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의장(왼쪽)과 김근태 원내대표. 두 사람의 차기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정의장 체제 등장 이후 달라진 당사 분위기를 이렇게 요약했다. 일부에선 ‘정동영 독재’라는 말도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정의장에게로 힘이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총선이 끝난 뒤에도 정의장 체제는 공고할 것인가. 정의장은 내친김에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자리에까지 오를까. 경쟁자인 김근태 원내대표는 어떻게 될까. 당장은 총선과 당내 공천경쟁에 관심이 모아지지만 우리당 핵심부에서는 이미 차기를 향한 대권주자들의 다툼이 시작됐다는 게 중론. 일단은 정의장이 김대표 등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두주자로 나섰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차기 대권후보 경쟁은 벌써 시작
하지만 공식적으로 우리당은 쌍두마차 체제로 움직인다. 당대표인 정의장과 원내 사령탑인 김원내대표가 그 주역이다. 하지만 새 지도부를 선출한 ‘1·11전당대회’ 이후 힘의 균형이 급속히 무너졌다. 당대표인 정의장에게로 힘이 쏠리고 있고 언론도 그의 행보를 좇는 데 더 열심이다. 최근 우리당 지지율이 1위에 오르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 당직자는 “인사와 재정을 움켜쥔 사람이 조직의 실질 주인 아닌가. 우리당에서 이를 틀어쥔 사람은 정의장이다. 원내정당을 표방하고 있지만 김대표의 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원내총무 수준으로 내려앉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영 독주’를 보여주는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2월6일 우리당은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4층 당사 한편에 있던 기자실을 같은 건물 10층으로 옮겼다. 이전 이유는 “우리당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늘어난 출입기자 수를 감당하기엔 현재 공간이 너무 좁다”는 것. 그런데 새로 만들어진 10층 기자실을 둘러본 출입기자들과 당직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급 레스토랑을 연상케 하는 내부 장식을 보고는 “이곳이 정당의 기자실 맞냐”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새 기자실의 컨셉트는 방송사 스튜디오. 앵커석을 연상케 하는 중앙무대와 조명시설 등 인테리어 비용만 1억2000만원이 든 것으로 전해졌다.
‘비주얼’을 강조한 새 기자실을 고집한 사람은 박영선 대변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대변인 한 사람의 고집만으로 기자실 대공사가 가능했다고 보는 이는 드물다. 박대변인의 정치적 후견인인 정의장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호화로운’ 기자실에 대해 당내 일각에서는 “사실상 국고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정당에서 기자실 꾸미는 데만 1억원이 넘는 돈을 써도 되느냐”는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메아리는 별로였다.
당직자들뿐 아니라 우리당 소속들도 온통 정의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정의장이 입을 열면 없던 당론도 생겨나고 당론이 바뀌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월13일에 있었던 ‘4년 중임 개헌론 소동’도 정의장의 당내 파워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 이날 우리당 정책위원회는 정책위원회공약개발 워크숍을 갖고 총선 10대 핵심공약을 조율할 예정이었다. 사전에 공개된 워크숍 토론자료에는 2007년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을 포함,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핵심공약으로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여당의 총선공약으로 개헌론이 거론되자 언론도 관심을 보였다. 이런 기자들의 관심에 당직자들은 “중임제 개헌론은 민주당 시절부터 제기됐던 주장”으로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들 입을 모았다. 김대표도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은 옛 민주당 시절 대선후보 국민경선 때부터 논의됐던 사항으로 노무현 대통령도 같은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의미 부여를 했다.
그런데 워크숍 시작 직전 4년 중임제 개헌론은 핵심공약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문제의 자료집을 검토하던 정의장이 정세균 정책위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총선을 앞두고 개헌론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중임제 개헌론의 삭제를 지시했던 것. 결국 4년 중임제 개헌안은 삭제되고 말았다. 우리당의 총선 공약은 정책위 워크숍에 이어 공약심사위원회 검토 과정 등 여러 단계 토론과 검토를 거친 뒤에 최종 결정된다. 그런데 이런 절차와 무관하게 당의장 말 한마디에 핵심공약 아이디어가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당 주변에서는 “정의장의 독주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세력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동영 김근태 두 사람의 경쟁에서 정의장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한때 김대표가 돋보였던 적도 있었다. 우리당이 모양을 갖추기 전, 그러니까 우리당의 지지율이 10% 전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만 해도 김대표는 당의 희망이었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창당 직후 당직자 사이에선 미래가 불투명한 당직이나 출마보다 원내대표실 소속 별정직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되기 위해 너도나도 김대표의 눈치를 봤다”며 “그 무렵 김대표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월 초, 김대표가 일부 지지자들의 열망을 물리치고 끝내 당대표 경선출마를 거부하면서 그에게 쏠렸던 기대도 급속히 가라앉고 말았다. 당시 김대표는 당대표 경선출마를 종용하는 측근들에게 “나의 역할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또 다른 역할이란, 원내정당체제로의 안착과 총선 전후 민주당과의 재통합 운동이었다.
“힘의 균형 무너지면 당에 이롭지 않다”
분열에 대한 김대표의 거부반응은 거의 알레르기 수준이다. 1987년 민주세력의 대선 패배 원인이 분열이라고 지적해온 김대표는 정계 입문 이후 줄곧 ‘민주세력 대연합론’을 주창해왔다. 지난해 민주당 분당 직전까지도 김대표는 ‘통합신당론’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어떻게든 민주당과 재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게 김대표의 지론이지만 이런 그의 ‘충정’에 당내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전략’이라는 것.
반면 명분보다 실리를 따지는 실용적이고도 활달한 정의장의 행보가 주목을 끌어왔다. 당내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내용보다 이미지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가볍지만 민심의 정곡을 찌르는’ 그의 언행이 우리당의 지지도를 올리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점도 인정한다. 실제 그의 당의장 당선 이후 우리당 지지도가 올라가면서 두 사람의 정치적 대결에서는 일단 정의장이 완승을 거뒀고 김대표로선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고는 만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당내 측근 인사들의 면면만 봐도 두 사람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정의장측에서는 정기남 부대변인 김현미 총선상황실장 등이 당의 요직에 포진해 있다. 박영선 대변인을 필두로 양기대 전 동아일보 차장, 민병두 전문화일보 정치부장 등 정의장 사람으로 분류되는 언론인들도 대거 영입돼 정의장의 측근으로 활약하고 있다. 반면 김대표의 사람이라 불릴 만한 인사는 거의 전무한 실정.
주변의 이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최근 김대표도 부쩍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2월10~12일 진행됐던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 때도 김대표는 매일 청문회장을 방문, 현장 지휘를 했다. 원내사령관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고 나선 것이다. 지구당 폐지를 포함한 정치권의 정치개혁 입법도 김대표의 위상을 높여줄 호재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구당이 없어지면 돈과 권력이 중앙당으로만 쏠리는, ‘중앙집권화’가 심화돼 결국 당대표의 위상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
한편 우리당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 결코 당에 이롭지 않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어느 한쪽이 승리했다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두 사람이 앞으로 상당 기간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이 우리당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데 긍정적 작용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장은 경쟁보다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 이를 반영한 듯 두 사람이 17대 총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차기 대권을 향한 여권 내부의 경쟁은 시작됐다. 아직은 정의장의 독주가 두드러져 보이지만 김대표를 포함한 다른 주자들도 정동영 대세론을 그냥 허용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리당의 잠재적 대권주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물밑경쟁은 총선정국의 또 다른 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