트)

    올해 s/s의 테마를 ‘크루즈’로 잡은 에르메스의 여성복은 수영복에 정장 재킷을, 남성복은 광물의 회색과 열대 정글의 녹색을 매치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비즈니스와 휴양을 겸해 전 세계를 누비는 젯셋족의 속성을 재치 있게 담은 것. 전통적으로 여행 관련 아이템을 많이 내놓는 에르메스는 아침·점심·저녁으로 내복약을 구분해 담을 수 있는 작은 상자, 나침반, 체스판 등과 여행지의 인상을 기록할 수 있는 드로잉 세트를 내놓았는데 해외여행을 앞둔 중노년층의 선물용으로 인기 있다고 한다.

    여행에 목숨 건 ‘젯셋족’ 아십니까?

    ‘젯셋족’과 ‘크루즈족’은 청바지 대신 파티를 위한 드레스를 입는다. ‘크루즈 컬렉션’은 겨울에 공개되므로 샌들도 부츠 형태를 살렸다. 샤넬. (좌)<br>비즈니스를 위한 재킷과 남국의 해변을 위한 수영복을 매치한 샤넬 ‘크루즈 컬렉션’(우).

    뉴욕 그랜드센트럴역에서 공개된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은 헐렁한 데님 팬츠나 조개와 기관차 문양의 보석, 수영복 위에 입는 가운 등을 통해 1920년대 사넬의 크루즈 정신을 살렸다는 평이다. 유럽 상류층과 예술가들이 마차에 모자와 드레스, 식기를 담은 트렁크를 바리바리 싣고 이탈리아로 여행 가던 ‘좋은 시절’에 대한 향수 말이다.

    이 밖에도 일찌감치 크루즈를 정례 컬렉션화한 펜디, 하와이풍의 이브생로랑 등 모든 브랜드가 ‘새로운 소비 광맥’인 젯셋족을 유혹하고 있다. 루이뷔통은 아예 마차시대의 바퀴 없는 클래식 트렁크를 다시 내놓았는데, 이는 진정한 ‘젯셋족’이라면 운전기사와 도어맨, 벨보이의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1974년 바퀴 달린 트렁크 케이스를 선보여 여행자의 상징이 된 샘소나이트는 젯셋족에게 소재와 디자인을 고급화한 ‘블랙라벨’ 라인과 네 바퀴를 단 트렁크 케이스를 제안한다. 샘소나이트는 ‘Life is Journey’라는 컨셉트로 2006년 6월 서울 청담동에 세계에서 가장 큰 플래그숍을 열어 한국 젯셋족의 성장을 입증했다.

    크루즈 컬렉션 새 소비 트렌드로 부상

    여행에 목숨 건 ‘젯셋족’ 아십니까?

    2006년부터 한국의 크루즈족이 급속히 늘어나 크루즈 선박엔 한국인 직원도 탑승한다. 크루즈 인터내셔널.

    “트렁크는 여행가방을 넘어 ‘머스트 해브’라는 인식이 생겨났어요. 공항이나 여행지에서 백화점 사은품용 트렁크를 든 여행객과 여행 전문가용 트렁크를 든 여행객은 아주 다른 인상을 주니까요.”(샘소나이트코리아 조상은 대리)

    최근 남성 젯셋족에게는 슈트와 랩탑 수납기능이 있는 기내용 트렁크가, 여성들에게는 안쪽에 탈착할 수 있는 세탁물, 화장품, 세면도구 실크백을 만들어 각각 별도의 가방으로 쓰게 한 빈티지 라인 트렁크가 인기다. 화려하고 선명한 색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젯셋족이나 크루즈족이란 여전히 꿈 같은 이야기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꿈꾸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크루즈 여행의 가격대는 많이 내려가 홍콩-하롱베이-하이난 섬 5박6일의 경우 90만원대 상품까지 나왔고, 중저가 내셔널 브랜드에서도 한창 추운 겨울에 크루즈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결코 떠나지 못해도 지중해빛 셔츠나 은빛 트렁크 하나만 가져도 떠남을 꿈꾸는 것, 젯셋족과 크루즈족이 새로운 소비 파워로 급팽창하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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