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일 드디어 2002월드컵 한국대표팀 최종 엔트리 23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엔트리에 포함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 선수들의 성적표가 공개된 셈이다. 무려 1년4개월간의 산고를 거쳐 완성된 이 명단을 통해 히딩크 감독은 자신이 그리려는 전술과 선수운영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표시했다. 과연 선수들의 이름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한국대표팀의 얼개는 무엇인가.
이번 명단에 숨어 있는 히딩크 감독의 팀 구성 원칙은 크게 각 포지션의 복수화, 창조적인 공격과 안정된 수비 추구라는 두 가지 원칙으로 정리될 수 있다. 포지션 복수화부터 살펴보자.
우선 3-4-3 전술을 팀의 기본 포메이션으로 전제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히딩크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포지션마다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결장할 것을 대비해 두 명의 선수를 뽑았다. 골키퍼 세 명을 제외한 엔트리 20명이 기본적으로 6-8-6이란 중복 포지션 구성에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바로 수비수. 히딩크 감독은 그동안 심재원 김상식 이임생 등 여러 명의 수비수들을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안정감을 갖는 수비수를 복수로 선발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현재 수비라인에 포함된 선수는 홍명보 이민성 최진철 김태영 현영민 등 다섯 명. 히딩크 감독은 엔트리 발표 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수비라인의 구성이 가장 힘들어 위치별 중복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한 바 있다.
대신 히딩크 감독은 이미 송종국 유상철 등을 최후방 수비수로 세워본 후 합격점을 준 바 있어 만약의 경우 이들을 수비라인으로 배치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수비라인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아시아 최종 예선과 본선)과 비교해 현영민 한 선수만 바뀐 것. 그만큼 안정과 서로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비중을 둔 선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미드필드를 포함한 공격라인은 창조성을 바탕으로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경우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동국의 탈락과 차두리의 합류는 감독의 이러한 기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동국은 그동안 열 게임에 출전했지만 단 한 골을 기록했을 뿐 창조적인 플레이나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스피드 부족과 수비 가담에 대한 개념 미숙, 최전방 공격수 이외의 다른 포지션으로 돌려 사용할 여지가 없다는 한계도 드러냈다.
이에 비해 차두리는 타고난 스피드와 체력을 바탕으로 최전방 공격수는 물론 양쪽 윙까지 소화, ‘멀티’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4월20일 열린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싱과 깜짝 득점으로 히딩크 감독의 고개를 끄떡이게 했다. 히딩크 감독은 “현대 축구에서는 체력과 스피드가 최우선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전체적인 파워에서 밀리면 질 수밖에 없다”며 “차두리는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다. 또한 5개월간의 조련을 통해 득점력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고 말해 본선에서 그의 활약을 예고한 바 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과 비교해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미드필더다. 유상철과 최성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싱싱한 ‘젊은 피’로 구성됐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토털사커를 추구하는 히딩크 감독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 이들은 한마디로 히딩크 감독이 잔인할 정도로 강요한 파워 프로그램(체력증진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인 셈이다. 지난번 코스타리카전을 통해 이영표 송종국 김남일 등은 지칠 줄 모르는 폭주 기관차처럼 전후반 모두 기복 없는 체력을 선보여 대표팀 허리가 강골로 변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안정환과 윤정환 두 선수는 예외적인 존재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고 있는 동안 중앙의 플레이메이커(또는 처진 스트라이커)를 윗꼭지점, 수비형 미드필더(주로 다비즈)를 밑꼭지점으로 하는 중앙의 강력한 다이아몬드 대형을 바탕으로 파워풀한 공격 축구를 구사했다. 한국대표팀에서도 이런 기본적인 전술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팀에서는 이 다이아몬드라인을 충족시켜 줄 만한 걸출한 플레이메이커를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히딩크 감독의 가장 큰 딜레마였다.
윤정환과 안정환이 그나마 앞선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두 선수 모두 수비 가담 능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윤정환은 파워가 떨어질 뿐더러 수비가 약해 항상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명 배치시켜야 한다. 안정환도 수비 가담 능력이 떨어지고 액션과 액션 사이에 체력 회복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직설적인 비판을 가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두 선수 모두를 껴안는 결단을 내렸다. 두 선수 모두 놓치기엔 아까운 재능을 가졌기 때문. 윤정환의 천재적인 패싱 능력, 안정환의 세리에A(이탈리아 1부리그) 경험과 날카로운 슈팅은 그들의 단점을 가리기에 충분했다. 또한 윤정환이 붙박이 플레이메이커인 데 비해 안정환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날개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최전방 공격수의 경우에는 설기현과 최용수, 황선홍이 번갈아가며 상대 골 문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 조합은 황선홍-최용수. 최용수는 설기현과 스타일이 비슷해, 여러 각도에서 득점이 가능하고 재치 있는 패싱력을 갖춘 황선홍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엔트리가 확정됐지만 아직 마지막 과제는 남아 있다. 23명의 ‘재료’를 잘 조합해 가장 쓸 만한 ‘월드컵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이를 위해 히딩크 감독은 5월2일부터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전지훈련을 계속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대표팀을 만드는 데 전력할 예정이다.
