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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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통령 특권은 ‘황제급’

활동비·품위유지비 등 연간 예산 700억원 넘어 … 전용 별장 570여곳, 전용기만 37대

  • 모스크바=김기현 동아일보 특파원 kimkihy@donga.com

    입력2004-05-13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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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대통령 특권은 ‘황제급’

    대통령 전용기 IL. 폭탄이 터져도 끄떡없는 대통령 전용의 질 리무진.크렘린의 경비를 맡은 ‘대통령 근위연대’의 행진 모습(위부터). 크렘린 공보비서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월7일 취임식을 열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한때 미국과 함께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크렘린 주인의 위세는 옛 소련의 붕괴와 함께 빛이 바래졌다. 그러나 러시아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과 특권만은 여전해 옛 러시아 황제인 차르에 비교될 정도다.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생활은 비교적 소상하게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 대통령의 크렘린 생활은 철의 장막 속에 감춰져왔다. 그런 탓에 사실과 다르거나 잘못 알려진 내용도 많다.

    먼저 러시아 대통령은 크렘린에 살지 않는다. 백악관이나 청와대는 대통령이 집무와 생활을 함께 하는 곳이다. 그러나 러시아 대통령은 크렘린으로 출퇴근한다. 역대 러시아 지도자 가운데 레닌처럼 크렘린에서 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저가 따로 있었다.

    그럼 푸틴 대통령은 어디서 살까? ‘다차’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 전국에 무려 570여 군데나 있다. 지방순시 때마다 사용하는 곳이다. 최근 연해주 등에 새로 별장을 지어 청남대 등 몇 개 안 되는 별장마저 반환한 한국 대통령과는 사뭇 다르다.

    모스크바 주변에도 10여개의 별장이 있는데 푸틴 대통령은 주로 ‘노보 오가레보’ 별장에서 산다. 모스크바 시내의 요인 전용 아파트 단지에도 대통령 관저가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은 ‘고리키9’ 별장에서 주로 살았다. 푸틴 대통령은 외국 지도자가 오면 노보 오가레보로 초청해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고 가끔 크렘린 출입기자들도 부른다.



    화장실 변기가 8745만원 ‘초호화’

    휴가는 주로 흑해 연안의 휴양지인 소치에 있는 별장 ‘보차로프 루체이’에서 보낸다. 지난해에는 고향이며 제2의 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2억8000만 달러(3265억원)를 들여 콘스탄티노프 궁전을 호화롭게 개축했다. 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임시 관저로 쓰기 위해서다.

    대지 60만5000여평의 이 궁전은 본관에만 106개의 방이 있고 2층짜리 별장이 20개나 있다. 헬기 착륙장이 있고 핀란드만(灣)을 통해 해상으로도 올 수 있으며 시속 200km 넘는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전용도로가 궁전에까지 이어져 있어 육·해·공 중 아무 교통편이나 골라 이곳에 올 수 있다. 지난해 상트 페테르부르크 도시 건설 300주년을 기념해 이 궁전에는 전 세계 45개국 정상들이 모이기도 했다.

    대통령이 교외의 별장에서 크렘린까지 날마다 출퇴근하려면 힘들지 않을까? 그럴 염려는 없다. 대통령이 이동할 때마다 주변 교통은 전면 통제된다. 대통령의 차량 행렬은 시속 14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한다. 일정이 바쁜 대통령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저격을 피하려는 경호상의 이유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독일제 벤츠 리무진을 주로 탄다. 러시아제로 탱크처럼 튼튼하기로 유명한 질(Zil) 리무진은 예비용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이 질을 타고 다녔다.

    러시아 대통령이 해외 방문에 나설 때면 초강대국 대통령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보통 5대 정도의 특별기가 뜨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 전용기가 고장 날 때를 대비해 텅 빈 예비기까지 따라간다. 대통령이 외국을 나갈 때 예비기까지 띄우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뿐이다. 무려 37대의 각종 전용기를 갖고 있는 러시아 대통령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이 가운데 러시아제 일류신(IL)96-300 여객기를 개조한 전용기는 ‘나는 크렘린’이나 마찬가지다. 2층으로 된 전용기 안에는 집무실과 3개의 미니바, 2개의 침실, 샤워실 휴게실 회의실 응급진료실까지 있다. 또 완벽한 통신장비를 갖춰 비행 도중에도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집무할 수 있다. 길이가 55m로 크기는 에어버스 정도지만 항속거리는 1만2000km로 보잉747과 맞먹는 수준.

