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동북아의 중추 공항으로 자리 잡은 인천국제공항의 화려한 야경. 활주로를 밝히는 항공등화시설은 비행기 안전운항의 필수 시설로 기술 집약적 능력이 요구된다.
1차 계약자로 선정된 대림산업의 자격 논란이 불거지며 법정 공방으로 비화했고, 나아가 입찰비리 의혹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 이는 1억원 차이로 2위로 밀린 중소 전문업체 S사가 “입찰 과정에 의혹이 있다”며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과 본안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3월 말, 대림산업 관계자인 이모(48)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며 일단 S사의 손을 들어준 상황이다. 도대체 인천국제공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공사 측이 대림산업에 특혜” 주장
야간에 바라본 공항의 모습은 오색찬란한 불빛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항공등화시설공사’가 좀 낯선 사업이긴 하지만 ‘항공등화(燈火)’란 이름만으로도 이 사업은 공항 확장 사업의 중요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공항의 등화시설은 단순히 장식이나 어둠을 밝히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항공기 안전운항을 위한 필수 시설로, 최근엔 비행장의 등급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가 되고 있다. 또한 안개 등 기상이 좋지 않을 때 착륙할 수 있는지 여부도 결정한다. 이런 점에서 공항의 항공등화시설은 일반 조명과 달리 최첨단 성능이 요구되는 기술 집약적 사업이라 하겠다.
2002년 시작된 인천공항 시설 2단계 사업에는 총 부지 250만평에 사업비 4조7000억원이 투입된다. 활주로와 탑승동, 여객계류장과 국제업무지역 등이 추가로 건설돼 인천공항을 국제무역 및 레저활동을 지원하는 복합기능의 국제 공항도시로 변모시킨다는 야심 찬 계획. 2008년 2단계 전체 공사가 완료될 경우 연간 운항 횟수는 24만회에서 41만회로, 승객 처리 능력은 3000만명에서 4400만명으로, 화물처리 능력은 270만t에서 450만t으로 증가한다는 게 공항 측의 설명이다.
이 같은 장대한 계획의 하나인 ‘제2단계 항공등화시설공사’란 2008년 말까지 공사 예정금액 481억원의 규모로 진입 등화 404개소, 활주로 등화 862개소, 유도로 등화 7091개소, 지시·표지 등화 1892개소 등 총 1만249개의 항공등화를 인천공항에 설치한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첨단기술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입찰 가격도 중요하지만 ‘적격심사’를 통과한 기술 보유 업체만 입찰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는 2004년 6월18일 입찰공고를 통해 사업 수행능력 및 시공 경험, 기술 능력, 경영 상태, 신인도, 하도급 관리의 적정성, 입찰가격 등을 낙찰자 선정 기준으로 제시했다. 당시 5개의 건설회사들이 경쟁한 끝에 대림산업이 377억원의 가격으로 1순위 업체로 선정됐다.
문제는 2004년 말, 대림산업이 허위 시공실적 증명서를 제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는 점. 2위로 밀려난 S사는 발주처인 공항공사가 온갖 특혜로 대림산업이 수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대림산업이 제출한 시공 실적이 적격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증거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공항공사가 대림산업 실적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의혹이다.
