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10대 소녀 세바. 어느 날 그의 집에 한 부자 가족이 찾아오면서 이 소녀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변하는 듯했다. 찾아온 이들은 세바가 자신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누리게 될 고상한 생활과 찬란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집안일을 잠깐씩 봐주기만 하면 학업은 물론 직업교육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꿈에 부풀었던 이 소녀가 맞닥뜨린 현실은 한 편의 공포영화였다. 우선 그녀는 집 밖 출입을 거의 할 수 없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청소와 요리, 아이들 돌보기 같은 가사노동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교육은커녕 한푼의 보수도 없었다.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고 남들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녀에 대한 학대가 극에 달했을 때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그녀는 관공서의 도움을 받아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노예 한 명 가격 1만9천원 내외
이상은 미국의 사회학자 케빈 베일스가 그의 저서 ‘현대판 노예’에서 묘사한 세바의 지옥 같은 노예생활기다. 연구기간 동안 저자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 저개발 지역의 여러 나라를 조사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6세기 초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거래됐던 흑인노예보다 더 많은 노예들이 오늘날 존재한다는 것이다.
노예제와 인신매매가 법적으로 폐지된 지 150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노예가 허용된 적이 없지만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노예거래반대운동(ASI)은 전 세계적으로 2700만명 이상이 사실상 노예신분으로 살고 있다고 추산한다. 유엔 아동구호기금(UNICEF)에 따르면 이는 “과거 400년간 아프리카에서 외지로 사람을 빼내던 노예매매 시절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다. 2월17일자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인터넷판은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현대판 노예제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보수 한푼 받지 못하고 지주를 위해 일하거나 부모 혹은 조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끌려와 강제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은 대개 수단, 파키스탄, 인도 등 저개발 국가에 흩어져 있지만, 브라질처럼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이나 반투족뿐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아이마라족과 엑스넷족 일원이 아직도 농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벌어지는 현대판 노예 사냥. 수단은 현재 이슬람계 정부가 남부의 기독교인과 원시종교 숭배자들을 상대로 십수년째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예거래는 일종의 정치적 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정부 민병대는 반군 소탕을 핑계로 남부 딩카족의 마을을 습격해 여성과 어린이를 끌고 가 2만원 남짓의 몸값을 받고 팔아 넘긴다. 이슬람계 민병대는 이들을 노예화하는 것을 전통적인 권리로 여기기 때문에 죄의식 없이 노예 사냥을 자행한다. 미국 국무부는 이렇게 노예가 된 흑인이 1990년대 초반 9만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노예의 상당수가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납치와 착취가 더욱 용이한 까닭이다. 아프리카 일대의 노예제 실태에 대해 상당기간 연구해 온 인권단체 ‘인간의 땅’(Terre de Hommes)은 아프리카의 말리에만 소년 2만명이 강제노동자로 억류돼 있다고 추산한다. 이들은 부모와 수백km 혹은 수천km 떨어져 카카오, 커피, 목화, 바나나 등 수출품이 재배되는 농장에서 일한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노예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 19세기에는 노예상인이 노예 한 명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이 현재 가치로 환산해 9000만원 내외였다. 반면 오늘날에는 한화 약 1만9000원이면 노예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판 노예’의 저자 케빈 베일스의 견해다.
극빈 상태에 빠진 부모가 더욱 헐값에 자신의 아이들을 인신매매 업자에게 팔아 넘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 경우 가격은 1만5000원 정도. 물론 인신매매 업자들은 아이가 농장에서 충분한 보수를 받게 될 뿐 아니라 나중에 직업교육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부모에게 약속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생명이 위태로운 작업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되리라는 것, 의식주는 물론 마실 물조차 부족한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농장에서의 강제노동도 문제지만 가사노동을 위해 팔려가는 어린이 수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의 아프리카 국가에는 부유한 친척집이나 이웃집에 자식을 보내는 것이 전통처럼 굳어져 있다. 집안일을 돌보는 대가로 장사를 배우거나 학교에 보내주는 게 관습이 돼 있는 것. 이러한 전통은 어린이 밀매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문 인신매매 업자들이 신분을 가장해 부모를 속이고 아이들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것이다.
‘인간의 땅’에서 전문운동가로 활동하며 수년째 서아프리카에서 거주하고 있는 잉가 나겔 여사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이들 ‘인간 사냥꾼’의 약속에 속은 아이들은 밤이나 안개가 많이 낀 날 국경 밖으로 빼돌려진다”고 증언한다. 이런 방식으로 해외에 팔려 나간 아이들은 베냉공화국에서만 14만명에 달한다는 것. 대략 6만5000가구에 흩어져 혹사당하고 있는 이들 ‘어린 도우미’들 중 20% 가량은 10세 미만이다.
