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을 전후해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10년 넘게 초강대국으로서의 패권적 지위를 누려왔다. 베트남전에서 겪은 상처도 아물고, 이란의 독재 왕조를 지원하다 젊은 이란 학생들에게 당한 수모도 잊혀졌다.
미국은 지구상 어느 나라도 감히 엄두를 못 내는 미사일 방어망(MD)을 추진하는 강대국이다. 한마디로 힘에 바탕한 국가이익을 관철하는 데 이력이 붙은 나라다. 국제관계의 기본인 평등의 개념보다는 대국으로서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나라이기도 하다.
주변국들을 보는 미국의 잣대는 한마디로 이중잣대다. 미국에 잘 보이면 ‘자유국가’요, 밉보이면 ‘깡패국가’다.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겐 아예 정통성조차 인정해 주지 않았다. 미국의 패권에 감히 도전한 괘씸죄 때문에 아프간 국민들은 지금 오폭(誤爆) 공포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부시 행정부가 치르는 테러와의 전쟁은 탄저균과 아프간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진행중이다. 어느 것도 전과가 신통치 않다. 탄저균 전선은 지리멸렬한 상태다. 범인만 해도 처음엔 빈 라덴을 의심하다가 다시 이라크, 이제는 ‘미국산 탄저균’으로 오락가락한다. 이 과정에서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은 불신만 샀다. 아프간 전선이 겨냥하는 빈 라덴은 끄떡없고 탈레반 정권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기대를 건 북부동맹 반군의 전과도 신통치 않다. 이런 판에 오폭으로 애꿎은 민간인 사상자만 내 이슬람권의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세계 여론조차 험상궂게 돌아간다. 오폭이 일어날 때마다 펜타곤이 머리만 긁적이는 모양새가 됐다.
아프간 공습 초기만 해도 부시 정권은 여유만만했다. 공습 닷새 뒤인 10월12일 부시 대통령은 “금요일은 이슬람 안식일인 만큼 군사작전을 중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빈 라덴의 직할 조직인 알 카에다 훈련기지와 탈레반 정권의 군사시설을 맹폭격해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상당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자평한 부시 행정부다. 그런데 아프간 공습이 3주째로 접어들면서 사태가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부시 정권은 여유를 잃어가는 모습이다. 그런 징후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읽을 수 있다. 걸핏하면 들려오는 오폭 소식과, 비난 여론을 무릅쓴 집속탄(cluster bomb) 사용, 그리고 11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라마단(이슬람 금식월)에도 군사작전을 전개할 움직임이 그것이다.
우선 미군 오폭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펜타곤은 코소보전쟁 당시 벨그라드의 중국대사관 오폭으로 혼쭐난 적이 있다. 유고 정부 건물로 잘못 알고 폭격했을 뿐, 제대로 맞추긴 했다. 그러나 아프간 공습은 다르다. 공격목표가 뻔하다. 번듯한 지상건물이 몇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계 최강의 해·공군력을 가진 미국이 20년 전란 풍파에 제대로 된 건물 하나 변변히 없는 아프간에서 오폭으로 민간인 주거 지역을 폭격해 사상자를 양산하고 있다.
구호물품을 쌓아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창고는 1주일 새 두 번이나 폭격을 당했다. 공습으로 불탄 창고 안에 쌓인 수천톤에 이르는 식량과 임시 천막, 담요, 비누 등 각종 구호물품이 잿더미가 됐다. 미국이 자랑하는 정교한 공습이 어떻게 다른 건물도 아닌, 지붕에 적십자 표시가 뚜렷한 건물에 오폭을 되풀이할 수 있는 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불안심리를 확산시키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1864년 미국 링컨 대통령과 휘하 장군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테러전술을 도입했다. 북군(北軍)은 점령하는 남부 마을마다 농장이며 주택, 공장들을 불태웠다. 남북전쟁을 빨리 끝장내기 위한, 내키지 않는 테러였다. 남부 사람들 사이에 공포가 퍼지면서 링컨이 바라던 대로 빨리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시가 링컨을 흉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집속탄 폭격으로 민간인이 대량 희생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B-52 폭격기가 떨어뜨리는 집속탄은 공습 목표지점의 하늘에서 폭발해 그 속에 든 200개의 작은 폭탄이 터져 나와 축구장보다 넓은 지역에 피해를 주는 폭탄이다. 폭발하지 않을 경우 그대로 지뢰가 돼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이 죽고 다치기 일쑤다. 불발 비율이 5개 가운데 하나꼴이다. 당연히 집속탄 투하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다. 불발된 집속탄 때문에 아프간 주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은 물론 농사를 짓기도 힘들게 되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이 지역 식량사정을 더 어렵게 할 것이 뻔하다.
