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캐러 갔던 동네 소녀가 갑띠(허리띠)인 줄 알고 꽃뱀을 집으려다가 물려 죽은 일이 있었어요. 무서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끌리는 그 장면이 어렸을 때부터 머리에 남아 언젠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지요. 그러나 내가 처음 그린 뱀은 꽃뱀이 아니라 한 뭉텅이의 푸른 독사였어요.”
천경자 화백(78)이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그의 그림에 담겨있는 어떤 마력, 꽃뱀의 무늬처럼 빨려들 것 같은 매력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이 간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에 그가 그렸던 풍물화들, 타히티나 페루의 여인을 그린 그림에서는 이국 여인의 진한 몸냄새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5월17일 새로 문을 연 서울시립미술관에 천경자 상설전시실이 마련되었다. 국·공립 미술관에 마련된 개인 전시실로는 최대 규모다. 지난 1998년 천경자 화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림 93점을 서울시에 기증하고 큰딸(이혜선씨)이 살고 있는 뉴욕으로 훌훌 떠났다. 서울시가 보관하고 있던 이 그림들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정동의 구 대법원 건물로 이전 개관하면서 마침내 영원한 보금자리를 찾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전 개관 기념전으로 ‘한민족의 빛과 색’과 함께 ‘천경자의 혼’을 마련했다.
“98년 11월에 작품을 인수하기 위해 천선생님댁을 방문했습니다. 작은 방에 그림을 모두 정리해 두셨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아끼는 작품들은 거실 벽에 걸어놓으셨어요. 마치 피붙이를 보내듯, 걸려 있던 그림을 떼내서 품에 꼭 안으시며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황성옥 학예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언제 천경자 선생님의 그림을 볼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하루에도 십수통씩 미술관으로 걸려온다”고 말했다.
천경자의 상설전시실이 의미 있는 것은 이 전시실 안에 작가의 작품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품 중에는 작가가 대학교 1학년(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때 그린 작품과 희귀한 인체드로잉, 그리고 월남 종군 기록화가단 시절에 그린 전장의 풍경 등 생소한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페루 발리 자메이카 등 이국의 여인 그림과 풍물기행, ‘폭풍의 언덕’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문학작품의 탄생지를 그린 문학기행도 빼놓을 수 없다. “관람객이 마치 천경자 화백의 방 안으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서울시립미술관측은 말했다.
한자리에서 일목요연하게 훑어본 천경자의 작품세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꽃과 여인 그리고 뱀이라는 세 가지 주제다. 꽃과 여인은 천경자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에서 뱀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그림은 ‘생태’(1951년)다. 35마리의 독사가 한데 엉켜 우글거리는 모습에 절로 소름이 오싹 끼친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유독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뱀 한 마리가 있다. 아끼던 동생이 폐렴으로 죽고, 그 자신은 허락되지 않은 사랑에 빠졌던 힘겨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다.
‘나는 무섭고 징그러워 뱀을 참 싫어한다. 그러나 가난, 동생의 죽음, 불안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뱀을 그렸다. 징그러워 몸서리치며 뱀집 앞에서 스케치를 했고, 그러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화가 자신의 회고다. 이 그림은 한때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으나 ‘도저히 견딜 수 없어’ 1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생태’는 천경자의 곡절 많은 삶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시절 만난 남편과의 짧은 결혼생활이 끝난 후, 화가는 한 신문기자와 사랑에 빠진다. 천경자의 자서전에 ‘김상호’라는 가명으로 등장한 그는 이미 가정이 있던 사람이었다. ‘생태’의 뱀 35마리는 그의 나이 35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후 그는 천경자의 작품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꽃과 여인에 대한 천경자의 애착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에는 줄기차게 꽃과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은 원색의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있거나 머리에 얹기도 한다. 화가는 “그림 속의 여자가 꽃을 머리에 얹은 것은 한(恨)이 많아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늘상 꽃과 여자를 그리느냐고 물으면 하하 웃기만 했죠. 전시장에 나올 때면 마치 그림 속 여인처럼 머리에 꽃을 가득 얹고 나왔어요.” 소설가 한말숙씨의 회고다.
천경자의 그림 속 여인들은 슬프다. 대부분 화려한 눈 화장에 무심하고도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슬픈 느낌을 감출 수는 없다. “한(恨)은 천경자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천경자는 한국 근대기의 격동을 경험하면서 한의 정서를 여성의 감수성으로 풀어낸 작가죠.” 지난 95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렸던 대규모의 천경자 회고전을 기획한 최광진씨의 말이다. 예술원 회원인 연극연출가 이원경씨 역시 “고생 많이 하고 시달리고… 천경자는 한이 많은 여자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20년 사랑 끝에 결국 헤어져야 했던 인연, 화단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인도’ 사건 등만 기억해 보아도 그렇다. 화가로, 작가로 세간의 큰 인기를 얻었던 삶의 이면에는 늘상 슬픔이 도사리고 있었다. 천경자는 그 슬픔을 ‘푸닥거리하듯’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작품 중에는 화가가 자신의 생을 뒤돌아보며 그렸다는 ‘내 기억의 슬픈 22페이지’가 있다. 뱀 네 마리를 머리에 얹은 여인의 초상을 담은 그림이다. 텅 빈 듯 공허한, 우수에 찬 눈망울. 그러나 꽃 한 송이를 가슴에 꽂은 여자는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삶의 어떤 신산함도 외면하지 않겠다는 듯. 이 여자가 천경자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천경자 화백(78)이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그의 그림에 담겨있는 어떤 마력, 꽃뱀의 무늬처럼 빨려들 것 같은 매력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이 간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에 그가 그렸던 풍물화들, 타히티나 페루의 여인을 그린 그림에서는 이국 여인의 진한 몸냄새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5월17일 새로 문을 연 서울시립미술관에 천경자 상설전시실이 마련되었다. 국·공립 미술관에 마련된 개인 전시실로는 최대 규모다. 지난 1998년 천경자 화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림 93점을 서울시에 기증하고 큰딸(이혜선씨)이 살고 있는 뉴욕으로 훌훌 떠났다. 서울시가 보관하고 있던 이 그림들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정동의 구 대법원 건물로 이전 개관하면서 마침내 영원한 보금자리를 찾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전 개관 기념전으로 ‘한민족의 빛과 색’과 함께 ‘천경자의 혼’을 마련했다.
