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특사 카드’가 현실화됐다. 3월25일 오전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가 4월 첫째 주에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예상했던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꽉 막힌 한반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특사를 활용해 보자는 것은 지난 2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대두된 방안이었다. 하지만 대화 상대인 북측이 별 반응이 없어 특사 카드에 대한 본격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3월 중순이 지나면서 정부 내 기류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4월이 돼야 무언가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며 상투적인 대답만 내놓던 통일부의 한 간부가 3월21일 “다음 주(3월 마지막 주)부터는 좀 바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변화’를 시사하기도 했다. 북측의 입장 변화가 이런 태도 변화의 진원지가 됐음은 물론이다.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고…
전문가들은 특사 방북이 수개월째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그동안 선미후남(先美後南)를 고집해 온 북한이 드디어 ‘엄혹한’ 현실을 인식하고 마음을 돌린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정세판단 인식과 관련해 최근 국정원의 한 고위관리는 사석에서 “북측은 작년 이래로 미국의 달라진 모습을 실감하고 있지만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현실을 좀더 비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차선책으로 특사 카드를 떠올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사를 수용한 북한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먼저 4월 말부터 두 달간 예정된 아리랑축전 및 비료지원 문제가 가장 큰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아리랑축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얼마 전 평양에 15만명 수용 규모의 5·1 경기장을 관광객으로 모두 채우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는 대형행사다. 그러나 남측 관광객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 같은 지시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여러 전문가들은 이번 특사 발표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북측이 늦어도 4월 초까지는 남북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우리 정부 입장에서 이번 특사 방북이 성사된 것은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국제관계 및 남북관계의 양대 축 중 남북관계 축이 다시 한번 힘을 얻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化)’, 다시 말해 남북관계의 급격한 진전을 통해 주변의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겠다는 발상을 내면에 깔고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인식이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다시 한번 실체를 갖게 된다. 물론 이번에는 남북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미국측과 어느 정도 사전 교감이 있었으리라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마디로 김대중 정부에게 지금 상황은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먼’ 형국이다. 지난해 김대통령이 그토록 애타게 요청했던 ‘김정일 답방’은 정부도 이제 기대를 접은 듯 보인다. 북측 역시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이 정부에 그처럼 큰 ‘선물’을 주기가 아깝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대북 강경 기조는 북측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에도 상당한 부담인 것이 사실이다. 이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처럼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던 상황을 다시 만들기는 어렵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강경 기조에 눌려 애당초 그려놓았던 ‘마스터플랜’이 다 망가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다는 데 김대중 정부의 고민이 있다.
우리 정부가 작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은 얼마 전 임동원 특보의 강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임특보는 “1년 이내에 상당한 수준의 북미관계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1994년 북한 핵위기와 같은 안보 위기가 올 수 있다”며 그 구체적인 예로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한 기한이 2003년이고 △북한의 과거 핵활동 규명을 위한 사찰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며 △원래 2003년 완공으로 예정됐던 경수로 건설이 지연되면서 북한이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등 현안이 2003년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특보가 든 세 가지 예는 그동안 정부 당국자들이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을 뿐, 사실 많은 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예의주시해 온 ‘시한폭탄’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북한의 과거 핵활동 규명을 위한 사찰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안을 설명해 보면 이렇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따르면, 북한은 자신이 과거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얼마나 추출했는지 밝혀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경수로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현재 공사 일정상으로는 2005년 5, 6월경에는 핵심부품이 북한으로 들어갈 전망이다. 문제는 특별사찰을 위한 특수장비 제작 등 준비기간이 짧으면 2년 반에서 3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이다. 즉 2005년경 경수로 핵심부품이 들어가려면 북한은 이미 특별사찰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애초 2003년에 경수로를 인도받기로 했던 북한으로서는 특별사찰 준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고사하고 공사 지연의 책임을 따지며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유예 시한을 ‘스스로’ 2003년으로 설정한 것도 북한이 이 시기를 오히려 대미 공세를 펼칠 계기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를 이끌어낸 1999년 북미 베를린 협상에서는 ‘북미간 고위급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시험발사를 하지 않기로’ 돼 있다).