필자는 지난 99년 6월과 12월 두 차례 코소보 현지를 취재했을 때 불발된 집속탄에 다쳐 병원에 입원한 현지인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집속탄은 60년대 베트남전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포클랜드전쟁(82년), 걸프전(91년), 코소보전쟁(99년) 때도 사용됐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26년이 흐른 지금도 라오스에는 50만톤 가량의 불발 집속탄이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 코소보는 3만발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은 “집속탄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는 한 계속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엔 산하 지뢰제거계획(MAP)은 불발된 집속탄을 제거해 민간인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미국에 집속탄 투하 지점을 알려주길 바란다고 점잖게 요청했다.
아프간전에서 부시 정권의 초조함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라마단 공세설’이다. 개전 초기 이슬람 안식일(금요일)을 지키겠다던 여유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이슬람 신자들에게 기독교의 부활절 이상으로 소중한 라마단에 공세를 펴겠다는 태도다. 11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계속되는 라마단 기간에 아프간에서는 혹한이 시작된다. 따라서 공중 및 지상작전도 어렵게 된다. 라마단을 존중하려면 그 전에 탈레반을 무너뜨리든지, 아니면 내년 봄까지 손을 놓아야 한다. 아프간전 장기화는 군비는 물론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온 게 라마단 작전설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라마단은 이슬람 교도들의 활동을 제약하지 않았다”면서 군사작전을 계속할 것임을 내비쳤다. 아랍의 역사를 돌아보면, 라마단 때도 싸운 적이 있다는 궁색한 얘기다. 라마단 공격은 이슬람 국가들의 반미정서를 더 자극할 뿐이라는 충고에 귀기울일 만한 여유가 지금 펜타곤에는 없어 보인다.
9·11 사태가 벌어진 지 40일이 넘도록 빈 라덴이 테러에 결정적으로 관련됐다는 이렇다 할 증거를 찾지 못한 채 허둥대는 미 사법당국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9·11 사태 이후 미 수사당국은 무려 1000여명을 ‘테러 용의자’로 몰아 잡아들였다. 그러나 지금껏 이들에게서 “오사마 빈 라덴의 지시를 받아 이러저러한 경로로 테러를 계획했다”는 소리를 듣는 데 실패했다. 미국 수사기관은 고문이 아닌 과학수사로 범죄를 입증하는 게 정석이고, 그걸 자랑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 그런 자부심도 팽개칠 채비다. 구금된 테러 용의자들을 고문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새어나온다.
부시의 무리한 아프간전쟁 수행방식으로 세계 여론이 나빠지는 것과 때를 맞춰 미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9·11 사건 초기부터 CNN, ABC 등 미 주요 언론들이 가세해 거세게 휘몰아친 미국 애국주의 바람의 약효가 슬슬 떨어지는 양상이다. 그 반성적 움직임은 미국 지식인 사이에서 꿈틀대고 있다.
미국 당대의 지식인이라 할 수잔 손택(Susan Sontag)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녀는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9·11 테러참사 뒤 부시 쪽 캠페인이 대중을 어린이 취급(a campaign to infantilize the public)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손택은 이번 사태가 ‘문명’이나 ‘자유’ 또는 ‘자유세계’에 대한 ‘비겁한’ 공격이 아니라, 특정 동맹국(이스라엘)과 관련한 특별 행동(친이스라엘 정책) 때문에 자칭 초강대국(self-proclaimed superpower)인 미국이 공격당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9·11 테러참사에 대해 함께 슬퍼하지만, 그렇다고 (부시 정권과) 함께 미련해지지는 말자는 당부다. 부시가 아프간전에서 무리수를 둘수록 자칫 베트남전 당시 거세게 불어닥친 반전 바람이 애국주의 바람의 역풍으로 몰아칠 기세다.
