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서연종 지점장(수원 중앙지점·44)은 왕성한 독서가다. 그가 지난 한 달 사이 읽은 책을 꼽아보면 피터 마쓰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 20세기 유럽-야만의 기록’(미래의창), 전우익의 ‘사람이 뭔데’(현암사), 여연구의 ‘나의 아버지 여운형’(김영사), 유봉학의 ‘정조대왕의 꿈’(신구문화사), 김경원·최희갑의 ‘디지털 금융 대혁명’(삼성경제연구소), ‘스콧 니어링 자서전’(실천문학사), 루드 스튜어트의 ‘토담에 그린 수채화’(이룸), 지아오 보의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뜨란), 임지현의 ‘이념의 속살’(삼인), 김봉렬의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안그라픽스) 등 우선 그 다양성과 규모에 놀라게 된다. 이도 은행 실무와 관련한 전문서들은 뺀 목록이다. 그는 특히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을 90년대 초 답사여행 붐을 몰고 온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잇는 수준 높은 여행기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서지점장의 독서 경향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과학과 역사, 평전, 에세이, 여행서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이 많은 책들을 언제 읽느냐고 물었더니 “매일 밤 2시간 정도 독서를 한다”고 대답한다. 새벽 2시쯤 잠이 들어 평균 수면시간은 4~5시간. 열심히 책을 읽는 이유는 간단했다. “재미있으니까.” 음악감상, 미술 컬렉션, 암벽등반 등 그의 다양한 취미활동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지만 독서는 취미라기보다 일상생활이다.
최근 출판계는 왕성한 지적 욕구를 지닌 ‘40대 독자’의 부상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40대가 움직이면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할 만큼 가장 책을 읽지 않는 세대의 상징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출판시장을 좌우할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40대 독자층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지난해 12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주최한 좌담회였다. 여기서 글쓰기의 주체이자 읽기의 주체로서 40대가 토론의 중심이 되었다. 민음사의 장은수 편집부장은 “과거에는 이들이 전체 독자의 10%였다고 하면 지금은 30% 이상으로 커졌다”고 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도 386세대를 출판시장의 전략적 소비층으로 보고 40대에 접어든 이들 독자층의 응집력이 계속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0대 독자층을 넓게 잡으면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학번까지, 약 15년간 직·간접으로 민주화 투쟁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세대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이념적으로 중도좌파의 개혁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주로 학회나 동아리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자랐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김장환 편집장은 “40대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세대로 80년대 사회과학 서적, 90년대 초 인문서, 90년대 중반 경제·경영서의 붐을 주도했다. 그들이 다시 인문교양서의 시대를 열고 있다”고 했다.
출판계에서는 이들을 ‘훈련된 독자’라고 부른다. 특히 386세대가 마흔 줄에 접어들어 486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40대는 출판시장을 선도하는 ‘초기독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40대 독자가 움직이면 30대도 따라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 저력을 확인해 준 것이 지난해 밀리언셀러인 최인호의 ‘상도’(전 5권)와 올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조정래의 ‘한강’(전 10권)이다. 해냄의 김수영 편집장은 “40대들이 가장 먼저 내가 살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라는 반가움에 ‘한강’을 집어 들었다. 그 가운데 ‘조정래의 다른 소설은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한강’의 독자가 ‘태백산맥’ ‘아리랑’으로 이어지는 조정래의 고정팬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칼피스, 원기소, 버스 차장, 프로레슬링, 장발 단속을 기억하는 세대들이 소설 ‘한강’의 중심 독자층을 형성한다.
지난해부터 출판계에는 40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복고 마케팅이 번지고 있다. 바다출판사가 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명랑만화들-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윤승운의 ‘두심이’, 박수동의 ‘5학년5반 삼총사’-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두호의 ‘객주’, 백성민의 ‘상자하자’ 등 성인용 만화들도 재출간했다. 여기에 어문각도 1983년 절판된 ‘클로버 문고’의 복간을 선언했다.
그중에서 황금가지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가장 성공적인 복고 마케팅으로 꼽힌다.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다섯 권이 출간돼 32만부가 팔렸다. 이런 복고 마케팅의 강점은 부모와 자녀를 한꺼번에 공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 세대는 어린 시절의 향수 때문에 책을 구매하고 자녀들에게도 책을 권하는 가장 적극적인 독자다.
