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올림픽 삼성홍보관.
강동우는 수술을 받고 팀에서 재활훈련에 들어갔으나 재활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었다. 키에 비해 긴 목발 때문에 왼쪽 어깨에 염증이 생긴 것. 어깨 회전을 담당하는 근육을 다친 강동우는 공을 들 수조차 없었다. 야구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강동우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2000년 1월부터 대구를 떠나 경기 용인시의 삼성 스포츠과학지원실에서 2개월 남짓 재활훈련에 매달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포츠과학지원실이 제공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재활프로그램이 강동우를 훈련 시작한 지 75일 만에 ‘정상 선수’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삼성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포츠과학지원실을 운영한다. 스포츠과학지원실은 삼성이 보유한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16개 종목 선수 300여명의 몸 상태를 관리·지원한다. 96년 1월 문을 연 이곳엔 4주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선수들이 들어와 ‘재활프로그램’ 과정을 밟는다. 강동우가 삼성 선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야구선수가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삼성은 스포츠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돈성’이라는 비아냥거림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러나 무작정 돈만 내는 것은 아니다. 삼성이 보유한 16개 종목 가운데 대표적인 팀들의 현주소를 알아보자.
돈으로 우수 선수 싹쓸이 비난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는 원년부터 줄곧 평균 이상의 성적을 지켜온 야구 명문이다. 지난해 자유계약 최대어인 강타자 심정수와 유격수 박진만에게 4년간 최대 99억원을 쏟아 부었고, 8개 구단 최초로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어서는 등 ‘돈 잔치’를 벌여 현재 정규 시즌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돌풍을 일으킨 두산 베어스와 초반에는 선두를 주고받았지만, 5월 중순 이후부터는 독주 태세를 갖추었다. 이르면 7월 말, 늦어도 8월 중순에는 페넌트 레이스(장기간에 걸쳐 우승을 겨루는 경기) 1위를 확정지을 거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포스트 시즌이다. 삼성은 25명(1군 엔트리)이 하는 야구에는 강하지만, 9명(또는 10명)이 하는 야구에는 약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페넌트 레이스에는 강하지만 단기전에는 약하다는 비아냥거림이다.
그러나 큰 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는 오래전 기억일 뿐이다. 선수들을 뒤에서 지원할 막강 스태프가 꾸려졌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계에 길이 남을 명장인 김응룡 씨가 사장을 맡고 있고, 아시아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선동열 감독은 또 다른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프로축구 수원삼성은 지난해 정규리그를 포함해 2005년 삼성하우젠 컵 대회, 한·중·일의 챔피언이 자웅을 겨루는 A3 대회, 정규리그와 FA컵 챔피언이 맞붙는 슈퍼컵까지 4개 대회를 석권했다. 비록 최성용·김남일·송종국 등 부상 선수가 속출해 AFC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수원삼성이 정규리그 우승후보 1순위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수원삼성은 앞서 언급한 김남일 등 세 선수 외에도 이운재·김대의·김두현·김동현·신영록·황규환 등 성인 및 청소년팀 대표선수들을 대거 보유했다. 팀을 둘로 나눠도 두 팀 모두 프로축구에서 중위권 실력은 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 한국의 레알 마드리드라는 얘기를 듣는 것도 선수층이 매우 두텁기 때문이다.
수원삼성은 5월 국제축구연맹이 발표한 세계축구 클럽 순위에서 119위를 차지해 한국 축구팀 가운데 최상위에 올랐다. 그러나 삼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정상권 클럽이 되는 것이다. 올해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예선 탈락하며 꿈이 무산됐지만, 내년 시즌에는 아시아 챔피언을 획득하고 세계로 도약할 요량이다.
