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9일 단행된 개각은 유감스럽게도 국민 대다수에게 실망만 안겨주었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개각 방침을 예고하면서까지 정치적 의미를 강조했던 것을 생각하면 허탈하다 못해 속았다는 느낌을 가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니 ‘혹시 했다가 역시’라며 처음부터 크게 기대할 게 없었다는 사람도 많다. ‘조각에 가까운 개각’이란 정치적 수사로 쇄신 이미지를 띄우고 부패와 부도덕의 늪에 빠진 정권에 대한 분노의 눈길을 돌려 정권재창출의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뻔한 의도를 눈치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초 국무총리를 포함해 조각 수준에 가까운 대폭적인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이명재 검찰총장 임명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인사탕평책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확산되던 터였다.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전면개각을 통해 국정원 등 주요 권력기관들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와 부패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국정을 쇄신하고, 참신하고 유능한 인사들을 기용해 월드컵과 대선 등 국가대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짓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1월29일의 개각은 그런 분위기와 기대를 철저히 외면하고 말았다. 외국 언론의 보도내용까지 소개하며 개각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반박하려 안간힘을 쓴 것도 딱한 노릇이지만, 이런저런 정치적 의혹과 비판을 받아 퇴진했던 측근들을 재기용하는 초강수를 둔 김대중 대통령의 현실인식과 정치적 집착을 생각하면 불안하다 못해 두려울 정도였다.
개각이 발표되자 국민들은 이른바 ‘DJP 회동’에서의 썰렁한 분위기를 목도했다. 이 두 노정치인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만남은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권 중진들을 중심으로 신 3당 합당론, 내각제 신당론 등을 내세운 정계개편이 추진되는 장면이 겹치면서 의문은 풀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치의 묘미를 느끼기는커녕 이렇게 농탕질을 쳐놓고도 ‘정권재창출’의 ‘재’자를 되뇌는 사람들이 풍기는 악취에 질리고 그 불굴의 욕심에 환멸을 느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을 명징하게 인식한다면 이제 또 다른 욕심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런 의혹을 불러일으킬 조치는 삼가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설사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공정한 선거관리라는 명분으로 정치인 출신 장관들을 국회로 돌려보낸 것과 ‘특보’라는 이름으로 비선정치의 핵심고리였던 인사들을 측근에 다시 불러들인 것은 모순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서야 나라가 선다’고 하고는 검찰정치의 유혹에 흠뻑 젖어들었다가 종당에 가서는 검찰 때문에 정부가 손해 본 부분이 없지 않다며 검찰개혁을 주문하고 나선 터에, 다시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개혁을 추진중이던 법무장관을 경질한 데 이르러서는 그 고질적인 불안의 폐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들이 나타나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기대가 헛된 것이었을까. 장관급 9명이 교체되었고 지역 안배를 고려한 흔적이 없지 않으나, 이로써 탕평의 새 진용이 갖춰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개각이 마지막 개각이기를 바라지만,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라도 교체할 수 있다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각은 우리 헌정 현실에서 대통령이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수단의 하나다. 정치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거나 침체상황에 빠졌을 때 개각은 이를 돌파하기 위한 주된 정치적 조치로 활용되어 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미 끝 간 데 없이 곪아 터지기 시작한 정권과 집권세력의 과오를 쇄신하고 그나마 집권 말기를 참신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가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이번 개각은 국가권력기관의 고위 구성원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연루된 각종 게이트와 부패의혹으로 사상 유례없이 오염된 정권의 도덕성 위기를 극복하려는 쇄신 의지와는 관련이 없다. 국정의 쇄신과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한 새 정부 구성을 바라는 민심은 정치를 아집과 무리수의 뒤범벅으로 만들어버린 이번 개각을 통해 철저히 외면되었다.
이번 개각이 김대중 정권의 마지막 개각이 될 만큼 믿음직한 마무리 투수들을 등용하는 상쾌한 반전을 기대한 사람들이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나마 신임 인사들이 공언한 것처럼 새 내각이 정치적 사심 없이 본연의 소임에 충실하기를 기대한 것이 순진한 것일까.
당초 국무총리를 포함해 조각 수준에 가까운 대폭적인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이명재 검찰총장 임명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인사탕평책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확산되던 터였다.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전면개각을 통해 국정원 등 주요 권력기관들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와 부패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국정을 쇄신하고, 참신하고 유능한 인사들을 기용해 월드컵과 대선 등 국가대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짓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1월29일의 개각은 그런 분위기와 기대를 철저히 외면하고 말았다. 외국 언론의 보도내용까지 소개하며 개각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반박하려 안간힘을 쓴 것도 딱한 노릇이지만, 이런저런 정치적 의혹과 비판을 받아 퇴진했던 측근들을 재기용하는 초강수를 둔 김대중 대통령의 현실인식과 정치적 집착을 생각하면 불안하다 못해 두려울 정도였다.
개각이 발표되자 국민들은 이른바 ‘DJP 회동’에서의 썰렁한 분위기를 목도했다. 이 두 노정치인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만남은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권 중진들을 중심으로 신 3당 합당론, 내각제 신당론 등을 내세운 정계개편이 추진되는 장면이 겹치면서 의문은 풀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치의 묘미를 느끼기는커녕 이렇게 농탕질을 쳐놓고도 ‘정권재창출’의 ‘재’자를 되뇌는 사람들이 풍기는 악취에 질리고 그 불굴의 욕심에 환멸을 느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을 명징하게 인식한다면 이제 또 다른 욕심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런 의혹을 불러일으킬 조치는 삼가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설사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공정한 선거관리라는 명분으로 정치인 출신 장관들을 국회로 돌려보낸 것과 ‘특보’라는 이름으로 비선정치의 핵심고리였던 인사들을 측근에 다시 불러들인 것은 모순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서야 나라가 선다’고 하고는 검찰정치의 유혹에 흠뻑 젖어들었다가 종당에 가서는 검찰 때문에 정부가 손해 본 부분이 없지 않다며 검찰개혁을 주문하고 나선 터에, 다시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개혁을 추진중이던 법무장관을 경질한 데 이르러서는 그 고질적인 불안의 폐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들이 나타나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기대가 헛된 것이었을까. 장관급 9명이 교체되었고 지역 안배를 고려한 흔적이 없지 않으나, 이로써 탕평의 새 진용이 갖춰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개각이 마지막 개각이기를 바라지만,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라도 교체할 수 있다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각은 우리 헌정 현실에서 대통령이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수단의 하나다. 정치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거나 침체상황에 빠졌을 때 개각은 이를 돌파하기 위한 주된 정치적 조치로 활용되어 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미 끝 간 데 없이 곪아 터지기 시작한 정권과 집권세력의 과오를 쇄신하고 그나마 집권 말기를 참신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가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이번 개각은 국가권력기관의 고위 구성원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연루된 각종 게이트와 부패의혹으로 사상 유례없이 오염된 정권의 도덕성 위기를 극복하려는 쇄신 의지와는 관련이 없다. 국정의 쇄신과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한 새 정부 구성을 바라는 민심은 정치를 아집과 무리수의 뒤범벅으로 만들어버린 이번 개각을 통해 철저히 외면되었다.
이번 개각이 김대중 정권의 마지막 개각이 될 만큼 믿음직한 마무리 투수들을 등용하는 상쾌한 반전을 기대한 사람들이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나마 신임 인사들이 공언한 것처럼 새 내각이 정치적 사심 없이 본연의 소임에 충실하기를 기대한 것이 순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