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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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청문회 짠짠 빠라바라

  • 조영남 / 가수·화가

    입력2004-02-20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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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짬뽕청문회  짠짠  빠라바라
    오전 10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주간동아’ 기자였다. “오늘 원고 주시는 날이죠.”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원고지 10매를 메워서 팩스로 낮 12시까지 보내야 한다.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한 건 별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뭘 써야 할지 그게 더 큰일이다.

    글이라는 게 그렇다. 그게 그렇게 쉽게 아무렇게나 써지는 건가. 당신이 원고지 놓고 끙끙대지 않는 인간을 내 앞에 한 명이라도 데리고 온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그래서 나는 애당초 “뭐에 대해 쓰라는 거냐”는 질문을 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결하고 싱거웠다.

    “어느 주제라도 상관없어요.”



    나는 더 이상 질문할 건더기가 없었다.

    ‘재미 백화점’ 더 이상 어떻게 인간을 웃길 수 있나

    나는 분명 원고 청탁자에게서 아무 거나, 아무렇게나 써도 상관없다는 약속을 받아낸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앞이 캄캄할까. 왜 자꾸 함승희 의원의 목소리만 내 청각기관에서 메아리치는 걸까. 나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지금 막 TV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를 봐야 하는데 느닷없이 책상머리에 앉아 원고지를 메우게 생겼으니 얼마나 울화통이 터지겠는가 말이다.

    호들갑 떠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청문회는 너무 재밌다. 1000만을 넘겼다는 ‘실미도’나 1000만을 넘길 거라는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는 국회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 앞에서 즉시 무릎을 꿇어야 한다. 현실성과 사실성에서 우리의 청문회는 추종을 불허하는 재미 만점의 TV 상품이다. 내가 매주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이나 ‘조영남이 만난 사람’보다도 하늘 땅만큼 재미있다. 짠짠 빠라바라다.

    청문회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새 애국자로 변한다. 이 나라를 사랑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이렇게 재미있는 나라, 이토록 귀여운 나라가 이 지구 어디에 또 있겠는가. ‘열린음악회’보다 훨씬 박진감 넘치고 ‘개그콘서트’보다 훨씬 웃긴다. 더 이상 어떻게 인간을 웃길 수 있겠는가. 한편에선 불법이 있지 않았느냐고 몰아치고 한편에선 한사코 불법은 없었노라고 박박 우겨댄다. 질문을 하고, 질문에 대한 답은 듣지도 않고 또 질문을 해댄다. 마이크를 잡는 사람마다 벌써 다른 사람이 몇 번씩이나 질문한 걸 또 하고, 몇 번씩이나 대답했던 사람은 또 목소리를 가다듬어 똑같은 답변을 반복해서 늘어놓는다. 재미의 정점은 그렇게 계속해도 규명되는 게 개뿔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웃기는 짬뽕청문회에서도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어 눈길을 끈다. 자기과시 없이 자기 소속당 티 내지 않고 오로지 질문과 답변을 이끌어내서 시청자들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내 입에선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 함승희가 세 명만 더 있어도 좋았을 텐데…!”

    중요한 음악회의 제작회의에 참석해보면 가끔 프로듀서나 작가들이 이런 말 하는 것을 듣게 된다.

    “조영남이가 서너 명만 더 있었으면….”

    그건 내가 어떤 장르·내용·절기를 불문하고, 즉 3ㆍ1절이든 8ㆍ15든 크리스마스든 ‘후뚜루마뚜루’(이런 말이 있긴 있다) 아무 노래나 대충 해치울 수 있기 때문에 듣게 되는 칭찬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함승희 의원을 치켜세우는 척하면서 스리슬쩍 제 자랑을 끼워넣었다. 바로 이거다. 바로 이런 비열한 짓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그런 따위의 치졸한 짓거리는 요즘 사람들이 금세 눈치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알아차린다.

    요즘은 컴퓨터 시대다. 스피드 시대다. 감각이라고 어찌 최첨단 감각이 아니겠는가. 옛날에는 사람들이 다 멍청했다.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다 똑똑하다. 다 예리하다. 어설픈 건 들킨다. 왜 청문회가 옛날 청문회만 못해 보이는가. 왜 옛날 청문회 때처럼 열기가 없는가. 뭐라고? 출석해야 할 증인이 출석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질의 응답이 서툴러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젠 모든 사람들의 감각과 판단력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엉성한 건 취급을 못 받는다. 어설픈 건 밀려난다. 살아남는 건 담백한 사람뿐이다. 쿨한 사람뿐이다. 글도 쿨하게 써야 읽을락말락이다.

    아무 거나 아무렇게나 여기까지 썼는데도 원고지 칸이 여러 개 남았다. 빨리 메우고 응접실로 튀어나가, 다시 청문회 몇 분 들여다보다 ‘패티김 이미자 조영남 합동 빅 콘서트’ 연습하러 가야 한다. 미리 알린다. 이 원고는 ‘주간동아’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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