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1 시승을 끝내고 기지로 돌아올 때 졸도한 척하고 있다가 ‘껄껄’거리고 일어난 기자(오른쪽)와 비행교관 김의택 대위.
한국 공군에 105대가 납품됐고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데 이어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로 수출될 예정이다. 기자는 이 훈련기가 실제로 어떻게 기동하는지 온몸으로 체험해보기 위해 2월12일 경남 사천에 있는 공군 제3훈련비행단을 찾았다. 그리고 KT-1 후방석에 올라탔다.
사천 비행장에서 이륙해 10여분쯤 날아오르자 경남 의령 지역의 1만5000피트(4.5km) 상공에 도달했다. 헬멧과 연결된 리시버를 통해 기자보다 아홉 살 적은 비행교관 김의택 대위(공사 42기)가 “G 적응기동에 들어가겠습니다. 6G가 걸릴 것입니다”라고 전해왔다. 6G는 지상보다 여섯 배 높은 압력을 받는 것. 쉽게 말해 75kg의 기자가 갑자기 450kg의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상황에 들어가는 것이다.
수직상승→ 자유낙하 “아이고…”
지난해 11월17일 KT-1 탑승을 위한 지상 훈련을 받을 때 기자는 6G에서 8초 만에 졸도했다. 그때 시범을 보인 KF-16 조종사는 9G에서 무려 15초를 버티며 호흡하는 법을 보여주었는데, 기자는 그의 호흡법을 따라하다가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6G 상태는 길어야 30초를 넘지 못할 것이니, 아예 호흡을 멈추고 용써가며 버티리라’고 작심했다. 두 팔로 후방석 계기판의 튀어나온 곳을 붙잡고 김대위가 기동에 들어갈 때를 기다렸다.
KT-1 훈련기는 순식간에 수직상승에 들어갔다. ‘어’ 하는 사이 계기판을 잡고 있던 팔이 천근처럼 무거워졌고 온몸은 형언할 수 없는 압력에 직면했다. 가장 당혹스러운 점은 눈꺼풀이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밀려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내려오는 눈꺼풀을 멈추게 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도 밀려 내려오던 눈꺼풀이 닫힌 뒤 졸도했었다.
이미 푸른 하늘은 보이지 않고 계기판을 지나 조종석 바닥만 간신히 보일 때쯤 갑자기 압력이 사라지고 눈꺼풀이 올라갔다. G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누런 땅이 시야에 들어왔다. KT-1이 수직상승을 끝내고 수직하강에 들어간 것이다.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땅’ 때문에 강한 현기증이 일었다. 수직상승 때는 애써 뜨려고 한 눈이었지만 어지럼증 때문에 시선을 계기판으로, 바닥으로 옮겼다가 스스로 감아버렸다. 그래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6G는 버텨놓고 엉뚱한 데서 뻗어버리겠구나’ 하며 전전긍긍하는데 비로소 KT-1이 수평 비행에 들어갔다.
김대위는 “괜찮습니까. 잘 견디셨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수직으로 올라간 후 엔진 출력을 최소화해 자유낙하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와 동시에 수직상승에 들어가자 또다시 강한 압력이 몰려왔다. 전과 같은 요령으로 간신히 버텼는데, 5G까지 올라간 뒤 속도가 멈춘 순간 리시버에서 “스톨(Stall·失速), 스톨, 스톨” 하는 녹음된 경고음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상 엔진 작동을 멈춘 KT-1이 자유낙하에 들어간 것이다.
아까처럼 G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땅 때문에 열패감과 무력감이 극에 달했다. ‘아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할 때쯤 희한하게도 비행기가 저절로 수평자세로 돌아갔다. KT-1은 지상 활주로에서 최대 출력으로 가속하면, 날개가 양력을 받아 자동으로 기수가 들리면서 이륙한다. 속도가 높아지면 양력 때문에 저절로 기수가 들리는 현상이 수직으로 자유낙하할 때도 적용돼 KT-1은 기수가 저절로 들리며 수평 자세를 되찾은 것이었다.
“당신 연극배우 해라”는 훈련비행단장(맨 오른쪽)의 한마디에 폭소가 터졌다.출격하기 전 어떤 기동을 할 것인지를 기자에게 설명하는 김의택 대위(가운데 사진 오른쪽). 출격 직전의 모습(위 부터).
