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두오모 성당.
그 관광객들이 600년쯤 앞서서, 그러니까 1415년 8월 어느 날 그곳에 갔더라면 재연이 아니라 지대한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실험에 직접 참여해 실연(實演)할 영광을 얻었을 것이다. 그날 두오모 성당의 세례당 앞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는 세례당을 마주 보고 선 채 한 손에 나무 패널을, 다른 손에는 거울을 들고 이상한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아마도 이 사내가 하는 실험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거울을 든 이상한 실험
사내는 오른손에 든 패널을 바짝 얼굴 앞에 갖다 대고, 왼손에 든 거울을 앞으로 당겼다 뒤로 밀었다 하기를 반복했다. 찾아야 할 곳을 찾은 듯 앞뒤로 움직이던 거울이 한 지점에 멈추고, 잠시 후 그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 묘한 미소가 흘렀다. 이어서 그는 제 손에 든 도구를 주위에 몰려든 구경꾼들에게 차례로 넘겨준다. 호기심에 안달이 난 구경꾼들은 그가 시키는 대로 거울을 밀었다 당겼다 하다가 저마다 경탄의 환성을 질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이상한 실험을 한 사내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1377~1446)로 미술사에서 최초로 선원근법의 원리를 발명한 이로 알려져 있다. 오른손의 나무 패널에는 그가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례당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자신이 발명한 원근법에 따라 그린 것이다. 불행히도 이 그림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은데,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이 그림의 소실점이 있는 곳에 그는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놓았다고 한다. 거울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그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아마 이런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둥근 이미지는 패널에 뚫린 구멍이 만들어내는 시야(視野)이고, 네모난 거울 바깥으로 보이는 것은 앞에 서 있는 실물 세례당, 거울 안으로 보이는 것은 패널 위에 그려진 그림 세례당의 모습이다. 그런데 실물 세례당과 거울에 비친 그림 세례당이 마치 두 개의 퍼즐 조각처럼 서로 딱 들어맞는다. 이로써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의 원근법이 현실을 재현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임을 증명했던 것이다. 안토니오 마네티(1423~1497)가 쓴 브루넬레스키의 전기에 나오는 얘기다.
두오모 성당의 거대한 돔을 만든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왼쪽). 성당과 마주한 곳에 있는 세례당.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다는 피렌체의 아르노 강. 그 강물 위 베키오 다리는 지금도 금세공품을 파는 조그만 가게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시의 많은 장인들처럼 브루넬레스키도 금세공사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피렌체 시에서 세례당의 달 청동문 제작을 의뢰했을 때, 브루넬레스키는 기베르티와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었던 심사위원들은 두 장인에게 각각 한 짝씩 문을 맡겼으나, 브루넬레스키는 공동작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지 청동문 제작일을 기베르티에게 넘기고 자신은 건축으로 관심을 돌린다.
세례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두오모 성당). 브루넬레스키는 지름 45m에 이르는 성당의 거대한 돔을 짓는 일을 맡아 이 기술적 난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다. 오늘날 피렌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아마도 끝없이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저 높은 쿠폴라에 오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그의 자부심은 오늘날에도 광장의 한 귀퉁이에 영원히 자신의 역작을 올려다보도록 조각상으로 굳어 있다.
마사초가 그린 ‘삼위일체’
마사초가 그린 ‘삼위일체’.
이 작품을 보려면 두오모에서 조금 걸어나와 근처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으로 가야 한다. 마사초(1401~1428)가 이 성당의 벽에 프레스코로 그린 ‘삼위일체’(1425~1428)는 미술사에서 브루넬레스키의 기법을 회화에 적용한 최초의 예로 알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위로 십자가에 달린 아들을 보살피는 하느님의 모습이 보인다. 십자가 양옆에 서 있는 인물은 사도 요한과 마리아. 그 바깥쪽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아마도 이 작품의 제작을 후원한 패트런들일 것이다.
아래쪽에 보이는 해골은 아담의 것. 당시 사람들은 골고다 언덕, 그러니까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진 바로 아래에 아담의 무덤이 있다고 믿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처럼, 영생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다”고 말했다. 즉 한 사람(아담)의 원죄로 인류에게 죽음이 도입되고, 한 사람(예수)의 부활로 인류가 영생을 되찾았다는 얘기다. 당시 사람들은 이 두 사건을 하나의 공간에 묶어 상상하려 했던 것이다.
과격한 투시법 사용
이 작품의 독특성은 시점의 과격함에 있다. 아치의 천장에서 시작된 대각선들(orthogonal lines)을 아래로 계속 연장하면 십자가의 밑동보다 더 아래쪽에 소실점이 찍히게 된다. 마사초가 이렇게 투시법을 과격하게 사용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 지점이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의 눈높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실점을 정확하게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놓음으로써 마사초는 환영효과를 극대화한다. 이 때문에 저 그림은 실제로는 막힌 벽면 위에 그려졌지만, 관찰자는 막힌 벽을 뚫고 깊숙이 공간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림은 저 벽화 앞에 선 관찰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공간의 깊이감을 표현하고 있다. 무릎을 꿇은 패트런, 서 있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그 뒤로 자식을 어루만지는 하느님. 묘사된 인물들은 전경에서 후경으로 가면서 각각 네 개의 수준에 배치되어 있지만, 이는 그저 허깨비에 불과하다. 저 공간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2차원의 평면뿐, 거기서 3차원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원근법의 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