사실 부시 행정부측 인사들은 이미 작년 초부터 북한의 특별사찰 수용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임특보의 이번 발언이 나오기 전까지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제대로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골치 아픈 문제를 일부러 회피하고 있었거나, 새로 바뀐 부시 행정부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있었거나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특사가 한번 방북하는 것으로 무언가 획기적인 타개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한반도의 현 상황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북한과 미국의 트라이앵글에는 ‘공개된’ 이해관계 외에 ‘내면적인’ 이해관계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각각의 국내 정치적 요인이 그렇고, 그중에는 무언가 비밀거래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주 방북하는 임동원 특사는 물론 일정한 성과를 갖고 돌아오겠지만, 그 보따리에 담길 내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고…
전문가들은 특사 방북이 수개월째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그동안 선미후남(先美後南)를 고집해 온 북한이 드디어 ‘엄혹한’ 현실을 인식하고 마음을 돌린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정세판단 인식과 관련해 최근 국정원의 한 고위관리는 사석에서 “북측은 작년 이래로 미국의 달라진 모습을 실감하고 있지만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현실을 좀더 비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차선책으로 특사 카드를 떠올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사를 수용한 북한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먼저 4월 말부터 두 달간 예정된 아리랑축전 및 비료지원 문제가 가장 큰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아리랑축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얼마 전 평양에 15만명 수용 규모의 5·1 경기장을 관광객으로 모두 채우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는 대형행사다. 그러나 남측 관광객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 같은 지시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여러 전문가들은 이번 특사 발표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북측이 늦어도 4월 초까지는 남북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우리 정부 입장에서 이번 특사 방북이 성사된 것은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국제관계 및 남북관계의 양대 축 중 남북관계 축이 다시 한번 힘을 얻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化)’, 다시 말해 남북관계의 급격한 진전을 통해 주변의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겠다는 발상을 내면에 깔고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인식이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다시 한번 실체를 갖게 된다. 물론 이번에는 남북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미국측과 어느 정도 사전 교감이 있었으리라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마디로 김대중 정부에게 지금 상황은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먼’ 형국이다. 지난해 김대통령이 그토록 애타게 요청했던 ‘김정일 답방’은 정부도 이제 기대를 접은 듯 보인다. 북측 역시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이 정부에 그처럼 큰 ‘선물’을 주기가 아깝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대북 강경 기조는 북측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에도 상당한 부담인 것이 사실이다. 이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처럼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던 상황을 다시 만들기는 어렵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강경 기조에 눌려 애당초 그려놓았던 ‘마스터플랜’이 다 망가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다는 데 김대중 정부의 고민이 있다.
우리 정부가 작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은 얼마 전 임동원 특보의 강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임특보는 “1년 이내에 상당한 수준의 북미관계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1994년 북한 핵위기와 같은 안보 위기가 올 수 있다”며 그 구체적인 예로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한 기한이 2003년이고 △북한의 과거 핵활동 규명을 위한 사찰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며 △원래 2003년 완공으로 예정됐던 경수로 건설이 지연되면서 북한이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등 현안이 2003년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특보가 든 세 가지 예는 그동안 정부 당국자들이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을 뿐, 사실 많은 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예의주시해 온 ‘시한폭탄’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북한의 과거 핵활동 규명을 위한 사찰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안을 설명해 보면 이렇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따르면, 북한은 자신이 과거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얼마나 추출했는지 밝혀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경수로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현재 공사 일정상으로는 2005년 5, 6월경에는 핵심부품이 북한으로 들어갈 전망이다. 문제는 특별사찰을 위한 특수장비 제작 등 준비기간이 짧으면 2년 반에서 3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이다. 즉 2005년경 경수로 핵심부품이 들어가려면 북한은 이미 특별사찰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애초 2003년에 경수로를 인도받기로 했던 북한으로서는 특별사찰 준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고사하고 공사 지연의 책임을 따지며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유예 시한을 ‘스스로’ 2003년으로 설정한 것도 북한이 이 시기를 오히려 대미 공세를 펼칠 계기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를 이끌어낸 1999년 북미 베를린 협상에서는 ‘북미간 고위급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시험발사를 하지 않기로’ 돼 있다).
사실 부시 행정부측 인사들은 이미 작년 초부터 북한의 특별사찰 수용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임특보의 이번 발언이 나오기 전까지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제대로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골치 아픈 문제를 일부러 회피하고 있었거나, 새로 바뀐 부시 행정부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있었거나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특사가 한번 방북하는 것으로 무언가 획기적인 타개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한반도의 현 상황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북한과 미국의 트라이앵글에는 ‘공개된’ 이해관계 외에 ‘내면적인’ 이해관계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각각의 국내 정치적 요인이 그렇고, 그중에는 무언가 비밀거래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주 방북하는 임동원 특사는 물론 일정한 성과를 갖고 돌아오겠지만, 그 보따리에 담길 내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