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핵심처인 자금성(紫禁城).
풍수에도 지정학과 유사한 것이 있다. 한 나라 혹은 도읍의 위치와 그 국가의 흥망성쇠와의 관련성을 따져보는 국역풍수(國域風水)가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 풍수에서 보면 조선보다는 고려 왕조에서 이를 더 비중 있게 다루었다. 위정자들에게 국역풍수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천도론이나 삼경제도 같은 것도 국역풍수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좌청룡 우백호 수백km 떨어진 곳에 위치
중국의 역대 도읍지 변천사를 보면 흥미롭다. 크게 보면 숱한 왕조의 흥망성쇠에도 불구하고 역대 왕조들은 베이징을 가장 선호했다. 베이징을 지도에서 보면 중국의 중심지라 할 수도 없고 기후도 그리 좋지 않다. 또 멀지 않은 곳에 만리장성(萬里長城)이 있어 이민족과 바로 국경을 접하는 곳이다. 상식적으로 보아 썩 좋은 위치가 아닌 듯 여겨진다.
안읍(安邑), 호경(鎬京), 낙양(洛陽), 함양(咸陽), 장안(長安), 남경(南京), 건강(建康) 등 많은 도시들이 한 왕조의 도읍지가 되었지만 베이징처럼 몇 대 왕조에 걸쳐 도읍지의 지위를 차지한 적은 없었다. 금, 원, 명, 청에 이어 현재 중국 수도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0년 동안 베이징은 도읍지로 구실해온 것이다.
위대한 사상가는 직관으로 터의 성격과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성리학의 대가 주자(朱子, 1130~1200)는 일찍이 베이징 일대를 역대 도읍지 중에 가장 좋은 곳으로 보았다. 주자는 풍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제자인 채원정(蔡元定)에게 본격적으로 풍수 공부를 가르쳤고, 65세 때인 1194년 송 황제 영종(寧宗)에게 ‘산릉의장(山陵議狀)’이라는 글을 올려 풍수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설파한다. 그러한 주자인 만큼 중국 전역의 풍수에 이미 통달하고 난 뒤 베이징의 풍수를 논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주자는 베이징 일대를 풍수적으로 다음과 같이 논했다.
“기도(冀都·현재의 베이징 일대)는 세상에서 풍수상 대길지다. 운중(雲中)에서 출발한 맥을 이어받고, 앞에는 황하(黃河)가 둘러싸고 있으며, 태산(泰山)이 왼쪽에 높이 솟아 청룡이 되고, 화산(華山)이 오른쪽에 솟아 백호가 된다. 숭산(嵩山)이 안산이 되고, 회남의 여러 산이 제2 안산이 되고, 강남의 여러 산이 제3 안산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여러 도읍지 가운데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주자어록’)
서울과 비교해보면 중국인들의 과장된 풍수관에 황당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청룡은 낙산(동대문 부근)이고, 백호는 인왕산, 안산은 남산으로 왕궁에서 불과 몇 km 떨어진 지근 거리에 있다. 한강 역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도읍지인 서울을 감아돌고 있다. 반면 베이징에 가서는 서울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산들을 찾아볼 수 없다.
한강에 해당되는 황하, 인왕산과 낙산에 해당되는 태산과 화산, 그리고 안산에 해당되는 숭산이 베이징으로부터 수백 km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 서구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국역풍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안정된 곳, 가장 좋은 기운이 뭉쳤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도읍지를 정하고 그곳으로부터 등거리(等距離)의 모든 땅을 통치하겠다는 발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남으로는 강남 아래까지, 북으로는 몽골(蒙古), 동으로는 한반도, 서로는 티베트와 신장(新疆)까지를 아울러 천하가 중국 땅이 아닌 곳이 없게 하겠다는 중국인의 풍수관이었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동북공정’ 역시 이와 같이 잠재된 중국인의 풍수관의 발로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