미국은 지구상 어느 나라도 감히 엄두를 못 내는 미사일 방어망(MD)을 추진하는 강대국이다. 한마디로 힘에 바탕한 국가이익을 관철하는 데 이력이 붙은 나라다. 국제관계의 기본인 평등의 개념보다는 대국으로서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나라이기도 하다.
주변국들을 보는 미국의 잣대는 한마디로 이중잣대다. 미국에 잘 보이면 ‘자유국가’요, 밉보이면 ‘깡패국가’다.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겐 아예 정통성조차 인정해 주지 않았다. 미국의 패권에 감히 도전한 괘씸죄 때문에 아프간 국민들은 지금 오폭(誤爆) 공포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부시 행정부가 치르는 테러와의 전쟁은 탄저균과 아프간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진행중이다. 어느 것도 전과가 신통치 않다. 탄저균 전선은 지리멸렬한 상태다. 범인만 해도 처음엔 빈 라덴을 의심하다가 다시 이라크, 이제는 ‘미국산 탄저균’으로 오락가락한다. 이 과정에서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은 불신만 샀다. 아프간 전선이 겨냥하는 빈 라덴은 끄떡없고 탈레반 정권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기대를 건 북부동맹 반군의 전과도 신통치 않다. 이런 판에 오폭으로 애꿎은 민간인 사상자만 내 이슬람권의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세계 여론조차 험상궂게 돌아간다. 오폭이 일어날 때마다 펜타곤이 머리만 긁적이는 모양새가 됐다.
아프간 공습 초기만 해도 부시 정권은 여유만만했다. 공습 닷새 뒤인 10월12일 부시 대통령은 “금요일은 이슬람 안식일인 만큼 군사작전을 중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빈 라덴의 직할 조직인 알 카에다 훈련기지와 탈레반 정권의 군사시설을 맹폭격해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상당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자평한 부시 행정부다. 그런데 아프간 공습이 3주째로 접어들면서 사태가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부시 정권은 여유를 잃어가는 모습이다. 그런 징후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읽을 수 있다. 걸핏하면 들려오는 오폭 소식과, 비난 여론을 무릅쓴 집속탄(cluster bomb) 사용, 그리고 11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라마단(이슬람 금식월)에도 군사작전을 전개할 움직임이 그것이다.
우선 미군 오폭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펜타곤은 코소보전쟁 당시 벨그라드의 중국대사관 오폭으로 혼쭐난 적이 있다. 유고 정부 건물로 잘못 알고 폭격했을 뿐, 제대로 맞추긴 했다. 그러나 아프간 공습은 다르다. 공격목표가 뻔하다. 번듯한 지상건물이 몇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계 최강의 해·공군력을 가진 미국이 20년 전란 풍파에 제대로 된 건물 하나 변변히 없는 아프간에서 오폭으로 민간인 주거 지역을 폭격해 사상자를 양산하고 있다.
구호물품을 쌓아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창고는 1주일 새 두 번이나 폭격을 당했다. 공습으로 불탄 창고 안에 쌓인 수천톤에 이르는 식량과 임시 천막, 담요, 비누 등 각종 구호물품이 잿더미가 됐다. 미국이 자랑하는 정교한 공습이 어떻게 다른 건물도 아닌, 지붕에 적십자 표시가 뚜렷한 건물에 오폭을 되풀이할 수 있는 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불안심리를 확산시키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1864년 미국 링컨 대통령과 휘하 장군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테러전술을 도입했다. 북군(北軍)은 점령하는 남부 마을마다 농장이며 주택, 공장들을 불태웠다. 남북전쟁을 빨리 끝장내기 위한, 내키지 않는 테러였다. 남부 사람들 사이에 공포가 퍼지면서 링컨이 바라던 대로 빨리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시가 링컨을 흉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집속탄 폭격으로 민간인이 대량 희생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B-52 폭격기가 떨어뜨리는 집속탄은 공습 목표지점의 하늘에서 폭발해 그 속에 든 200개의 작은 폭탄이 터져 나와 축구장보다 넓은 지역에 피해를 주는 폭탄이다. 폭발하지 않을 경우 그대로 지뢰가 돼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이 죽고 다치기 일쑤다. 불발 비율이 5개 가운데 하나꼴이다. 당연히 집속탄 투하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다. 불발된 집속탄 때문에 아프간 주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은 물론 농사를 짓기도 힘들게 되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이 지역 식량사정을 더 어렵게 할 것이 뻔하다.
