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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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대선잔금 머리카락 보일라

차남 홍업씨 돈 60여억원의 출처 규명이 관건 … “97년 이전 돈” 청와대가 나서 간접 확인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입력2004-10-05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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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 대선잔금 머리카락 보일라
    ”한 300억원 정도?” 민주당 동교동계 한 인사는 97년 국민회의 대선자금 규모에 대해 이렇게 추정했다. 대선이 끝난 후 국민회의는 “261억원을 선거비용으로 썼다”고 선관위에 신고했다. 외형상 비슷한 금액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최소 그 금액의 7배 정도”라고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민주당 전 고위 당직자 K씨의 설명. “이회창 후보가 아들의 병역파문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보험금을 들고 눈치보던 기업들이 10월 말(97년)부터 분산 베팅에 나섰고, DJ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11월 말부터는 국민회의로 발길을 돌렸다.”

    “모자라지 않을 만큼 썼다”는 승자의 자신만만한 발언은 2000년 총선 때까지 이어졌고 정치권은 어느 선거 때보다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이를 해석했다.

    그렇다면 당시 선거를 끝낸 뒤 남은 돈(대선잔금)은 얼마나 될까. 선거자금의 흐름을 꿰고 있는 민주당 및 동교동 인사들의 기억은 대략 “50억~60억원”으로 압축된다.

    동교동 한 인사는 “그렇지만 이는 선거 후 쇄도한 당선 축하금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라고 증언했다. DJ와 연이 없던 많은 기업인들이 대선 후 축하금을 들고 김당선자의 일산 자택을 찾았으며 규모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인사의 설명이다. 대선자금 문제는 그 후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졌다. 대선 후 정치는 승자의 논리에 따라 전개됐고 IMF체제 극복이라는 국가적 과제 앞에 대선자금 문제는 과거사로 밀려나 역사의 비밀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DJ 대선잔금 머리카락 보일라
    그렇지만 대선이 끝난 4년 후, DJ의 대선잔금과 관련된 은밀한 돈의 일부가 드러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가 그 대선자금의 ‘꼬리’를 쥐고 있었고 그를 통해 실체의 일부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정현준 게이트’를 수사중인 검찰은 최근 홍업씨가 친구인 김성환씨 등을 통해 16억원 이상을 은닉한 혐의를 확인했다. 검찰은 수표 발행일과 세탁 과정 등을 들어 문제의 수표가 대선잔금 또는 사조직 관리비용으로 쓰다가 남은 돈일 것이라는 심증을 모으고 있다. 그 가운데 2억~3억원이 의혹의 중심에 있다.

    이 돈의 성격을 대선잔금으로 규정하는 데는 홍업씨 주변 인사들도 앞장섰다. 지난 5월17일 한 언론은 “홍업씨의 친구인 윤흥렬 전 스포츠서울 사장이 홍업씨 돈 중 2억~3억원은 대선잔여금이라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윤 전 사장은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선잔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발언을 언론이 앞서나간 것”이라고 보도 내용을 일부 부인했다. 그러나 대선잔금일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문제가 된 홍업씨 돈의 성격을 대선잔금으로 처음 규정한 것은 청와대였다. 청와대 한 인사는 지난 5월3일 “문제가 되고 있는 김성환씨 자금 가운데 10억원 정도는 김홍업씨 돈으로 알고 있다”면서 “대부분 97년 이전 돈이라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여권 내부는 돈의 성격을 대선잔금으로 몰고 가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97년 11월 이전에 대가성 없이 받은 돈은 현행 정치자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청와대가 이렇게 나온 것은 조건 없이 받은 정치자금임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어차피 정치적 부담은 피할 수 없고 파렴치성 부분이라도 줄이려는 계산이라는 것.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이런 계산이 ‘단견’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홍걸씨의 경우는 알선수재라는 단순한 죄목이지만 홍업씨에게는 여러 성격의 돈이 뒤얽혀 사태를 아주 험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만약 검찰수사 과정에 대선잔금 문제가 불거질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흐를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 불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까지 튈 수도 있다는 것이 민주당 내 신중론자들의 생각이다.

    이권개입 대가 및 불법모금, 재단 기부금 등과 함께 뒤섞인 이 돈은 임기가 끝나지 않은 DJ 정부의 또 다른 화약고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검찰 분위기를 설명하며 “만약 검찰이 판도라 상자를 열어보고 액션을 취한다면 우리(여권)는 속수무책”이라며 그 경우 파장이 청와대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DJ 대선잔금 머리카락 보일라
    현재 홍업씨 수사는 고교동기 김성환씨에게 빌려준 돈 18억원, 김씨가 세탁해준 돈 12억원, 아태재단 직원들이 돈세탁한 16억원, 대학동기 유진걸씨 차명계좌에 담긴 20억원 등 최대 60여억원의 출처 규명이 관건이다. 이 가운데 어디까지가 정치자금이고, 어디까지가 청탁 대가인지, 그리고 아직 감춰진 게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홍업씨의 동선(動線)에는 2중, 3중으로 돈세탁을 해 추적이 어려운 수십개의 차명계좌가 동행하고 있다.

    이 차명계좌를 먼저 파악했던 차정일 특별검사팀 주변에서는 지난 3월 “못 볼 것을 봤다”는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연출한 적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자금의 핵심 줄기를 건드렸다”고 해석했다. 최근 홍업씨 주변에서 불거진 대선잔금론과 관련 “큰 몸통을 감추려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 일부를 인정한 것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아태재단 문을 서둘러 닫은 것도 이 문제와 관련해 의문을 남긴다.

    검찰은 내부적으로 이미 홍업씨의 알선수재 혐의 등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를 상당수 찾아낸 상태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검찰은 “홍걸씨 사건과 달리 홍업씨 사건은 아직 별다른 소득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수사 대상이 대통령 아들이란 점과 경우에 따라 대통령의 ‘과거’를 손댈 수도 있다는 부담이 뒤섞인 반응이다. 떳떳하지 못한 돈의 ‘꼬리’와 연결된 몸통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신뢰받는 국민의 검찰’을 복무방침으로 정한 ‘이명재 검찰’을 주시하는 국민들의 눈이 어느 때보다 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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