    화장실 변기만 7만5000달러(8745만원)짜리로 외부 도색은 네덜란드에서 하고 내부는 스위스제 장식에 원목으로 꾸미는 등 내부 장식에만 4000만 달러(466억원)가 들어가 이 전용기의 총 가격은 3억 달러(3498억원)에 이른다.

    외국에 나가서 타고 다닐 차도 직접 공수한다. 이때는 벤츠가 아니라 폭탄이 터져도 끄떡없는 질 리무진을 싣고 간다. 러시아 내 주요 도시에도 대통령 전용차가 배치돼 있다.

    푸틴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할 때 부인 류드밀라 여사는 동행하지 않아도 꼭 빠지지 않고 함께하는 것이 있다. 막강한 핵전력을 통제하는 ‘핵가방’이다. 핵강국 러시아 대통령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

    핵가방은 모두 3개다. 폭 10cm에 무게는 수kg 정도. 비상연락용 통신장비와 핵무기 발사명령 암호입력용 특수장치 등이 들어 있다. 핵가방은 평소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하나씩 갖고 있고 다른 1개는 비상용으로 총참모본부에 보관한다. 대통령은 국방장관과 총참모장이 모두 동의해야 핵무기 발사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2명의 장교가 핵가방을 들고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장비가 미국제 샘소나이트 가방에 들어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대통령은 가끔 해로를 통해 지방 출장을 갈 때가 있다. 이때는 1100t 규모의 전용 여객선 러시아호를 탄다.

    명목상 월급은 262만원 정도

    대통령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역시 경호 문제. 소련시절에는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최고지도자의 경호까지 맡았지만 지금은 경호총국 담당이다. 크렘린 경비는 ‘대통령 근위연대’의 몫.

    경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통신이다. 크렘린에는 미국 한국 등 주요국 정상과 바로 연결된 7개의 ‘핫라인’이 있다.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는 번호판이 없는 전화기인 ‘크레믈료프카’가 있다. 주요 요인들을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직통 전화다.

    대통령이 행차를 할 때는 늘 통신차가 따라다닌다. 세계 최고 수준의 송·수신 장치와 군사작전을 지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실려 있다.

    다시 크렘린으로 돌아와 보자. 둘레만 2235m나 되는 크렘린궁 전체가 대통령의 전용 공간은 아니다. 매일 밤 발레와 오페라 공연이 열리는 대회궁전(大會宮殿)과 옛 러시아 황실의 보물 컬렉션을 전시한 무기고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돼 있다.

    대통령의 집무실은 크렘린 안의 세나트(원로원)와 제14동 등에 있는데, 세나트에 집무실과 회의실 기자회견장 서재 등이 있다. 호화로운 예카테리나 홀이나 게오르기 홀 등에서는 정상회담이나 대통령 취임식 등이 열린다.

    대통령 집무실은 우랄산(産) 공작석(孔雀石) 등으로 꾸며져 있다.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다는 평이다.

    크렘린에는 각종 행사를 위해 대통령 전속 오케스트라까지 있다. 대통령 행정실(비서실)이 크렘린 밖에 별도로 나가 있는 것도 특이한 점. 크렘린 인근 스타르이 광장에 행정실 청사가 있다. 2000여명에 이르는 행정실 직원들이 모두 크렘린 안에서 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푸틴 대통령의 월급은 얼마나 될까? 푸틴 대통령의 월급은 약 2250달러(262만원) 정도. 옐친 전 대통령 당시보다 3배 넘게 올랐지만 다른 나라 정상들에 비해서는 낮은 연봉이다. 푸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지난해 수입이 780만 루블(3억1458만원)이라고 신고했다. 대통령 월급에 KGB에서 퇴직한 뒤 받고 있는 연금과 은행 이자 등 금융 수입, 세 권의 자서전 인세 강연료 등을 합친 액수다.

    그러나 러시아 대통령에게 월급은 큰 의미가 없다. 활동비와 품위유지비 크렘린 유지비 등의 명목으로 연간 6000만 달러(700억원)가 넘는 예산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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