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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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점 ‘루머’어디까지 사실인가

보건증 확인 없이 아르바이트 ‘초보’ 주방 투입… 규정 많지만 지켜지지 않아

  • < 구미화 기자 > mhkoo@donga.com

    입력2004-10-27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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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푸드점 ‘루머’어디까지 사실인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의 ‘김동성 사건’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 고조된 반미감정은 미국산 제품을 쓰지 말자는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덩달아 미국산 패스트푸드점의 불결함과 불친절에 대한 비난도 많아졌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양상추를 지저분한 손으로 주물럭거려 먹을 수가 없어요.”

    “기름을 며칠씩 갈지 않고 쓰더라고요.”

    “바닥에 떨어졌던 치킨을 튀겨 손님에게 내놓기도 한다는데요.”

    “쥐나 바퀴벌레가 우글거리고….”



    이런 비판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 패스트푸드점 주방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위의 얘기들이 사실일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지난 3월26일부터 3일간 서울 시내에 있는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 취업 준비생으로 위장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출근 하루 전날, 회사에서 가까운 햄버거 매장에 전화를 걸어 나이 제한 여부와 필요한 서류를 물었다. 나이는 상관없고 보건증을 끊어오라는 답변. 보건소에서 몇 가지 간단한 검사만 받으면 된다는 설명이었다. 검사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5일. 그러나 친절하게도 매장에서는 “며칠 걸리니까 영수증만 가져오면 돼요”라고 안내해 준다. 마포보건소에서 받은 검사는 가슴 X선 촬영과 장티푸스·전염성 피부질환 검사.

    다음날 약속 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매장에 도착했다. 매니저 한 사람이 고객 위주로 서비스할 것과 청결을 중시하라는 내용으로 10여분간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하지만 준비해 간 보건증 영수증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곧장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주방에 투입되었다.

    패스트푸드점 ‘루머’어디까지 사실인가
    최근 들어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개학과 함께 일을 그만두면서 시내 패스트푸드 매장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직원을 채용할 때는 일단 보건검사를 요구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 지원자가 오는 대로 주방에 투입하는 데 급급하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보건증을 확인해도 이런 식이라면 전염병을 앓고 있는 아르바이트 사원에게 일주일씩이나 패스트푸드점의 주방이 노출될 수도 있다.

    낮엔 이곳 매장에서 파트타임 매니저로 일하고, 저녁엔 야간대학에 다니며 주경야독하는 새내기 A양은 어리지만 딱부러지게 일을 가르쳤다. 먼저 손씻는 법부터. 손씻는 법을 선보이며 팔목까지 깨끗하게 씻으라고 강조한다. 개수대 위에는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 20초 이상 손을 씻는다는 내부 규정이 쓰여 있다.

    손을 씻고 조리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던 중 나도 모르게 손등으로 코를 만졌다. “언니처럼 손씻고 얼굴 만지면 다시 씻어야 해요.” 당황한 마음에 “네” 하고 대답했더니 “뭐 해요? 빨리 씻고 와요”라며 재촉한다. 당황했지만 ‘이 정도로 청결을 유지한다면 문제 될 게 없겠다’고 안심.

    손을 깨끗이 씻었지만 위생장갑을 착용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3월부터 착용하기 시작한 위생장갑은 색깔이 다른 두 가지가 있다. 보통 음식을 만질 때는 투명 비닐장갑을 끼지만 냉동식품을 만질 때는 파란색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또 튀김용 기름도 새것을 준비해 놓았다. 이렇게 되면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이 일부 과장된 것은 사실이다. 기자가 일한 패스트푸드점의 경우 바닥에 떨어진 재료는 다시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을 만드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낮 12시. 주변에 기업체가 많다 보니 정신없이 바빠졌다. 게다가 일선 학교에서 반장선거를 마치고 당선된 학생들이 답례행사를 하기 위해 햄버거를 단체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3일 동안 50개에서 140여개까지 배달주문이 계속되었다. 급기야 맨손으로 일하는 데 익숙한 아르바이트생들은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다. 빵을 꺼내 굽거나 스팀에 찌고, 냉장고에서 돼지고기나 쇠고기 패티를 꺼내 굽는다. 그리고 그 손으로 양파나 양상추를 꼭 쥐고 적당량을 빵에 얹는다. 위생장갑을 끼더라도 문제는 마찬가지. 냉동식품용인 파란색 장갑으로 갈아 낄 여유가 없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튀김기에 담긴 기름마다 검은색을 띠고, 짙은 갈색의 튀김가루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이 매장의 경우 사흘마다 기름을 교체하는 것. 기자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첫날은 마침 새로 기름을 교체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기름양이 줄어들면 그때그때 고체로 된 동물성 식용 유지(쇠기름)를 넣어준다.

    패스트푸드점 ‘루머’어디까지 사실인가
    이 회사의 홍보대행사측에 확인한 결과 매장에 따라 기름 교체 시기가 다르지만 보통 같은 기름을 이틀에서 일주일 정도 쓴다고 했다. 3일째 쓰고 있는 검은 기름에 그날도 1시간 만에 140여개나 되는 치킨버거용 패티를 튀겨냈다.

    신선한 식품을 제공하기 위해 모든 제품에는 홀딩타임(holding time)이 정해져 있어 만들어 놓은 후 일정 시간이 지난 제품은 폐기처분한다. 버거 속에 들어가는 패티들은 대개 주문받은 뒤 만들기 시작하지만, 바쁜 경우를 대비해 몇 개 더 만들어 놓거나 주문보다 많은 양을 만들었을 때는 홀딩타임이 되면 벨이 울리는 저장고에 보관한다. 그러나 20∼30분의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역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버리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니까 버리지 않고 벨이 울리면 다시 버튼을 눌러요.”

    이렇게 해서 홀딩타임이 자동으로 연장된다. 이런 식으로 버거에 들어가는 고기와 닭날개, 치킨 너겟 등이 몇 시간씩 저장고에 보관된 채 손님을 기다리기도 하는 것.

    “홀딩타임이 지난 음식은 내부 직원도 먹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어요. 주문 즉시 그때그때 조리해서 신선도를 유지하죠” “불우 이웃이나 어린이를 위한 행사에서 햄버거 지원 요청이 와도 신선도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햄버거는 지원할 수 없어요. 콜라만 제공하고 있지요.” M사의 홍보를 대행하고 있는 ㈜코콤포터노벨리사의 이야기다. 결국 문제는 규정은 많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 이로 인해 신선도가 떨어지는 음식을 팔 수는 있어도 자선행사에 기부할 수는 없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된다.

    사흘간의 체험을 통해 왜 사람들이 패스트푸드점의 주방을 ‘조립공장’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열기를 내뿜는 기계들은 감자와 갖가지 버거, 닭날개, 너겟 등에 맞는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냉장고엔 버거에 들어갈 쇠고기·돼지고기·치킨 패티들과 다 썰어져 진공포장된 양상추와 양파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소스도 누르기만 하면 필요한 양이 나오도록 맞춰져 있었다. 한마디로 빠르게 움직여 꺼내 익히거나 얹기만 하면 되는 것. 이제 남은 의문점은 하나. 패스트푸드의 원재료를 가공하는 공장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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