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는 16세 때 처음 연극을 보았다. 실러의 ‘군도’를 본 뒤 격앙된 이 고등학생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주머니에 용돈이 두둑한 어른들이 매일 저녁 이 공연을 보러 오지 않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연극이 이토록 사람을 매료시키는 건 무엇 때문일까? 대학로 단막극장에서 1시간 남짓 공연된 ‘그림쓰기’는 그 한 가지 이유를 말해준다. 칠흑같이 캄캄한 어둠 속에 꺼질 듯 깜빡이며 서서히 타들어가는 한점 불씨가 공간을 배회하면, 그것은 때로 떨어지는 유성이 되고, 한 많은 넋이 되고, 초조한 탐정이 된다. 1m도 채 안 떨어진 무대 위에서는 우리가 매일 대하는 조그만 담뱃불이 긴장과 호기심,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아주 낯설고 강한 자극제가 된다. 담배와 마찬가지로 수저, 카메라, 슬리퍼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 무대 조명을 받으면 엄청난 변신을 한다.
하이너 뮐러가 어느 여고생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썼다는 ‘그림쓰기’는 물감이 아닌 언어로 그림을 덧칠해 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니면”이라는 말로 덧칠한 것을 또 덧칠해 나가면서 여러 버전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상상해내는 것이다.
단막극장은 뮐러의 원작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그중 한 가지 버전을 선택한 뒤 하나의 액자에 끼워 넣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방문한 형사가 사건 전모를 추론해 나가는 과정이 그 틀을 구성한다.
그와 걸맞게 무대 후면 벽에는 가족의 단란한 표정을 담은 한 장의 액자사진이 ‘행복한 가족’의 역사를 역설적으로 폭로하며 걸려 있다. 사진은 카메라 앞에서 남편이 억지로 입을 벌려 만들어낸 아내의 미소, 폭력과 두려움을 감추려고 애쓰는 아이의 부릅뜬 눈, 그 뒤에 서서 행복을 연출하는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보여준다.
형사는 혈흔과 도마 아래 숨겨진 작두와 벽에 걸린 액자를 조사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동안 사건 전모를 밝혀내고 경악한다. 아내의 사랑을 폭력으로 강요하는 남편과 섹스 도구로 전락한 채 반항하다 목 졸려 쓰러지는 아내, 그 사이에서 전율하다 아버지를 죽이는 아이…. 이들의 이야기를 좇아가는 동안 그는 자신 속에서 가해자 남편을, 가해당하는 아내를, 엄마를 부르짖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몸서리친다.
연극 ‘그림쓰기’는 이 ‘조용한 가족’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으로 점철된 우리 자신의 역사라는 뮐러의 논지를 쉽게, 하지만 충격적으로 전달해 준다. 정제혁 연출의 무대는 또 하나의 그림쓰기였다. 세심하게 계산된 조명은 자극적이고 공포스런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미니멀한 언어와 제스처를 반복하는 인물들이 또 다른 ‘나’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경악했다.
연극이 이토록 사람을 매료시키는 건 무엇 때문일까? 대학로 단막극장에서 1시간 남짓 공연된 ‘그림쓰기’는 그 한 가지 이유를 말해준다. 칠흑같이 캄캄한 어둠 속에 꺼질 듯 깜빡이며 서서히 타들어가는 한점 불씨가 공간을 배회하면, 그것은 때로 떨어지는 유성이 되고, 한 많은 넋이 되고, 초조한 탐정이 된다. 1m도 채 안 떨어진 무대 위에서는 우리가 매일 대하는 조그만 담뱃불이 긴장과 호기심,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아주 낯설고 강한 자극제가 된다. 담배와 마찬가지로 수저, 카메라, 슬리퍼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 무대 조명을 받으면 엄청난 변신을 한다.
하이너 뮐러가 어느 여고생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썼다는 ‘그림쓰기’는 물감이 아닌 언어로 그림을 덧칠해 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니면”이라는 말로 덧칠한 것을 또 덧칠해 나가면서 여러 버전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상상해내는 것이다.
단막극장은 뮐러의 원작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그중 한 가지 버전을 선택한 뒤 하나의 액자에 끼워 넣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방문한 형사가 사건 전모를 추론해 나가는 과정이 그 틀을 구성한다.
그와 걸맞게 무대 후면 벽에는 가족의 단란한 표정을 담은 한 장의 액자사진이 ‘행복한 가족’의 역사를 역설적으로 폭로하며 걸려 있다. 사진은 카메라 앞에서 남편이 억지로 입을 벌려 만들어낸 아내의 미소, 폭력과 두려움을 감추려고 애쓰는 아이의 부릅뜬 눈, 그 뒤에 서서 행복을 연출하는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보여준다.
형사는 혈흔과 도마 아래 숨겨진 작두와 벽에 걸린 액자를 조사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동안 사건 전모를 밝혀내고 경악한다. 아내의 사랑을 폭력으로 강요하는 남편과 섹스 도구로 전락한 채 반항하다 목 졸려 쓰러지는 아내, 그 사이에서 전율하다 아버지를 죽이는 아이…. 이들의 이야기를 좇아가는 동안 그는 자신 속에서 가해자 남편을, 가해당하는 아내를, 엄마를 부르짖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몸서리친다.
연극 ‘그림쓰기’는 이 ‘조용한 가족’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으로 점철된 우리 자신의 역사라는 뮐러의 논지를 쉽게, 하지만 충격적으로 전달해 준다. 정제혁 연출의 무대는 또 하나의 그림쓰기였다. 세심하게 계산된 조명은 자극적이고 공포스런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미니멀한 언어와 제스처를 반복하는 인물들이 또 다른 ‘나’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