김대위는 그 후로도 에이러론 롤(Aileron Roll) 조작을 했다. 에일러론 롤은 한쪽 날개만 조작함으로써 수평 비행을 하던 항공기가 팽이처럼 오른쪽으로 한 바퀴, 왼쪽으로 한 바퀴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용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던 기자는 하늘이 어지럽게 휙 돌아간 것만 느꼈다.
김대위는 계속해서 하늘에 거대한 8자를 그리며 180도 방향을 바꾸는 레이지 에잇(Lazy-8) 기동과 누운 8자를 만드는 쿠반 에잇(Cuban-8) 기동, 이름도 생소한 샨델(Chandelle) 기동과 스냅 롤(Snap Roll) 기동, 스톨(Stall)과 요잉(Yawing)이 동반된 스핀 기동, 그리고 항공기의 바닥이 하늘로 향하도록 뒤집어서 가는 배면(背面) 비행을 하다가 배면 중에 스핀을 거는 기동도 했다.
기본-고등 훈련기 동시 생산 유일 국가
출격하기 전 김대위는 “이 기동은 조종사 후보생들이 받는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 항공기가 연막탄을 달고 비행한다면 에어쇼에 나온 블랙 이글팀이 공중 곡예를 하는 것과 흡사할 것입니다. 잘 견디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브리핑을 했다. 그는 예정했던 모든 기동을 시연했고, 기자는 ‘싸나이 쫀심’으로 이를 버텨냈다.
다양한 기동을 하는 중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넓적다리를 좌석에 붙들어 매는 안전벨트를 꽉 조여놓았다는 것이었다. 이 벨트가 헐렁했으면 1만5000피트 상공에서 배면 비행을 할 때 기자는 머리를 아래로 처박고 흔들리는 시계추가 되었을 것이다.
팔을 둘 곳이 없다는 것도 곤란했다. 팔을 뻗어 뭔가를 잡은 상태에서 G가 걸리면 고통스럽다는 것을 경험한 기자는 팔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무릎과 무릎 사이’에는 비상탈출 손잡이가 있었다. 배면 기동시 겁을 먹어 이것을 움켜잡으면, 기자는 땅을 향해 사출된다. 때문에 아예 그쪽으로 팔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호흡 조절하랴, 시선 처리하랴, 구토감 억누르랴, 팔에 신경 쓰랴…. 후방석에 앉아 있긴 하지만 무척 신경 쓸 곳이 많았다. 병아리 조종사들도 이런 지경을 극복해야 비로소 보라매가 될 수 있다.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면 조종사들은 비상탈출 손잡이를 당기는데 이때 조종사보다 항공기의 캐노피(Canopy·지붕)가 먼저 튕겨져나가야 한다. 만약 캐노피가 튕겨져나가지 않는다면 조종사는 캐노피에 머리를 박아 절명할 것이다. 이런 사고를 피하기 위해 KT-1을 비롯한 모든 훈련기와 전투기는 운항 중에 가벼운 충격을 줘도 캐노피가 쉽게 떨어져나가도록 제작돼 있다.
1996년 10월21일 1만피트(3km) 상공에서 240노트(시속 444km)로 KT-1 시제 3호기를 몰던 시험비행조종사 이진호 중령은 캐노피가 벗겨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캐노피는 튕겨져나간 게 아니라 옆의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반대쪽으로 넘어와 KT-1을 강하게 치고 깨져나갔다. 시속 444km의 바람을 맞으면 10G 이상의 압력을 받는데도 이중령은 침착하게 속도를 줄여 ‘뚜껑 열린’ 시제기를 몰고 안전하게 사천 비행장에 돌아와 이후 생산품에서는 동일한 결함을 없애도록 만들었다.
취재를 통해 이중령 케이스를 잘 알고 있는 기자는 실수로 캐노피를 쳐 KT-1의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썼다. 더구나 출격하기 전 김대위는 “앉은키가 크신데 머리로 캐노피를 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라고 했다. 따라서 좌석을 최대한 낮추고 착석했으나 배면 비행과 스핀(회전) 기동을 반복할 때는 헬멧으로 인해 더욱 무거워진 머리가 원심력을 받아 자꾸 어깨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머리를 어깨에 붙여놓느라 목에도 많은 힘을 주어야 했다.