그러나 알려진 통계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착취당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인권단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관측이다. 저개발 지역의 인신매매 산업 규모가 날이 갈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기 때문.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서아프리카의 인신매매업은 “이 지역에서 가장 조직력이 강한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이익을 남기는 유력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제적십자사 관계자들은 이러한 노예무역 근절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노예노동의 수혜자 가운데 하나인 영국의 초콜릿 회사 캐드베리 역시 코코아 재배를 위한 아동 노예무역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날로 늘어나는 인구, 점점 벌어지는 빈부 격차를 해결하지 않는 한 노예산업이 근절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어린 노예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초콜릿을 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꿈에 부풀었던 이 소녀가 맞닥뜨린 현실은 한 편의 공포영화였다. 우선 그녀는 집 밖 출입을 거의 할 수 없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청소와 요리, 아이들 돌보기 같은 가사노동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교육은커녕 한푼의 보수도 없었다.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고 남들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녀에 대한 학대가 극에 달했을 때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그녀는 관공서의 도움을 받아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노예 한 명 가격 1만9천원 내외
이상은 미국의 사회학자 케빈 베일스가 그의 저서 ‘현대판 노예’에서 묘사한 세바의 지옥 같은 노예생활기다. 연구기간 동안 저자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 저개발 지역의 여러 나라를 조사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6세기 초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거래됐던 흑인노예보다 더 많은 노예들이 오늘날 존재한다는 것이다.
노예제와 인신매매가 법적으로 폐지된 지 150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노예가 허용된 적이 없지만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노예거래반대운동(ASI)은 전 세계적으로 2700만명 이상이 사실상 노예신분으로 살고 있다고 추산한다. 유엔 아동구호기금(UNICEF)에 따르면 이는 “과거 400년간 아프리카에서 외지로 사람을 빼내던 노예매매 시절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다. 2월17일자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인터넷판은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현대판 노예제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보수 한푼 받지 못하고 지주를 위해 일하거나 부모 혹은 조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끌려와 강제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은 대개 수단, 파키스탄, 인도 등 저개발 국가에 흩어져 있지만, 브라질처럼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이나 반투족뿐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아이마라족과 엑스넷족 일원이 아직도 농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벌어지는 현대판 노예 사냥. 수단은 현재 이슬람계 정부가 남부의 기독교인과 원시종교 숭배자들을 상대로 십수년째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예거래는 일종의 정치적 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정부 민병대는 반군 소탕을 핑계로 남부 딩카족의 마을을 습격해 여성과 어린이를 끌고 가 2만원 남짓의 몸값을 받고 팔아 넘긴다. 이슬람계 민병대는 이들을 노예화하는 것을 전통적인 권리로 여기기 때문에 죄의식 없이 노예 사냥을 자행한다. 미국 국무부는 이렇게 노예가 된 흑인이 1990년대 초반 9만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노예의 상당수가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납치와 착취가 더욱 용이한 까닭이다. 아프리카 일대의 노예제 실태에 대해 상당기간 연구해 온 인권단체 ‘인간의 땅’(Terre de Hommes)은 아프리카의 말리에만 소년 2만명이 강제노동자로 억류돼 있다고 추산한다. 이들은 부모와 수백km 혹은 수천km 떨어져 카카오, 커피, 목화, 바나나 등 수출품이 재배되는 농장에서 일한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노예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 19세기에는 노예상인이 노예 한 명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이 현재 가치로 환산해 9000만원 내외였다. 반면 오늘날에는 한화 약 1만9000원이면 노예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판 노예’의 저자 케빈 베일스의 견해다.
극빈 상태에 빠진 부모가 더욱 헐값에 자신의 아이들을 인신매매 업자에게 팔아 넘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 경우 가격은 1만5000원 정도. 물론 인신매매 업자들은 아이가 농장에서 충분한 보수를 받게 될 뿐 아니라 나중에 직업교육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부모에게 약속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생명이 위태로운 작업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되리라는 것, 의식주는 물론 마실 물조차 부족한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농장에서의 강제노동도 문제지만 가사노동을 위해 팔려가는 어린이 수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의 아프리카 국가에는 부유한 친척집이나 이웃집에 자식을 보내는 것이 전통처럼 굳어져 있다. 집안일을 돌보는 대가로 장사를 배우거나 학교에 보내주는 게 관습이 돼 있는 것. 이러한 전통은 어린이 밀매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문 인신매매 업자들이 신분을 가장해 부모를 속이고 아이들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것이다.
‘인간의 땅’에서 전문운동가로 활동하며 수년째 서아프리카에서 거주하고 있는 잉가 나겔 여사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이들 ‘인간 사냥꾼’의 약속에 속은 아이들은 밤이나 안개가 많이 낀 날 국경 밖으로 빼돌려진다”고 증언한다. 이런 방식으로 해외에 팔려 나간 아이들은 베냉공화국에서만 14만명에 달한다는 것. 대략 6만5000가구에 흩어져 혹사당하고 있는 이들 ‘어린 도우미’들 중 20% 가량은 10세 미만이다.
그러나 알려진 통계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착취당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인권단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관측이다. 저개발 지역의 인신매매 산업 규모가 날이 갈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기 때문.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서아프리카의 인신매매업은 “이 지역에서 가장 조직력이 강한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이익을 남기는 유력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제적십자사 관계자들은 이러한 노예무역 근절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노예노동의 수혜자 가운데 하나인 영국의 초콜릿 회사 캐드베리 역시 코코아 재배를 위한 아동 노예무역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날로 늘어나는 인구, 점점 벌어지는 빈부 격차를 해결하지 않는 한 노예산업이 근절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어린 노예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초콜릿을 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