삼성의 남자, 여자 농구단은 샐러리 캡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 샐러리 캡이란 한 팀이 막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팀의 연봉 합계의 상한액을 설정한 것이다. 남자 프로농구의 샐러리 캡은 15억원. 서장훈의 연봉이 3억8000만원인데, 서장훈 같은 초특급 선수 2명을 보유하면 샐러리 캡 상한액의 절반에 이른다. 따라서 삼성처럼 재력이 막강한 팀도 선수를 싹쓸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프로농구 서울삼성 썬더스는 78년 실업팀으로 출범했다. 27년 동안 농구팬과 함께해온 것. 서울삼성은 지난 시즌 국내 최고의 센터 서장훈의 부상과 그 후유증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올 시즌 서울삼성이 2000~2001시즌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우승을 일궈낸 저력을 재현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삼성생명 비추미 여자농구단은 남자 농구팀보다 1년 앞선 77년 창단했다. 농구대잔치 통산 8회 우승, 여자 프로농구 4회 우승을 거둔 전통의 농구 명가다. 또한 삼성생명 여자 농구단은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며 한국 여자농구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2002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4강이라는 쾌거를 이루는 데 견인차 구실을 했다. 신치용 감독이 이끄는 남자배구단은 “삼성이 너무 강해서 배구가 재미없어졌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10년 가까이 독주를 거듭해오고 있다. 아마추어 때 8연패를 차지한 데 이어, 프로 원년인 지난 시즌에도 현대 캐피탈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우승을 차지해 9연패를 달성했다. 올 시즌 정상에 오르면 ‘10연속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삼성 배구단에는 김세진·신진식·김상우·최태웅·석진욱·장병철·이형두 등 최강의 선수가 포진해 있다.
남자 배구 9연패 ‘불멸의 기록’
태권도는 스포츠 종목이기 이전에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얼굴이다. 삼성은 한국의 전통 스포츠인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 일찌감치 태권도를 투자 대상으로 선정했다. 세계 무대에서 “차렷!” “경례!” 구령을 들을 때는 누구나 뿌듯함을 느낀다. 삼성 에스원 태권도팀은 좋은 성적을 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 태권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게 궁극 목표다.
삼성전기 배드민턴단은 비인기 종목임에도 언제나 묵묵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배드민턴이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데는 직·간접으로 삼성전기 팀의 영향이 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리스트 김동문이 삼성전기의 간판 스타다.
삼성증권 테니스팀에는 2000년 US오픈에서 16강에 진출해 주목받은 이형택이 터줏대감으로 있다. 이형택은 2003년 ATP 투어대회에서 당시 세계 랭킹 4위인 로저 페레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형택의 뒤를 이어 삼성증권 팀에선 김선용·전웅선 선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들은 이형택이 이루지 못한 메이저대회 8강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생명 레슬링팀은 83년 창단됐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올림픽 등 주요 세계대회가 있을 때마다 메달 박스 노릇을 톡톡히 해온 한국 레슬링의 일등공신이 바로 삼성생명 레슬링팀이다. 이건희 회장의 레슬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영향력 또한 적지 않아 레슬링인들은 한국 레슬링이 국제무대에서 판정 등에서 불이익을 보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삼성SDI 럭비팀은 창단 이후 전국체전 8연패의 대기록을 세웠다. 2002년 4월에는 11명의 선수가 아시아선수권대회 2연패 달성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체육발전유공자 체육훈장을 받는 등 명실공히 한국 럭비의 대표 구단임을 입증했다. 럭비라는 스포츠 자체가 아직 낯선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그들의 결실은 더욱 값지다. 더 많은 스포츠팬들에게 럭비의 매력을 알릴 그날을 준비하며 삼성SDI 럭비 선수단은 오늘도 공을 향해 몸을 날린다.
42.195km. 그 드라마틱한 거리를 달리는 삼성전자 육상단. 이봉주라는 브랜드 하나만으로도 구기 종목이 몇 차례 우승을 차지한 것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이봉주는 그동안 단점으로 지적된 스피드의 보강을 위해 올 시즌 전반기를 5000m 트랙경기에 전념, 기록을 10초 이상 단축했다. 또 자신이 세운 한국 최고기록 2시간7분20초를 6분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2.7g의 공에 세계 제패의 포부를 담은 삼성생명 탁구단은 김충용 총감독, 강문수 남자팀 감독, 최영일 여자팀 감독 등 코치진과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유승민을 비롯한 남녀 선수 20명이 세계 정상을 목표로 땀을 흘리고 있다. 79년 제일합섬으로 창단된 남자팀은 지난해 대통령기 대회에서 대회 6연패를 달성했고,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종합선수권 대회에서도 7년 연속 우승하는 등 실업탁구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아마추어 종목엔 올림픽 메달리스트 즐비
78년 제일모직으로 출발한 여자팀도 종합선수권 대회9연패 행진을 벌이다가 2002년 대한항공에 우승컵을 내줬으나 2003년 정상에 복귀했고, 지난해 대통령기 대회 때 남자팀과 동반 우승했다. 4월28일부터 5월3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진 2005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세계 랭킹 2위 왕난을 누르고 16강에 오른 문현정은 이에리사, 현정화를 이을 여자 탁구의 유망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