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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생체인식산업이 본격화한 시기는 지난 97~99년 전후. 지문인식의 경우 10년, 얼굴인식 등 타 분야는 불과 4~5년이나 짧게는 1~2년 전부터 기술연구를 시작했는데, 이 생체측정학(바이오메트릭스) 연구인력이 최근 몇 년 사이 벤처 붐을 타고 해당기업을 창업하면서부터다. 때문에 십수년 전부터 생체인식 연구에 발빠르게 매진해 온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할 때 그 연륜은 매우 일천하다.
업계와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가 추산하는 국내 생체인식업체 수는 40개 안팎(전 세계 200여 개). 하지만 ‘온몸이 패스워드’인 시대의 도래가 곧 ‘온몸이 돈’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방증이라도 하듯 국내 업체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활동과 실적이 가장 돋보이는 분야는 생체인식기술의 ‘대표주자’로 국내 생체인식시장의 75%를 리드하는 지문인식. 지난 98년 설립해 이 분야 선도업체로 자리매김한 니트젠(대표 안준영ㆍwww.nitgen.com)은 지문인식 관련 하드웨어 설계 및 알고리즘 등 원천기술(생체 특징을 잡아내 이를 데이터화한 뒤 개인식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기술)을 보유한 업체. PC 및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 기존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대신 이를 지문으로 대체한 세계 최초의 지문인식 마우스인 아이디(EyeD)옵티마우스를 비롯, 다양한 관련제품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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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젠과 함께 국내 지문인식 분야의 ‘쌍두마차’인 휴노테크놀로지(대표 김상균ㆍwww.hunno.com)는 지문인식 모듈은 물론 PC보안용 지문인식기, 지문인식 마우스, 지문인식 출입통제 시스템 및 도어록 등 다양한 지문인식 제품군을 일괄 제공 가능한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이 업체의 PC보안용 지문인식기와 광마우스인 ‘매직시큐어’ 시리즈는 지난 7월 육ㆍ해ㆍ공군 정보화교육장과 공군 인터넷교육장에 1300여 대가 납품됐다. 2001년도 한국밀레니엄상품(KMP)에 선정된 지문인식 도어록 ‘매직패스 6500’도 국내 대형건설업체들과 납품계약을 맺었다. 또 지난 5월엔 한국통신과 조인트 벤처인 ‘이핑거사인’을 설립, 지문인식을 통한 전자상거래 사용자 인증 및 전자결제서비스 시스템을 개발해 내년 초 시범서비스를 개시할 예정. 박재능 홍보담당과장은 “올해 수출목표를 500만 달러로 잡았으나 최근 외국기업의 제품 구입문의가 잇따라 700만 달러 정도로 상향조정할 생각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두 업체 외에도 바이오비전, 씨크롭, 패스21, 보고테크, 시큐아이티 등 상당수 업체가 지문인식 분야에 뛰어들었다. 한 지문인식업체 관계자는 “올 들어 국내 지문인식업체의 창업이 부쩍 늘었다”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생체인식기술 분야의 점유율은 지문인식이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홍채인식 분야에선 세넥스테크놀로지(대표 남궁종ㆍwww.senextech.com)가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원천기술을 확보한 이 업체는 지난 8월 홍채인식기술을 이용, 별도의 서명절차 없이 사용자의 홍채 패턴만으로 신분을 확인해 신용카드 조회 및 결제가 가능하도록 한 신용카드단말기 ‘트루아이’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세넥스테크놀로지는 또 지난 9월 영국 보안업체인 비전시큐리티사에 자사의 홍채인식기술과 제품을 1350만 달러에 공급키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성과도 거뒀다. 국내의 다른 홍채인식업체로는 아이리텍과 알파엔지니어링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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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보이시안닷컴, 보이스웨어 등의 업체가 음성인식분야에, 패스싸인이 서명인식 분야 기술개발 및 제품생산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업체들의 생체인식기술 및 관련제품 개발은 활기를 띤다. 문제는 국제경쟁력의 기반이랄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이 지나치게 미흡하다는 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용화 생체인식기술 연구팀장은 “선진국 업체의 경우 이미 지난 30년 간 500여 개의 생체인식 관련 원천기술을 축적해 국제특허로 등록했지만, 한국 업체가 보유한 국제특허 수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원천기술보다 응용기술 특허가 압도적으로 많다. 더욱이 국내 일부 업체들은 독자 기술은 전혀 없이 외국 기술에 의존해 제품을 ‘조립’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업체들의 응용기술은 아직 선진국에 뒤지지 않지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원천기술의 경우 서둘러 독자 개발하지 않으면 기술차가 더욱 커져 기술력과 시장점유율 경쟁에서 뒤처지고, 이는 곧 마케팅 경쟁력의 저하로까지 이어질 것이란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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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체인식산업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생체인식 관련제품이 비교적 새로운 ‘실험적’ 상품인데다 마케팅 범위가 제한돼 있는 만큼 시장 선점을 둘러싼 업계의 ‘제 살 깎기’식 과당경쟁으로 낭비 요소가 많다는 점. 업계는 이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8월 15개 업체 관계자들이 모여 ‘인지’(人知)라는 자체 모임을 결성했다. ‘인지’의 초대 회장인 세넥스테크놀로지 김영란 홍보과장은 “공동마케팅을 통한 시장규모 확대가 결성 목적”이라며 “현재 세 번 모임을 가졌고, 내년부터 전문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 밝혔다.
‘종생불변 만인부동’(終生不變 萬人不同). 생체인식산업의 성패는 ‘누구도 훔칠 수 없는’ 이런 인체 특성에 근거해 얼마나 관련기술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충실히 확보하는지에 달려 있다. 미국의 IT전문 조사기관인 가트너그룹은 생체인증 분야가 차세대 유망산업으로, 2002년까지 포천지 선정 1000대 기업의 15%가 이 분야의 기술을 활용할 것이란 전망을 지난 98년 일찌감치 내놓은 바 있다. 21세기 핵심산업으로 급성장한 생체인식산업의 선두자리를 타이틀로 내건 세계 각국의 ‘국경 없는 전면전’은 벌써 막을 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