애당초 항공등화 전문사인 S사는 인천공항 1차 항공등화 관제시설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실적을 바탕으로 2차 사업의 수의계약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공항공사 측이 입찰 방식을 고집하고 나선 것. 입찰 방식은 먼저 가격입찰로 낙찰자 순위를 정하고, 순위별로 실적증명서를 제출해 실적에 문제가 없을 경우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는 것이다. 입찰조건에 명시돼 있듯, 대림산업 측은 정확한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도 실적증명서 하나만을 냈다. 게다가 계약서나 내역서, 설계도 같은 증빙서류는 10년 전의 일이라 파기했다면서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S사 측은 “대림산업이 시공 실적이라고 제시한 93년의 강릉비행장 활주로 재포장 공사는 718개의 조명등(항공등화)을 설치하는 공사로 구성돼 있는데 유도로의 300개 조명등 공사 및 활주로의 418개 공사 모두는 하청에 재하청을 통해 J전기가 도맡아 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도급 업체의 실적을 대기업인 대림산업이 가로채 자신의 실적으로 활용했다는 것. 현재 대림산업은 J전기 공동대표의 사실 확인서를 받아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게다가 대림산업이 제출한 실적증명서의 일부는 공군에서 제공한 것으로 이것 또한 계약서를 비롯해 모든 자료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대림산업에서 2000년도에 제출받은 실적증명서가 있기에 이를 근거로 새로운 실적증명서를 발행해주었다는 것. 검찰 조사 결과 2000년도에 제출받은 실적증명서 또한 동일한 프로젝트에 여러 형태의 실적증명서가 발행된 사실이 발견됐다. 결국 해당 실적증명서조차 믿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 같은 내용만으로도 입찰 업체 스스로 실적에 대한 정확한 증빙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므로 발주처에서는 입찰조건에 따라 이를 실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는 실적으로 인정되고, 계약으로 이어졌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입찰 초기단계부터 입찰조건까지 대림산업에 맞도록 교묘하게 합의된 흔적이 보인다는 점.
대림산업이 주장하는 해당 실적의 실효기간은 2004년 6월30일이었고, 해당 입찰공고는 타 공정들 간의 차례를 무시하고 6월17일 먼저 발주됐다. 적격심사 기준 또한 통상적으로 알려진 공사 규모의 3분의 1이나 5분의 1 이상의 실적을 요구한 것이 아닌, 단 300여개 이상(1/34)이라는 납득하기 힘든 기준이 제시된 것.
공항공사가 제시한 기술점수 만점이 겨우 600개 실적인데 대림산업에선 논란이 된 실적 모두 합해 613개가 전부였으니 만점에 턱걸이한 셈이다. 상대적으로 S사는 이미 국내 주요 공항과 군 공항시설의 항공등화시설을 전담하며 전문업체로 입지를 굳힌 회사로, 1만여개의 시공 실적을 갖고 있다.
지난해 국감서도 입찰 문제 거론
이 같은 의혹은 최근 검찰 조사를 통해서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3월23일 허위 공사실적 서류를 제출해 480억원대의 항공등화시설공사를 낙찰받은 혐의로 대림산업 부장 이모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 씨는 지난해 6월 공항공사가 발주한 항공등화시설공사 입찰에 참여하면서 하도급 업체인 J전기에 준 강릉공군비행장 전기공사를 자사가 직접 시공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공사 측에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시공업체의 공사 실적 조작 문제가 일선 현장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대형 건설업체가 공기업이 발주한 대규모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공사 실적을 허위로 제출한 사실을 밝힌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입찰 의혹을 제기한 S사의 홈페이지.
서울중앙지검이 대림산업 관계자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한 것 자체가 그간 일선 시공현장에 만연해온 ‘시공능력평가자료 허위 제출’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이다. 특히 이번 공사의 입찰기준 및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법정 공방이 계속돼온 상황에서 검찰이 대형 건설업체를 상대로 ‘메스’를 가했다는 점은 향후 인천국제공항의 2단계 건설공사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S사 측은 “대림산업은 전문기술이 없는 종합건설사로, 낙찰받은 대형 사업을 하도급 업체에 넘겨 이득을 취하는 회사”라며 “하도급이 만연한 대한민국 건설시장에서 관급공사만큼은 공정 경쟁이 이뤄져야 전문업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림산업 측은 “S사가 그간 대한민국 항공등화시설공사를 독점하면서 말아먹어왔다”면서 “S사가 주장하는 내용은 대부분 거짓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결국 재판에서 모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림산업 측은 “인천지방법원에 제기된 소송이 기각된 바 있고 현재 서울고검의 심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이 나봐야 뚜렷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2001년 3월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이 2008년 완공될 2단계 건설사업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 복합단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