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노조의 파업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으나 민영화를 둘러싼 발전 노사간 대립은 좀처럼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19일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며 민영화 철회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다음날 곧바로 발전 노조측에 ‘미복귀 조합원 전원 해고’라는 최후통첩이 날아들었다. 21일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은 “한국전력, 가스공사 등 구조개편은 당초 일정대로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다. 최근 전력산업 노조의 불법파업은 근로조건 개선이 아닌 정치적 동기가 개입되어 있으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산자부는 애초 계획대로 5개 화력발전회사 중 먼저 한 곳을 매각하고, 한전의 배전부문도 올해 안에 6개로 분할해 2008년까지 민영화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꺼번에 민영화하지 않고 한 군데를 먼저 민영화한 뒤 부작용과 경제상황을 살피면서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신국환 장관의 단계적 추진론에 대해, 한 발전분야 전문가는 기술적으로 한 곳을 매각하든 다섯 곳을 모두 매각하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91년 독일 뮌헨공대에서 ‘터빈 날개(블레이드)의 공전시 받는 응력의 해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춘근 교수(52·옌볜과학기술대)는 “발전소 한 군데쯤이야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오판”이라고 말한다. 그는 발전소 민영화를 노사 갈등이나 전기요금 논쟁으로만 보지 말고, 국가안보 차원에서 재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늘 전력 부족 사태만 걱정하는데 사실 전력의 질이 더 큰 문제다. 전기는 주파수가 생명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는 60Hz에 맞춰져 있는데, 이것을 오차범위 ±0.03Hz(0.05%) 이내로 공급해야 이상적이다. 만약 주파수 오차가 ±2.40Hz(4%)에 이르면 전국의 모든 발전소를 가동 중지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가동을 계속하면 증기터빈이 폭발한다.”
실제로 1978년 12월19일 프랑스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또 세계적으로 평균 2년에 한 번씩 터빈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유럽은 국가간 전력 네트워크(UCPTE)가 구축돼 한 곳에서 순간적으로 전력공급에 이상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전력을 사오는 시스템이 가동중임에도 프랑스의 사고를 막지 못했다. 반면 ‘전력의 섬’ 같은 존재인 한국은 소량의 공급 차질만으로도 가동 중지라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박교수는 이 같은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발전소가 해외자본에 매각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 발전설비 규모 5000만kW의 4%는 200만kW다. 100만kW짜리 발전소 2개에 해당한다. 만약 우리에게 경영권이 없는 4%의 전력을 가지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주파수를 변동시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전국의 모든 발전소가 동시에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한두 개의 발전소 운영권만 갖고 있어도 쉽게 국가를 상대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박교수는 2015년께 전력소비가 8000만kW(현재 전력설비 용량의 약 1.7배)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신규발전소 건설을 위해 발전소를 팔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현 상태에서 우리나라 발전시설 용량은 선진국 수준이어서 전력난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
“선진국 수준에서 국민 1인당 발전설비 용량은 1~1.3kW면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약 5000만kW 수준의 발전용량을 갖고 있으니 충분하고 평소 예비율도 30%에 이른다. 문제는 여름만 되면 전력예비율이 모자라 난리가 나는데, 그때 전력사용 구조를 보면 대개 오후 2~4시에 집중된다. 이 피크타임만 제대로 관리해도 약 10%의 전력예비율이 더 생긴다. 여름철 6~8월에는 1시간 앞당기는 서머타임제를 실시하고 또 산업체가 1시간 앞당겨 조기조업만 해도 이 문제는 깨끗이 해결된다. 유럽의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노피크타임제를 실시해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 밖에도 8년 수명이 보장되는 발전소용증기터빈 블레이드를 낡은 법령 때문에 2년에 한 번씩 뜯어 교체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력손실 등을 감안하면 전력예비율은 더욱 올라가기 때문에 그만큼 신규발전소 건설규모는 축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교수가 민영화를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근거는 우리가 턴키(Turn-key) 방식의 발전소 건설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발전사업 분야의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발전소 설비를 생산하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발전소를 보수하는 한전기공, 발전소를 설계하는 한전기술주식회사 등을 각각 쪼개 매각하는 것은 어부가 낚시도구와 어망을 팔아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20년 전 GE사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증기터빈 기술을 한국에 매각하고 사업 자체를 해체해 버린 후 전문인력 양성에 실패했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은 턴키 방식의 발전소 건설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건설부문의 비경제성 때문에 발전설비 판매에 주력하고 있어 사실상 해외진출에는 관심이 없는 상태다. 일본 역시 발전산업이 3D업종으로 인식돼 기술인력의 대가 끊겼다. 반면 한국은 발전소의 설계, 제작, 건설, 유지·보수까지 턴키 베이스 방식으로 건설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꼽히고 있다.