지난 2월 출간된 김홍희의 사진 산문집 ‘방랑’의 주 독자층도 40대다. 원래 예쁘게 포장된 사진 산문집은 주로 20대 여성들이 선물용으로 구입했으나 ‘방랑’은 처음부터 40대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40대의 저자가 동년배 남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공감을 일으킨 것 같다. ‘변산의 지는 해를 바라보고 전율했다. 그때 나는 마흔을 넘기고 있었다’는 글이나 ‘방랑’이라는 제목 자체가 40대의 욕구를 대변해 준다”고 했다.
그러나 40대 독자의 부상을 단순히 추억이나 향수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한기호 소장은 40대의 독서 욕구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그들은 한 분야의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퓨전화된 지식을 필요로 한다. 과거에는 물과 기름처럼 여겨지던 지식들마저 결합해 새로운 전망을 찾아내지 않으면 그들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면 무조건 달려들어 ‘맛을 보려’ 한다. 한번 먹어보아 그들의 기호에 맞았을 경우에는 바로 다음 세대인 30대로 섭취가 이어지기 때문에 학제간 연구(가로지르기)를 통해 구체적인 전망이나 분석을 해놓은 책이 출간되면 즉시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웹진 북새통 ‘우리 출판의 핵, 40대 독자는 어떤 책을 유행시킬까’에서)
퓨전화된 지식을 소개한 책으로 성공한 예가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들녘)이다. 지난해 11월에 나온 이 책은 두꺼운 인문교양서에 3만500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4만5000부가 판매되었다. 그러나 한기호 소장은 “과거 문사철(文史哲) 중심의 인문·문학 독자와 현재의 40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고 말한다. 테크노크라트, 엔지니어, 벤처사업가, 환경운동가, 법률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독자층이다. 이들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식인들로 전문 분야의 실용서와 무겁지도 천박하지도 않은 엔터테인먼트 서적(고급 추리소설들), 대중과학서, 사회평론집 등을 선호한다.
또 이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두 아이의 아빠인 이기대씨(39)는 정원 가꾸기와 요리책에 관심이 많다. “마흔 문턱에 서니 젊어서 부질없는 공명심에 밀쳐놓았던 작지만 소중한 꿈들을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살아난다. 미국에 가면 개인적인 행복에 관한 책을 사오게 된다. 작은 정원을 가꾸면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남는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40대는 나머지 인생을 준비하는 방편으로 독서를 하는 게 아닐까.”
‘나이 들어가는 것의 아름다움’ ‘중년 이후’ ‘노년에 관하여’ ‘성찰’ 등 지난해부터 나이 듦에 대한 책들이 꾸준히 종수를 늘려가고 있는데, 정작 이 책의 독자들은 노년층이 아니라 40대다. 50대 이전 세대들이 ‘How to earn’에만 매달려 늙음에 대해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다면, 40대는 현재 자신의 돈과 시간과 인생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는 한편 노후까지도 준비한다. 책은 40대에게 세계로 열린 창이요, 소박한 위안거리다.
서지점장의 독서 경향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과학과 역사, 평전, 에세이, 여행서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이 많은 책들을 언제 읽느냐고 물었더니 “매일 밤 2시간 정도 독서를 한다”고 대답한다. 새벽 2시쯤 잠이 들어 평균 수면시간은 4~5시간. 열심히 책을 읽는 이유는 간단했다. “재미있으니까.” 음악감상, 미술 컬렉션, 암벽등반 등 그의 다양한 취미활동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지만 독서는 취미라기보다 일상생활이다.
최근 출판계는 왕성한 지적 욕구를 지닌 ‘40대 독자’의 부상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40대가 움직이면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할 만큼 가장 책을 읽지 않는 세대의 상징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출판시장을 좌우할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40대 독자층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지난해 12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주최한 좌담회였다. 여기서 글쓰기의 주체이자 읽기의 주체로서 40대가 토론의 중심이 되었다. 민음사의 장은수 편집부장은 “과거에는 이들이 전체 독자의 10%였다고 하면 지금은 30% 이상으로 커졌다”고 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도 386세대를 출판시장의 전략적 소비층으로 보고 40대에 접어든 이들 독자층의 응집력이 계속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0대 독자층을 넓게 잡으면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학번까지, 약 15년간 직·간접으로 민주화 투쟁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세대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이념적으로 중도좌파의 개혁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주로 학회나 동아리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자랐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김장환 편집장은 “40대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세대로 80년대 사회과학 서적, 90년대 초 인문서, 90년대 중반 경제·경영서의 붐을 주도했다. 그들이 다시 인문교양서의 시대를 열고 있다”고 했다.