그가 장담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대표팀을 선보이기 위해 가장 먼저 보완할 점은 세트플레이. 유럽이나 남미처럼 선수들간 사전 약속이 철저하게 준비돼 있는 축구 선진국에서 세트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게 높다. 한국대표팀은 지금까지 세트플레이를 통해 득점한 경우가 거의 없다. 프리킥이나 코너킥 등 플레이스킥(place kick)을 찰 만한 전문 키커가 없다는 것이 문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히딩크 감독은 비공개 훈련을 통해 안정환 이천수 현영민 유상철 등에게 집중적인 프리킥 훈련을 시키고 있다. 하지만 철제로 만들어진 모조 수비수를 넘겨 골 네트를 제대로 흔드는 선수가 없어 고민이 심각하다. 상대편이 ‘절반의 골’이라고 생각하는 프리킥이 한국팀에겐 무용지물이라니 감독으로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히딩크 감독은 제주도 전지훈련 기간에 세트플레이 연습만큼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할 생각.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대외용 설명이지만 사실 세트플레이의 세부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 주목적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달 파주에서 비공개로 열린 세트플레이 연습에서, 수비벽을 살짝 넘기는 직접 프리킥보다는 수비벽을 피해 한 선수가 볼을 옆으로 밀어주고 달려들던 2선의 선수가 슈팅을 날리는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 밖에도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스위치플레이, 선수간의 컴팩트한 간격 조절 등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위한 전체적인 틀 짜기도 남은 훈련 기간에 주안점을 두게 될 또 다른 포인트다.
이제 자신의 색깔로 채색된 23명의 엔트리로 16강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히딩크 감독. ‘대한민국 축구가 뽑아낼 수 있는 최고 기량을 만들어내라’는 요구에 그가 작성한 답안지는 얼마나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까. 과연 그가 제대로 된 옥을 가려냈는지는 한 달 뒤 본선무대에서 확실히 검증될 것이다.
이번 명단에 숨어 있는 히딩크 감독의 팀 구성 원칙은 크게 각 포지션의 복수화, 창조적인 공격과 안정된 수비 추구라는 두 가지 원칙으로 정리될 수 있다. 포지션 복수화부터 살펴보자.
우선 3-4-3 전술을 팀의 기본 포메이션으로 전제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히딩크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포지션마다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결장할 것을 대비해 두 명의 선수를 뽑았다. 골키퍼 세 명을 제외한 엔트리 20명이 기본적으로 6-8-6이란 중복 포지션 구성에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바로 수비수. 히딩크 감독은 그동안 심재원 김상식 이임생 등 여러 명의 수비수들을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안정감을 갖는 수비수를 복수로 선발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현재 수비라인에 포함된 선수는 홍명보 이민성 최진철 김태영 현영민 등 다섯 명. 히딩크 감독은 엔트리 발표 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수비라인의 구성이 가장 힘들어 위치별 중복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한 바 있다.
대신 히딩크 감독은 이미 송종국 유상철 등을 최후방 수비수로 세워본 후 합격점을 준 바 있어 만약의 경우 이들을 수비라인으로 배치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수비라인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아시아 최종 예선과 본선)과 비교해 현영민 한 선수만 바뀐 것. 그만큼 안정과 서로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비중을 둔 선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미드필드를 포함한 공격라인은 창조성을 바탕으로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경우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동국의 탈락과 차두리의 합류는 감독의 이러한 기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동국은 그동안 열 게임에 출전했지만 단 한 골을 기록했을 뿐 창조적인 플레이나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스피드 부족과 수비 가담에 대한 개념 미숙, 최전방 공격수 이외의 다른 포지션으로 돌려 사용할 여지가 없다는 한계도 드러냈다.
