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한다면, 영화의 주인공들은 인라인스케이트에 푹 빠져 있는 젊은이들이다. 그냥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그걸 타고 콘크리트의 현대 도시를 가로지르며 물리학적으로 가능한 온갖 비행을 시도하는 아이들이다. 물론 이 아이들은 끝도 없이 세상과 충돌한다. 아이들의 열정을 이해 못하는 부모들, 툭하면 맞닥뜨리는 경찰관 등. 영화는 막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주인공 소요의 눈을 통해 이 에너지와 환희, 고통이 넘쳐 흐르는 젊은이들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관객들의 눈앞에서 열어 보인다.
어디선가 갑자기 폭발할 것 같은 내용이고 사실 그런 부분도 없진 않지만, ‘태풍태양’은 여전히 모범적이다. 영화는 안전한 스포츠 영화 장르의 공식에 갇혀 있다. 막 스포츠 세계에 입문한 주인공으로부터 모범적인 리더, 무책임한 반항아, 반항아와 주인공 사이에서 헷갈리게 구는 여자 친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설정이 청춘 스포츠 영화 만들기 교과서에서 그대로 따온 것 같다.

정재은 감독의 전작 ‘고양이를 부탁해’와 비교해보면 이 아쉬움은 더욱 강해진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인공들은 성격과 위치에 따라 역할이 배분되긴 했지만 생생했고 현실감이 넘쳤다. 하지만 ‘태풍태양’의 주인공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고민하고 갈등해도 그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이 잘 아는 세계를 그리는 것과 외부자의 시점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탐구하는 것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예의를 차리고 필요 이상으로 조심한다.
그럼에도 ‘태풍태양’은 장점이 많은 영화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마찬가지로, 정재은은 현대 한국 도시의 질감을 어떻게 필름에 옮겨야 하는지 알고 있다. 인라인스케이트의 역동적인 세계 역시 근사하게 옮겨놓았다. 아무리 모범생처럼 군다 해도 영화가 그리는 주인공들의 고민은 상당히 많이 남는다.
하지만 아무리 장점을 인정해주고 싶어한다고 해도 ‘태풍태양’에서 ‘고양이를 부탁해’의 진실성을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