100만kW 복합화력발전소 한 곳을 건설할 경우 1조~1조5000억원이 소요되는데, 중국의 경우 이런 규모의 발전소가 당장 84개가 필요하고, 대만은 당장 10개 향후 20개, 베트남은 향후 10년 내 20개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전력산업과 관련한 알짜기업들을 섣불리 해외에 매각함으로써 황금시장을 눈앞에서 놓칠 수도 있다. 발전소 건설과 기술 습득에는 최소한 20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이 한국의 전력산업 매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발전소 민영화 유보론을 펴고 있는 산업연구원 박태주 연구위원은 박교수의 주장에 대해 “터빈 폭발 가능성은 사실이며, 피크타임 관리 등은 검토할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말한다. 특히 선진국이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한전에 대한 일종의 공포심’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많다. 지난해 4월 월간 ‘말’지는 정부문서를 통해 98~99년 한미투자협정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전력 등 주요 공기업을 유보대상(투자협정 예외조항 리스트)에서 삭제하거나 축소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다고 폭로했다(실제 민영화안은 외국인에게 제한을 풀어주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상자기사 참조). 이로 인해 공기업 해외매각에 대한 ‘미국의 음모론’이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박태주 위원은 이런 논의들이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이미 지난해 한전의 발전부문이 6개 자회사로 분할되고 한전기공, 한국 등 관계사들의 입찰이 추진중인 상황에서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격”이라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송광의 박사(에너지정책연구부 구조개편팀 팀장)는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민영화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시장의 경쟁기능을 도입하지 않는 한 구조개편은 반쪽짜리일 뿐이다. 일정이 빠듯하긴 하나 연내 발전소 1곳 정도는 매각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학계·시민단체 쪽에서는 “민영화 재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3월19일 전국 경제·경영학 교수 102명이 ‘발전산업 민영화 계획 유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20일에는 사회학자 43명이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21일에는 교육·의료 관련 13개 단체가 “정부 추진 발전소 포함 기간산업 및 교육·의료 부분 민영화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정부는 이미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라고 말하고, 민영화 반대 혹은 유보론자들은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국민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3월16일 한길리서치가 발표한 ‘발전소 민영화에 대한 전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의 정서는 유보 쪽이 강하다. 조사대상 1000명 가운데 발전소, 철도, 가스 등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를 찬성한다는 응답이 50.6%, 반대가 43.9%로 찬성 쪽이 높았지만, 화력발전소(전력생산 60% 담당)를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자본에 팔고 전기를 사서 쓰는 문제를 질문한 결과 81%가 화력발전소 민영화는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은 14.6%.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6.2%가 일단 발전소 매각을 보류하고 국민적 토론을 거치라는 의견이고, 현 정권 임기 내 매각을 주장하는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민영화론은 ‘경영의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니 전력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최근 들어 민영화 반대론자들이 ‘공공소유, 경쟁모델’이나 ‘공기업 체제의 경영혁신’ 등의 새로운 대안도 제시하고 있으나 충분히 논의해 볼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다.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대로 현 정권 아래에서 발전회사 민영화가 성사되려면 갈 길은 멀고 시간은 너무 촉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꺼번에 민영화하지 않고 한 군데를 먼저 민영화한 뒤 부작용과 경제상황을 살피면서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신국환 장관의 단계적 추진론에 대해, 한 발전분야 전문가는 기술적으로 한 곳을 매각하든 다섯 곳을 모두 매각하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91년 독일 뮌헨공대에서 ‘터빈 날개(블레이드)의 공전시 받는 응력의 해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춘근 교수(52·옌볜과학기술대)는 “발전소 한 군데쯤이야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오판”이라고 말한다. 그는 발전소 민영화를 노사 갈등이나 전기요금 논쟁으로만 보지 말고, 국가안보 차원에서 재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늘 전력 부족 사태만 걱정하는데 사실 전력의 질이 더 큰 문제다. 전기는 주파수가 생명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는 60Hz에 맞춰져 있는데, 이것을 오차범위 ±0.03Hz(0.05%) 이내로 공급해야 이상적이다. 만약 주파수 오차가 ±2.40Hz(4%)에 이르면 전국의 모든 발전소를 가동 중지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가동을 계속하면 증기터빈이 폭발한다.”