이에 비해 차두리는 타고난 스피드와 체력을 바탕으로 최전방 공격수는 물론 양쪽 윙까지 소화, ‘멀티’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4월20일 열린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싱과 깜짝 득점으로 히딩크 감독의 고개를 끄떡이게 했다. 히딩크 감독은 “현대 축구에서는 체력과 스피드가 최우선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전체적인 파워에서 밀리면 질 수밖에 없다”며 “차두리는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다. 또한 5개월간의 조련을 통해 득점력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고 말해 본선에서 그의 활약을 예고한 바 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과 비교해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미드필더다. 유상철과 최성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싱싱한 ‘젊은 피’로 구성됐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토털사커를 추구하는 히딩크 감독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 이들은 한마디로 히딩크 감독이 잔인할 정도로 강요한 파워 프로그램(체력증진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인 셈이다. 지난번 코스타리카전을 통해 이영표 송종국 김남일 등은 지칠 줄 모르는 폭주 기관차처럼 전후반 모두 기복 없는 체력을 선보여 대표팀 허리가 강골로 변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안정환과 윤정환 두 선수는 예외적인 존재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고 있는 동안 중앙의 플레이메이커(또는 처진 스트라이커)를 윗꼭지점, 수비형 미드필더(주로 다비즈)를 밑꼭지점으로 하는 중앙의 강력한 다이아몬드 대형을 바탕으로 파워풀한 공격 축구를 구사했다. 한국대표팀에서도 이런 기본적인 전술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팀에서는 이 다이아몬드라인을 충족시켜 줄 만한 걸출한 플레이메이커를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히딩크 감독의 가장 큰 딜레마였다.
윤정환과 안정환이 그나마 앞선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두 선수 모두 수비 가담 능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윤정환은 파워가 떨어질 뿐더러 수비가 약해 항상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명 배치시켜야 한다. 안정환도 수비 가담 능력이 떨어지고 액션과 액션 사이에 체력 회복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직설적인 비판을 가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두 선수 모두를 껴안는 결단을 내렸다. 두 선수 모두 놓치기엔 아까운 재능을 가졌기 때문. 윤정환의 천재적인 패싱 능력, 안정환의 세리에A(이탈리아 1부리그) 경험과 날카로운 슈팅은 그들의 단점을 가리기에 충분했다. 또한 윤정환이 붙박이 플레이메이커인 데 비해 안정환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날개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최전방 공격수의 경우에는 설기현과 최용수, 황선홍이 번갈아가며 상대 골 문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 조합은 황선홍-최용수. 최용수는 설기현과 스타일이 비슷해, 여러 각도에서 득점이 가능하고 재치 있는 패싱력을 갖춘 황선홍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엔트리가 확정됐지만 아직 마지막 과제는 남아 있다. 23명의 ‘재료’를 잘 조합해 가장 쓸 만한 ‘월드컵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이를 위해 히딩크 감독은 5월2일부터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전지훈련을 계속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대표팀을 만드는 데 전력할 예정이다.
그가 장담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대표팀을 선보이기 위해 가장 먼저 보완할 점은 세트플레이. 유럽이나 남미처럼 선수들간 사전 약속이 철저하게 준비돼 있는 축구 선진국에서 세트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게 높다. 한국대표팀은 지금까지 세트플레이를 통해 득점한 경우가 거의 없다. 프리킥이나 코너킥 등 플레이스킥(place kick)을 찰 만한 전문 키커가 없다는 것이 문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히딩크 감독은 비공개 훈련을 통해 안정환 이천수 현영민 유상철 등에게 집중적인 프리킥 훈련을 시키고 있다. 하지만 철제로 만들어진 모조 수비수를 넘겨 골 네트를 제대로 흔드는 선수가 없어 고민이 심각하다. 상대편이 ‘절반의 골’이라고 생각하는 프리킥이 한국팀에겐 무용지물이라니 감독으로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히딩크 감독은 제주도 전지훈련 기간에 세트플레이 연습만큼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할 생각.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대외용 설명이지만 사실 세트플레이의 세부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 주목적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달 파주에서 비공개로 열린 세트플레이 연습에서, 수비벽을 살짝 넘기는 직접 프리킥보다는 수비벽을 피해 한 선수가 볼을 옆으로 밀어주고 달려들던 2선의 선수가 슈팅을 날리는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 밖에도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스위치플레이, 선수간의 컴팩트한 간격 조절 등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위한 전체적인 틀 짜기도 남은 훈련 기간에 주안점을 두게 될 또 다른 포인트다.
이제 자신의 색깔로 채색된 23명의 엔트리로 16강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히딩크 감독. ‘대한민국 축구가 뽑아낼 수 있는 최고 기량을 만들어내라’는 요구에 그가 작성한 답안지는 얼마나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까. 과연 그가 제대로 된 옥을 가려냈는지는 한 달 뒤 본선무대에서 확실히 검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