“98년 11월에 작품을 인수하기 위해 천선생님댁을 방문했습니다. 작은 방에 그림을 모두 정리해 두셨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아끼는 작품들은 거실 벽에 걸어놓으셨어요. 마치 피붙이를 보내듯, 걸려 있던 그림을 떼내서 품에 꼭 안으시며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황성옥 학예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언제 천경자 선생님의 그림을 볼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하루에도 십수통씩 미술관으로 걸려온다”고 말했다.
천경자의 상설전시실이 의미 있는 것은 이 전시실 안에 작가의 작품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품 중에는 작가가 대학교 1학년(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때 그린 작품과 희귀한 인체드로잉, 그리고 월남 종군 기록화가단 시절에 그린 전장의 풍경 등 생소한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페루 발리 자메이카 등 이국의 여인 그림과 풍물기행, ‘폭풍의 언덕’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문학작품의 탄생지를 그린 문학기행도 빼놓을 수 없다. “관람객이 마치 천경자 화백의 방 안으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서울시립미술관측은 말했다.
한자리에서 일목요연하게 훑어본 천경자의 작품세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꽃과 여인 그리고 뱀이라는 세 가지 주제다. 꽃과 여인은 천경자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에서 뱀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그림은 ‘생태’(1951년)다. 35마리의 독사가 한데 엉켜 우글거리는 모습에 절로 소름이 오싹 끼친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유독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뱀 한 마리가 있다. 아끼던 동생이 폐렴으로 죽고, 그 자신은 허락되지 않은 사랑에 빠졌던 힘겨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다.
‘나는 무섭고 징그러워 뱀을 참 싫어한다. 그러나 가난, 동생의 죽음, 불안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뱀을 그렸다. 징그러워 몸서리치며 뱀집 앞에서 스케치를 했고, 그러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화가 자신의 회고다. 이 그림은 한때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으나 ‘도저히 견딜 수 없어’ 1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생태’는 천경자의 곡절 많은 삶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시절 만난 남편과의 짧은 결혼생활이 끝난 후, 화가는 한 신문기자와 사랑에 빠진다. 천경자의 자서전에 ‘김상호’라는 가명으로 등장한 그는 이미 가정이 있던 사람이었다. ‘생태’의 뱀 35마리는 그의 나이 35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후 그는 천경자의 작품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꽃과 여인에 대한 천경자의 애착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에는 줄기차게 꽃과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은 원색의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있거나 머리에 얹기도 한다. 화가는 “그림 속의 여자가 꽃을 머리에 얹은 것은 한(恨)이 많아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늘상 꽃과 여자를 그리느냐고 물으면 하하 웃기만 했죠. 전시장에 나올 때면 마치 그림 속 여인처럼 머리에 꽃을 가득 얹고 나왔어요.” 소설가 한말숙씨의 회고다.
천경자의 그림 속 여인들은 슬프다. 대부분 화려한 눈 화장에 무심하고도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슬픈 느낌을 감출 수는 없다. “한(恨)은 천경자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천경자는 한국 근대기의 격동을 경험하면서 한의 정서를 여성의 감수성으로 풀어낸 작가죠.” 지난 95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렸던 대규모의 천경자 회고전을 기획한 최광진씨의 말이다. 예술원 회원인 연극연출가 이원경씨 역시 “고생 많이 하고 시달리고… 천경자는 한이 많은 여자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20년 사랑 끝에 결국 헤어져야 했던 인연, 화단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인도’ 사건 등만 기억해 보아도 그렇다. 화가로, 작가로 세간의 큰 인기를 얻었던 삶의 이면에는 늘상 슬픔이 도사리고 있었다. 천경자는 그 슬픔을 ‘푸닥거리하듯’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작품 중에는 화가가 자신의 생을 뒤돌아보며 그렸다는 ‘내 기억의 슬픈 22페이지’가 있다. 뱀 네 마리를 머리에 얹은 여인의 초상을 담은 그림이다. 텅 빈 듯 공허한, 우수에 찬 눈망울. 그러나 꽃 한 송이를 가슴에 꽂은 여자는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삶의 어떤 신산함도 외면하지 않겠다는 듯. 이 여자가 천경자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