실제로 1978년 12월19일 프랑스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또 세계적으로 평균 2년에 한 번씩 터빈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유럽은 국가간 전력 네트워크(UCPTE)가 구축돼 한 곳에서 순간적으로 전력공급에 이상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전력을 사오는 시스템이 가동중임에도 프랑스의 사고를 막지 못했다. 반면 ‘전력의 섬’ 같은 존재인 한국은 소량의 공급 차질만으로도 가동 중지라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박교수는 이 같은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발전소가 해외자본에 매각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 발전설비 규모 5000만kW의 4%는 200만kW다. 100만kW짜리 발전소 2개에 해당한다. 만약 우리에게 경영권이 없는 4%의 전력을 가지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주파수를 변동시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전국의 모든 발전소가 동시에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한두 개의 발전소 운영권만 갖고 있어도 쉽게 국가를 상대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박교수는 2015년께 전력소비가 8000만kW(현재 전력설비 용량의 약 1.7배)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신규발전소 건설을 위해 발전소를 팔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현 상태에서 우리나라 발전시설 용량은 선진국 수준이어서 전력난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
“선진국 수준에서 국민 1인당 발전설비 용량은 1~1.3kW면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약 5000만kW 수준의 발전용량을 갖고 있으니 충분하고 평소 예비율도 30%에 이른다. 문제는 여름만 되면 전력예비율이 모자라 난리가 나는데, 그때 전력사용 구조를 보면 대개 오후 2~4시에 집중된다. 이 피크타임만 제대로 관리해도 약 10%의 전력예비율이 더 생긴다. 여름철 6~8월에는 1시간 앞당기는 서머타임제를 실시하고 또 산업체가 1시간 앞당겨 조기조업만 해도 이 문제는 깨끗이 해결된다. 유럽의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노피크타임제를 실시해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 밖에도 8년 수명이 보장되는 발전소용증기터빈 블레이드를 낡은 법령 때문에 2년에 한 번씩 뜯어 교체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력손실 등을 감안하면 전력예비율은 더욱 올라가기 때문에 그만큼 신규발전소 건설규모는 축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교수가 민영화를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근거는 우리가 턴키(Turn-key) 방식의 발전소 건설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발전사업 분야의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발전소 설비를 생산하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발전소를 보수하는 한전기공, 발전소를 설계하는 한전기술주식회사 등을 각각 쪼개 매각하는 것은 어부가 낚시도구와 어망을 팔아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20년 전 GE사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증기터빈 기술을 한국에 매각하고 사업 자체를 해체해 버린 후 전문인력 양성에 실패했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은 턴키 방식의 발전소 건설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건설부문의 비경제성 때문에 발전설비 판매에 주력하고 있어 사실상 해외진출에는 관심이 없는 상태다. 일본 역시 발전산업이 3D업종으로 인식돼 기술인력의 대가 끊겼다. 반면 한국은 발전소의 설계, 제작, 건설, 유지·보수까지 턴키 베이스 방식으로 건설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꼽히고 있다.
100만kW 복합화력발전소 한 곳을 건설할 경우 1조~1조5000억원이 소요되는데, 중국의 경우 이런 규모의 발전소가 당장 84개가 필요하고, 대만은 당장 10개 향후 20개, 베트남은 향후 10년 내 20개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전력산업과 관련한 알짜기업들을 섣불리 해외에 매각함으로써 황금시장을 눈앞에서 놓칠 수도 있다. 발전소 건설과 기술 습득에는 최소한 20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이 한국의 전력산업 매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발전소 민영화 유보론을 펴고 있는 산업연구원 박태주 연구위원은 박교수의 주장에 대해 “터빈 폭발 가능성은 사실이며, 피크타임 관리 등은 검토할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말한다. 특히 선진국이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한전에 대한 일종의 공포심’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많다. 지난해 4월 월간 ‘말’지는 정부문서를 통해 98~99년 한미투자협정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전력 등 주요 공기업을 유보대상(투자협정 예외조항 리스트)에서 삭제하거나 축소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다고 폭로했다(실제 민영화안은 외국인에게 제한을 풀어주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상자기사 참조). 이로 인해 공기업 해외매각에 대한 ‘미국의 음모론’이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박태주 위원은 이런 논의들이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이미 지난해 한전의 발전부문이 6개 자회사로 분할되고 한전기공, 한국 등 관계사들의 입찰이 추진중인 상황에서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격”이라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송광의 박사(에너지정책연구부 구조개편팀 팀장)는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민영화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시장의 경쟁기능을 도입하지 않는 한 구조개편은 반쪽짜리일 뿐이다. 일정이 빠듯하긴 하나 연내 발전소 1곳 정도는 매각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학계·시민단체 쪽에서는 “민영화 재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3월19일 전국 경제·경영학 교수 102명이 ‘발전산업 민영화 계획 유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20일에는 사회학자 43명이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21일에는 교육·의료 관련 13개 단체가 “정부 추진 발전소 포함 기간산업 및 교육·의료 부분 민영화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정부는 이미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라고 말하고, 민영화 반대 혹은 유보론자들은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국민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3월16일 한길리서치가 발표한 ‘발전소 민영화에 대한 전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의 정서는 유보 쪽이 강하다. 조사대상 1000명 가운데 발전소, 철도, 가스 등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를 찬성한다는 응답이 50.6%, 반대가 43.9%로 찬성 쪽이 높았지만, 화력발전소(전력생산 60% 담당)를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자본에 팔고 전기를 사서 쓰는 문제를 질문한 결과 81%가 화력발전소 민영화는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은 14.6%.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6.2%가 일단 발전소 매각을 보류하고 국민적 토론을 거치라는 의견이고, 현 정권 임기 내 매각을 주장하는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민영화론은 ‘경영의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니 전력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최근 들어 민영화 반대론자들이 ‘공공소유, 경쟁모델’이나 ‘공기업 체제의 경영혁신’ 등의 새로운 대안도 제시하고 있으나 충분히 논의해 볼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다.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대로 현 정권 아래에서 발전회사 민영화가 성사되려면 갈 길은 멀고 시간은 너무 촉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