필자는 지난 99년 6월과 12월 두 차례 코소보 현지를 취재했을 때 불발된 집속탄에 다쳐 병원에 입원한 현지인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집속탄은 60년대 베트남전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포클랜드전쟁(82년), 걸프전(91년), 코소보전쟁(99년) 때도 사용됐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26년이 흐른 지금도 라오스에는 50만톤 가량의 불발 집속탄이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 코소보는 3만발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은 “집속탄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는 한 계속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엔 산하 지뢰제거계획(MAP)은 불발된 집속탄을 제거해 민간인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미국에 집속탄 투하 지점을 알려주길 바란다고 점잖게 요청했다.
아프간전에서 부시 정권의 초조함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라마단 공세설’이다. 개전 초기 이슬람 안식일(금요일)을 지키겠다던 여유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이슬람 신자들에게 기독교의 부활절 이상으로 소중한 라마단에 공세를 펴겠다는 태도다. 11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계속되는 라마단 기간에 아프간에서는 혹한이 시작된다. 따라서 공중 및 지상작전도 어렵게 된다. 라마단을 존중하려면 그 전에 탈레반을 무너뜨리든지, 아니면 내년 봄까지 손을 놓아야 한다. 아프간전 장기화는 군비는 물론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온 게 라마단 작전설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라마단은 이슬람 교도들의 활동을 제약하지 않았다”면서 군사작전을 계속할 것임을 내비쳤다. 아랍의 역사를 돌아보면, 라마단 때도 싸운 적이 있다는 궁색한 얘기다. 라마단 공격은 이슬람 국가들의 반미정서를 더 자극할 뿐이라는 충고에 귀기울일 만한 여유가 지금 펜타곤에는 없어 보인다.
9·11 사태가 벌어진 지 40일이 넘도록 빈 라덴이 테러에 결정적으로 관련됐다는 이렇다 할 증거를 찾지 못한 채 허둥대는 미 사법당국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9·11 사태 이후 미 수사당국은 무려 1000여명을 ‘테러 용의자’로 몰아 잡아들였다. 그러나 지금껏 이들에게서 “오사마 빈 라덴의 지시를 받아 이러저러한 경로로 테러를 계획했다”는 소리를 듣는 데 실패했다. 미국 수사기관은 고문이 아닌 과학수사로 범죄를 입증하는 게 정석이고, 그걸 자랑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 그런 자부심도 팽개칠 채비다. 구금된 테러 용의자들을 고문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새어나온다.
부시의 무리한 아프간전쟁 수행방식으로 세계 여론이 나빠지는 것과 때를 맞춰 미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9·11 사건 초기부터 CNN, ABC 등 미 주요 언론들이 가세해 거세게 휘몰아친 미국 애국주의 바람의 약효가 슬슬 떨어지는 양상이다. 그 반성적 움직임은 미국 지식인 사이에서 꿈틀대고 있다.
미국 당대의 지식인이라 할 수잔 손택(Susan Sontag)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녀는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9·11 테러참사 뒤 부시 쪽 캠페인이 대중을 어린이 취급(a campaign to infantilize the public)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손택은 이번 사태가 ‘문명’이나 ‘자유’ 또는 ‘자유세계’에 대한 ‘비겁한’ 공격이 아니라, 특정 동맹국(이스라엘)과 관련한 특별 행동(친이스라엘 정책) 때문에 자칭 초강대국(self-proclaimed superpower)인 미국이 공격당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9·11 테러참사에 대해 함께 슬퍼하지만, 그렇다고 (부시 정권과) 함께 미련해지지는 말자는 당부다. 부시가 아프간전에서 무리수를 둘수록 자칫 베트남전 당시 거세게 불어닥친 반전 바람이 애국주의 바람의 역풍으로 몰아칠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