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사정권 시절, 우리는 ‘북한군 휴전선 일대 대거 남진(南進) 배치’라는 소식을 수시로 접해야만 했다. 근거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북한이 그런 식으로 ‘남진’을 계속했다면 어느 학자가 지적했듯 서울은 벌써 저들의 손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차원은 다르지만, 우리는 정치인들의 속보이는 공약(空約)을 일상적으로 듣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정말 피곤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며칠 전 끝난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은 글자 그대로 참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여당 대변인은 성명을 내 “국민 여러분이 보여준 뜻을 겸허히 수용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는 야당도 “우리 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현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채찍으로 알고 열과 성을 다해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니, 기분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투의 자기성찰을 시도 때도 없이 듣다 보니,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말대로라면 우리 정치는 벌써 ‘꿈나라’ 수준으로 올라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국민은 물론 당사자들도 믿지 않는 그런 성명을 또다시 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악이 비록 성(盛)할지라도 진리 더욱 강하다’는 성경 말씀이 반향 없는 메아리가 되고 마는 곳, 이것이 한국 정치판이다.
그렇기는 해도, 아니 또 속는 셈치더라도, 이번만은 그런 다짐에 귀기울이고 싶다. 축제 분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전망이 한결 높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회에 야당 대변인이 낸 ‘대(對)국민 약속’을 담보로 해 몇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회창 총재 (또는 대통령 후보)는 숱한 정치적 호재(好材)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뼈아픈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흔히들 이총재에게 대중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꼬집는다. 옳은 말이다. 카리스마야 구시대의 유물이니 넘겨볼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이미지는 정치인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본인도 이 점에 대해 무척 고민을 많이 하면서 나름대로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신통한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따로 있는데 마음먹는다고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로서는 억지 미소를 지어가며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하기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되살리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몇 년 전, 그는 ‘대쪽‘이라는 신선한 상품을 들고 우리 앞에 혜성같이 나타났다. 그때의 이회창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는 그렇고 그런 구닥다리 정치인들에 둘러싸인 채 분명한 차별성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실상은 모르지만, 각종 스캔들과 정치 공작의 중심에 그가 거명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3김과 무엇이 다르냐는 볼멘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거기다가 가당찮은 엘리트주의자 냄새는 여전하다. 그러니 지지율이 올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딱한 것은 이회창씨가, 그리고 한나라당이 개혁이라고 하는 시대적 화두와 완전히 담 쌓을 요량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을 의식한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현재를 다지며 미래로 나가는 진취적인 자세다. 시대착오적인 수구가 아닌 것이다. 대북 저자세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햇볕정책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박정희 향수에 의탁하려 한단 말인가. 보수를 하더라도 개혁과 함께 나가야 한다. 냄새 나는 보수를 부둥켜안으려 하는 한 ‘이회창 대세론’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잃어버린 ‘대쪽’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장모가 사위 맞듯’ 개혁을 환대해야 한다. 이것이 유력한 차기 후보 이회창 총재에게 주어진 1차적 과제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세상이 달라지리라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많은 국민이 야당의 약속을 무섭게 주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차원은 다르지만, 우리는 정치인들의 속보이는 공약(空約)을 일상적으로 듣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정말 피곤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며칠 전 끝난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은 글자 그대로 참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여당 대변인은 성명을 내 “국민 여러분이 보여준 뜻을 겸허히 수용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는 야당도 “우리 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현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채찍으로 알고 열과 성을 다해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니, 기분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투의 자기성찰을 시도 때도 없이 듣다 보니,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말대로라면 우리 정치는 벌써 ‘꿈나라’ 수준으로 올라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국민은 물론 당사자들도 믿지 않는 그런 성명을 또다시 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악이 비록 성(盛)할지라도 진리 더욱 강하다’는 성경 말씀이 반향 없는 메아리가 되고 마는 곳, 이것이 한국 정치판이다.
그렇기는 해도, 아니 또 속는 셈치더라도, 이번만은 그런 다짐에 귀기울이고 싶다. 축제 분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전망이 한결 높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회에 야당 대변인이 낸 ‘대(對)국민 약속’을 담보로 해 몇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회창 총재 (또는 대통령 후보)는 숱한 정치적 호재(好材)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뼈아픈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흔히들 이총재에게 대중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꼬집는다. 옳은 말이다. 카리스마야 구시대의 유물이니 넘겨볼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이미지는 정치인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본인도 이 점에 대해 무척 고민을 많이 하면서 나름대로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신통한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따로 있는데 마음먹는다고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로서는 억지 미소를 지어가며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하기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되살리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몇 년 전, 그는 ‘대쪽‘이라는 신선한 상품을 들고 우리 앞에 혜성같이 나타났다. 그때의 이회창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는 그렇고 그런 구닥다리 정치인들에 둘러싸인 채 분명한 차별성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실상은 모르지만, 각종 스캔들과 정치 공작의 중심에 그가 거명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3김과 무엇이 다르냐는 볼멘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거기다가 가당찮은 엘리트주의자 냄새는 여전하다. 그러니 지지율이 올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딱한 것은 이회창씨가, 그리고 한나라당이 개혁이라고 하는 시대적 화두와 완전히 담 쌓을 요량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을 의식한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현재를 다지며 미래로 나가는 진취적인 자세다. 시대착오적인 수구가 아닌 것이다. 대북 저자세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햇볕정책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박정희 향수에 의탁하려 한단 말인가. 보수를 하더라도 개혁과 함께 나가야 한다. 냄새 나는 보수를 부둥켜안으려 하는 한 ‘이회창 대세론’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잃어버린 ‘대쪽’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장모가 사위 맞듯’ 개혁을 환대해야 한다. 이것이 유력한 차기 후보 이회창 총재에게 주어진 1차적 과제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세상이 달라지리라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많은 국민이 야당의 약속을 무섭게 주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