출판계에서는 이들을 ‘훈련된 독자’라고 부른다. 특히 386세대가 마흔 줄에 접어들어 486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40대는 출판시장을 선도하는 ‘초기독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40대 독자가 움직이면 30대도 따라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 저력을 확인해 준 것이 지난해 밀리언셀러인 최인호의 ‘상도’(전 5권)와 올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조정래의 ‘한강’(전 10권)이다. 해냄의 김수영 편집장은 “40대들이 가장 먼저 내가 살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라는 반가움에 ‘한강’을 집어 들었다. 그 가운데 ‘조정래의 다른 소설은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한강’의 독자가 ‘태백산맥’ ‘아리랑’으로 이어지는 조정래의 고정팬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칼피스, 원기소, 버스 차장, 프로레슬링, 장발 단속을 기억하는 세대들이 소설 ‘한강’의 중심 독자층을 형성한다.
지난해부터 출판계에는 40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복고 마케팅이 번지고 있다. 바다출판사가 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명랑만화들-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윤승운의 ‘두심이’, 박수동의 ‘5학년5반 삼총사’-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두호의 ‘객주’, 백성민의 ‘상자하자’ 등 성인용 만화들도 재출간했다. 여기에 어문각도 1983년 절판된 ‘클로버 문고’의 복간을 선언했다.
그중에서 황금가지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가장 성공적인 복고 마케팅으로 꼽힌다.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다섯 권이 출간돼 32만부가 팔렸다. 이런 복고 마케팅의 강점은 부모와 자녀를 한꺼번에 공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 세대는 어린 시절의 향수 때문에 책을 구매하고 자녀들에게도 책을 권하는 가장 적극적인 독자다.
지난 2월 출간된 김홍희의 사진 산문집 ‘방랑’의 주 독자층도 40대다. 원래 예쁘게 포장된 사진 산문집은 주로 20대 여성들이 선물용으로 구입했으나 ‘방랑’은 처음부터 40대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40대의 저자가 동년배 남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공감을 일으킨 것 같다. ‘변산의 지는 해를 바라보고 전율했다. 그때 나는 마흔을 넘기고 있었다’는 글이나 ‘방랑’이라는 제목 자체가 40대의 욕구를 대변해 준다”고 했다.
그러나 40대 독자의 부상을 단순히 추억이나 향수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한기호 소장은 40대의 독서 욕구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그들은 한 분야의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퓨전화된 지식을 필요로 한다. 과거에는 물과 기름처럼 여겨지던 지식들마저 결합해 새로운 전망을 찾아내지 않으면 그들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면 무조건 달려들어 ‘맛을 보려’ 한다. 한번 먹어보아 그들의 기호에 맞았을 경우에는 바로 다음 세대인 30대로 섭취가 이어지기 때문에 학제간 연구(가로지르기)를 통해 구체적인 전망이나 분석을 해놓은 책이 출간되면 즉시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웹진 북새통 ‘우리 출판의 핵, 40대 독자는 어떤 책을 유행시킬까’에서)
퓨전화된 지식을 소개한 책으로 성공한 예가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들녘)이다. 지난해 11월에 나온 이 책은 두꺼운 인문교양서에 3만500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4만5000부가 판매되었다. 그러나 한기호 소장은 “과거 문사철(文史哲) 중심의 인문·문학 독자와 현재의 40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고 말한다. 테크노크라트, 엔지니어, 벤처사업가, 환경운동가, 법률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독자층이다. 이들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식인들로 전문 분야의 실용서와 무겁지도 천박하지도 않은 엔터테인먼트 서적(고급 추리소설들), 대중과학서, 사회평론집 등을 선호한다.
또 이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두 아이의 아빠인 이기대씨(39)는 정원 가꾸기와 요리책에 관심이 많다. “마흔 문턱에 서니 젊어서 부질없는 공명심에 밀쳐놓았던 작지만 소중한 꿈들을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살아난다. 미국에 가면 개인적인 행복에 관한 책을 사오게 된다. 작은 정원을 가꾸면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남는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40대는 나머지 인생을 준비하는 방편으로 독서를 하는 게 아닐까.”
‘나이 들어가는 것의 아름다움’ ‘중년 이후’ ‘노년에 관하여’ ‘성찰’ 등 지난해부터 나이 듦에 대한 책들이 꾸준히 종수를 늘려가고 있는데, 정작 이 책의 독자들은 노년층이 아니라 40대다. 50대 이전 세대들이 ‘How to earn’에만 매달려 늙음에 대해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다면, 40대는 현재 자신의 돈과 시간과 인생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는 한편 노후까지도 준비한다. 책은 40대에게 세계로 열린 창이요, 소박한 위안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