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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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술의 새 중심 ‘미디어 아트’

49회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 전시장 곳곳 디지털세대 ‘실험정신’ 돋보여

  • < 베니스=윤동희/ 월간미술 기자 > ceohee02@hanmail.net

    입력2005-01-04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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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미술의 새 중심 ‘미디어 아트’
    116개의 섬, 100여 개의 운하, 400여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지난 6월10일(한국시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개막하였다. 본 전시와 국가관 전시로 나뉘어 아르세날레와 카스텔로 공원 일대에서 오는 11월4일까지 열리는 이 행사에는 80여 개국 120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 세계 관객을 유혹하고 있다. 일생에 반드시 가보고 싶은 이 아름다운 도시는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다양한 이념·사상·문화를 담아내는 ‘미술올림픽’으로써 그 명성을 2년마다 확인한다.

    개막일 발표한 시상에서는 황금사자상 국가관상에 그레고르 슈나이더의 독일관, 황금사자상 작가상에 미국의 리처드 세라와 사이 톰블리, 특별상에 캐나다의 재닛 카디프와 조지 밀러, 이탈리아의 마리사 메르츠, 프랑스의 피에르 위그 등을 선정하였다.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자처하는 해럴드 제만(67)이 총감독을 맡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특징은 20세기 미술을 회고하고 21세기 미술의 비전을 동시에 제시하고자 한 점. 본 전시의 주제인 ‘인류의 지평’(Plateau of Humankind)이 그 근거를 뒷받침한다.

    덕분에 이번 비엔날레를 찾은 관객은 세라와 톰블리를 비롯해 게하르트 리히터와 빌 비올라 등 20세기를 풍미하던 대가의 부활을 목격할 수 있다. 비록 미술과 무관하더라도 지난 5월20일 막을 내린 제54회 칸 영화제가 장 뤽 고다르, 이마무라 쇼헤이 등 일흔 살을 훌쩍 넘긴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했듯이,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역시 황금사자상 작가상을 헌정하며 20세기 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은 그들을 불러냈다. 아울러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동구 등 제3세계 지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졌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과‘다름’의 차별성으로 인해 그 나름의 역할을 견지해 온 제3세계 출신 작가들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에서 수학하고 활동한 작가라는 점이 본래의 의도를 퇴색시킨 듯하다.

    21세기 미술의 새 중심 ‘미디어 아트’
    미술을 넘어 예술의 각 장르를 오가고, 서로 융합하는 탈장르화와 퓨전 현상도 눈에 띈다. 이미 우리에게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잘 알려진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샹탈 애커만 등 5명의 영화감독이 참여한 것과, 할리우드 영화 예고편을 보는 듯한 COM & COM의 ‘C-File’, 일본의 만화 캐릭터 ‘안리’가 등장하는 프랑스관의 피에르 위그,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작품을 선보여 큰 인기를 모은 크리스 커닝햄이 대표적 경우다.



    본 전시 국제전이 열리는 아르세날레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영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론 뮤엑의 대형조각 설치작품인 ‘소년’이 앉은 채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최근 세계 각 국에서 발행하는 저널에 베니스 비엔날레를 소개할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본 전시장 한가운데 쓰레기 봉투 모양의 조각작품을 설치한 개빈 터크와 더불어 20세기 말 세계 미술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영국 현대미술의 위치를 새삼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관 곳곳에 가득한 ‘미디어 아트’의 득세라 할 수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작품 앞에 사람을 불러모으는 빌 비올라, 게리 힐 등의 거장에서부터 작품·관람객·전시 공간 사이의 교류를 꾀하는 인터랙티브와 실험정신이 돋보인 디지털 세대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미디어 아트의 행렬은 당분간 기세가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예년보다 호평을 받은 국가관 전시에도 동일하게 나타나, 이제 미디어 아트가 ‘주목할 만한 시선’을 넘어 현대미술의 중심에 섰음을 웅변해 주었다.

    특히 소형 영화관을 연상시킨 전시관에 17명의 관객만 들어가게 한 캐나다관의 조지 밀러와 재닛 카디프의 작품은 헤드폰으로 영화 속 소리와 관객의 소리를 함께 듣게 해 관객들에게서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외에도 신체미술로 알려진 미국의 로버트 고버, 에스컬레이터에 계속 정지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는 맹인을 통해 사회를 풍자한 영국의 마크 웰린저, 미국 중심의 세계화의 상징이 되어 버린 맥도날드의 ‘M’을 소재로 삼은 일본의 나카무라 마사토, 집을 짓는 프로젝트로 큰 인기를 모은 독일의 그레고르 슈나이더도 국가관을 빛낸 작가들이다. 그러나 테크놀러지에 의존한 미디어 아트의 독점현상을 경계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음을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지난 6월7일 개관식을 가진 한국관 역시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다. 뉴욕에서 활동중인 서도호는 혈액형과 주민등록번호 등이 적힌 수만 개의 금속 배지를 물고기 비늘처럼 빽빽이 붙인 ‘Some/One’을, 작년 ‘코리아메리카코리아전’에서 서양을 상징하는 인형 얼굴과 동양을 상징하는 부처상으로 동서양의 이질감을 표현한 마이클 주는 참나무 기둥을 절단한 후 다시 금속봉으로 이은 ‘나무’와 ‘가족’ 등의 조각 작품을 출품해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탈리아관에 설치한 서도호의 ‘공인들’(Publec Figure)과 ‘우리는 누구인가?’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와 집단의 거대한 힘을 표현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21세기 미술의 새 중심 ‘미디어 아트’
    그러나 그동안 전수천(1995년), 강익중(1997년), 이불(1999년) 등 3회 연속 특별상을 수상한 우리 나라는 이번 수상에서 제외되어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이를 두고 지난 48회(1999년) 때 중국 작가들에게 상을 몰아준 데 대한 부담감이 결국 아시아 작가들을 시상에서 배제한 게 아니냐는 얘기와, 다른 국가보다 유독 수상을 중시하는 국내 미술계와 언론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함께 제기되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시 내용과 운영 등에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과감하게 제기하기 어려울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권위 있는 행사다. 또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가·큐레이터·비평가·저널리스트 등이 대륙과 바다를 건너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도 그 권위와 영향력을 배가시킨다. 그동안 고작 3회를 지나 4회째를 준비하는 광주 비엔날레를 향해 국내 미술계와 언론에서 마음껏(?) 비판해 온 사례를 생각하면 그 무게가 가늠된다. 그러나 ‘중국 작가의 대공습’과 ‘여성작가의 도약’으로 불리던 지난 48회 비엔날레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선 특별한 이슈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 같다. “수준 높은 작품과 세련된 전시 공학에도 불구하고 해럴드 제만이 자신이 선호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음으로써 다양성이 사라져 버렸다”는 후 한루(2000 상하이 비엔날레 큐레이터)의 지적도 새겨들을 만하다.

    숱한 논란 속에서도 해럴드 제만이 기획한 전시가 그다지 의미를 부여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20세기 미술에 대한 회고와 21세기 새로운 미술의 비전을 동시에 보여주고자”한 이번 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보다 시간이 흘러야 가능할 것 같다. 나아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한 그의 메시지가 20세기를 정리하고 21세기로 나아가자는 건지, 아니면 전시장을 가득 메운 미디어 아트로 우리의 눈을 속이고 리히터와 톰블리의 작품을 통해 다음 세기는 곧‘평면(아날로그)으로의 회귀’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전하려는 건지도 다소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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