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왕위전은 한국 바둑사상 처음으로 ‘선수들이 기전을 보이콧’하는 사태를 겪었다. 39회째를 맞으면서 세계화 흐름에 맞춰 아마추어 기사들에게도 대회를 오픈했는데 이것이 프로기사들과의 사전 논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 하여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들이 예선전 출전을 거부하고 나선 것. 팬들의 질타에 올해에 한해서 아마추어 4명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불씨를 남겨놓은 봉합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해라 그런지 이창호와 맞설 도전자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무명의 기사 옥득진 2단이 등장했다.
99년 프로기사가 된 입단 7년차, 스물세 살로 지난해 11월 군복무까지 마쳤으니 결코 신인이라 할 순 없고 ‘중고 신인’이라 해야 할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낸 적 없는 무명의 저단 기사가 예선부터 도전자결정전에 이르기까지 8연승을 달리며 혜성으로 떠올랐으니 바둑계가 깜짝 놀랄 수밖에. “이창호 9단과 도전 대국을 한다는 것은 바둑을 처음 배울 때 가졌던 막연한 상상이었지요.” 정작 본인도 놀라는 눈치다.
‘장면도’ 흑 의 대마가 풍전등화의 상태. 집도 부족한 처지라 목숨만 구걸할 형편도 아니다. 해서 흑1은 ‘참고도’ 백2의 이음을 기대한 고육지책의 응수타진이었다. 흑7로 단수치는 수가 있어 이를 희생타로 11까지 석 점을 이어오고 15까지 백쫔 석 점을 잡는다면 비록 흑 대마를 죽이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 가닥 꿈을 깬 수가 ‘장면도’ 백2. 검토실의 누구도 보지 못한 결정타였다. 흑은 7의 수로 8의 곳에 이어가면 대마를 살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다음 백A 단수로 죽었던 쫔 다섯 점이 살아버리면 어차피 집으로 안 된다. 옥득진(玉得眞)이란 이름처럼 진짜 옥을 얻은 그는 도전권을 거머쥐면서 ‘옥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44수 끝, 백 불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