지난해 11월17일 치른 사전 비행훈련. 작은 사진은 6G에서 8초 만에 기절하기 직전의 기자 모습이다. 이 훈련을 마치면 승객 자격으로 공군기를 탈 수 있는 자격증이 나온다.
기자는 폐활량이 큰 편이다. 의령 상공에 도달했을 때도 리시버를 통해 들리는 김대위의 호흡이 기자보다 빨랐다. 하지만 여러 기동을 반복하는 동안 용을 쓰느라 기자의 호흡이 빨라졌다. 그때마다 재빨리 단전호흡을 시도해 정상화했으나 마지막 기동을 할 무렵에는 내공이 바닥나가는 것을 느꼈다.
고고도에서는 기압이 낮아 체내의 가스가 팽창한다. 그런데 용까지 썼으니 아랫배가 몹시 부글거렸다. 구토와 현기증에 이어 또 하나의 고통이 보태진 것인데, 수평 비행 중에 참지 않고 방출했다. 다행히도 산소마스크로 입과 코를 덮고 있어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다. 고고도에서는 참지 말고 가스를 방출하는 것이 현명하다.
어느덧 KT-1의 연료 바늘은 절반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연료가 없으면 돌아갈 것이다”라고 믿고 있었는데 김대위는 “모든 기동을 다 했습니다. 잘 견디셨습니다. 사천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때부터 기자는 긴장과 과묵(寡默)을 풀고 김대위와 본격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김대위는 갑자기 말이 많아진 기자의 부탁을 받아들여 광양과 여수-남해-삼천포를 지나는 남해안 길을 통해 복귀했다.
“모든 상황 체험, 걸작 훈련기”
다도해 상공을 지나는 중 기자는 “남해 금산이 어디입니까”라고 물었는데, 그 순간 김대위는 기체를 확 기울여 “저깁니다. 바다 쪽에 바위산 보이죠. 바위틈에 암자도 있고…”라고 했다. 무방비로 있다가 기체가 기울어지는 것을 겪었기 때문에 강한 구토감이 몰려왔다. 산소마스크 안에 구토를 하면 호흡을 하며 다시 들이마셔야 하니, 어떻게든 구토를 막아야 한다. 간신히 욕지기를 넘긴 기자는 다시 과묵으로 돌아갔다.
사천 비행장 주변에서 김대위는 비행장 주변을 크게 두 바퀴 돈 후 착륙을 시도했다. 고도를 낮추다 보니 기압 차이로 인해 오른쪽 고막이 아파왔다. 이럴 때는 양쪽 코를 막고 귀로 바람을 넣어주는 ‘발살바(Valsalva) 호흡’을 해야 하는데, 산소마스크에 익숙지 않아 코를 누르는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잠시 후 활주로에 착륙한 KT-1은 유도로를 통해 격납고 쪽으로 다가가는데 멀리 훈련비행단의 관계자가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귀는 여전히 아팠지만 장난기가 발동했다. KT-1이 멈추기 전에 머리를 처박고 졸도한 척한 것이다.
정비사가 올라와 안전벨트와 헬멧을 풀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껄껄’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훈련비행단장까지 마중 나와 있을 줄은 몰랐다. 기자가 KT-1에서 뛰어내리자 비행단장은 “장난쳤구나. 당신, 키도 크고 미남인데 아예 연극배우로 나가지”라고 받아쳐, 한바탕 웃음이 일었다. 그 웃음 사이로 누가 불렀는지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개인적으로 KT-1 시승은 현기증과 구토와 싸운 혈투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항공역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KT-1은 전투에 들어간 비행기가 처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경험해볼 수 있게 해주는 걸작 중의 걸작임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공군의 조종사들은 KT-1으로 모든 비행 상황을 경험하고, T-50 고등훈련기로 음속 돌파 비행을 익힌 후 전투기 조종간을 잡게 된다. 한국은 기본훈련기와 고등훈련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브라보 로카프! 날아라 웅비-.
로카프(ROKAF)는 ‘대한민국 공군(ROK Air Force)’의 영문 약어이고, 웅비(雄飛)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생산하는 KT-1에 붙여진 별명이다. 새삼 사천 비행장 주위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KT-1이 대단해 보였다. 이날 저녁 민항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기자는 KT-1에 비하면 민항기의 기동은 장난에 지나지 않고, 한국이 꽤 괜찮은 훈련기를 독자 생산한 나라임을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