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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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집어삼킨 건설업계 승부사

신훈 금호건설 부회장, 위기의 회사 맡아 우량회사로 키우고 M&A로 더 큰 도약 꿈꿔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6-07-06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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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건설 집어삼킨 건설업계 승부사

    <b>신훈 금호건설 부회장 이력</b><br>。1945년생<br>。1971년 서울대 수학교육과 졸업<br>。1971~82년 대한항공 근무<br>。1982~85년 삼환기업 전산실장<br>。1985~88년 한국신용평가㈜ 이사<br>。1988~99년 아시아나항공㈜ 시스템 담당 상무, 부사장<br>。1999~2001년 금호엔지니어링 대표이사<br>。2002~현재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대표이사 사장, 부회장<br>

    대우건설 매각 본입찰 마감날인 6월9일 아침,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과 신훈 금호산업 건설사업 부문(이하 금호건설) 부회장 등 그룹 수뇌부가 구수회의를 열었다. 대우건설 인수 가격을 최종 결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금호그룹 컨소시엄을 비롯해 두산, 프라임, 유진, 삼환 등 5개 컨소시엄이 최종 입찰에 참여하면서 인수 가격은 5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신훈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72.1%를 모두 인수하는 조건으로 6조원 이상을 제시했다. 신 부회장은 “계시를 받은 것처럼 떠오른 금액이었다”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도 이에 동의했다. 일각에서 ‘금호 특혜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가격에서 다른 컨소시엄을 확실히 따돌려야 한다는 게 박 회장 등 그룹 수뇌부의 생각이었다.

    인수가 2000억원 차이로 경쟁사 따돌려

    신 부회장의 ‘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6월22일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이 인수 가격으로 판가름 났기 때문. 금호컨소시엄의 인수 희망 금액이 5개 컨소시엄 가운데 가장 높았다.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을 써낸 두산은 지분 전부를 인수하는 것으로 환산했을 때 6조4000억원을 제시했다. 이는 대형 인수·합병(M·A) 사례 가운데 1, 2위의 가격 격차가 가장 적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현재로선 금호는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일 뿐이다. 그러나 M·A에서 우선협상 대상자가 거의 그대로 최종 인수자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승부는 끝난 셈이다. 이로써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최대의 도약 발판을 마련했다. 금호아시아나는 자산 기준으로 일약 재계 8위(공기업과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 그룹으로 3단계 점프한다.



    신 부회장은 그 도약의 중심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2002년 빈사 상태의 금호건설 사장으로 취임해 과감한 경영 혁신을 통해 우량회사로 탈바꿈시켜놓지 않았다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인수 작업에 뛰어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호건설 관계자는 “2002년 당시만 해도 ‘금호건설이 곧 부도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이제는 거꾸로 다른 회사를 인수하게 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경사도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인가. 신 부회장은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발표를 앞둔 6월19일 건설의 날을 맞아 건설업의 정보화, 첨단화를 주도하는 등 건설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또 다음 날에는 금호건설이 한국능률협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대한민국 생산성대상 종합대상(서비스 부문)을 수상했다. 종합대상 수상은 건설회사로서는 금호건설이 처음이다.

    신 부회장은 지금은 국내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CEO(최고경영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사실은 국내의 대표적 CIO(최고 정보관리 책임자)다. 대한항공 재직 시절에는 국내 최초로 국제 온라인망을 구축했고, 88년 출범한 아시아나항공에 영입돼 시스템 담당 상무를 맡아 세계 최초로 ALCS

    (Airline Control System)를 도입하고 PC통신을 통한 항공 예약시대를 개척했다. 또 세계 두 번째로 인터넷 항공예약 시스템 개발을 주도했다.

    대우건설 집어삼킨 건설업계 승부사

    5월17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신훈 부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그는 정보통신 기기를 다루는 데는 국내 CEO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사람이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세대 못지않는 ‘엄지족’이다. 박삼구 회장 주재 회의 때 박 회장이 회사 관련 통계를 질문하면 그는 재빨리 담당 임원이나 팀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답을 알아낸 다음 박 회장에게 보고한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박 회장은 그때마다 “신 부회장은 어떻게 기억력이 그렇게 좋습니까”라고 감탄한다.

    그의 휴대전화를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그는 휴대전화에 7개 범주별로 1100명의 연락처를 일일이 저장해놓은 것은 물론이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만난 사람과 시간, 장소 등을 휴대전화에 담아놓는다.

    “한번 만난 듯한 사람과 마주 앉으면 재빨리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그 사람 이름을 검색해봅니다. 그런 다음 그에게 구체적인 날짜를 말하면서 ‘그때 아시아나컨트리클럽에서 같이 운동 한번 했죠’라고 운을 떼면 상대방은 놀라면서 아주 반가워하지요. 그러면 얘기를 아주 쉽게 풀어갈 수 있습니다.”

    그가 2002년 건설업체 사장으로 발령받자 주위에선 “진흙탕에 발을 들여놓았다”며 걱정했다. 그 자신도 처음엔 건설업체 사장 제의를 받고 망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금호엔지니어링 사장을 맡고 있던 그도 금호건설이 그룹 내에서 가장 사정이 좋지 않은 계열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1년 말 당시 병상에 있던 고 박정구 회장이 부르더니 금호건설을 맡으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경험도 없다면서 거절했습니다. 얼마 후 다시 한번 불러 ‘내가 생각이 있어서 맡으라고 하는 것이니 한번 열심히 해봐’라고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 부회장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박 회장의 숨은 뜻을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 그는 취임 후 과감하게 부실 자산을 매각하는 한편, 턱없이 낮은 원가 경쟁력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업체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처음엔 협력업체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닥쳤지만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회사 사정을 설명하면서 도움을 호소하자 그들도 점차 수긍하기 시작했다.

    시공능력 평가 순위 1년 만에 8계단 상승

    “당시 협력업체 수술을 원칙대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건설맨’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과거 협력업체 사람들과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맺지 않았고, 이 때문에 1000개 넘던 협력업체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결단을 쉽게 내릴 수 있었습니다. 고 박정구 회장이 왜 금호건설을 맡으라고 했는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금호건설 관계자들은 “협력업체 수술 과정에서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가진 신 부회장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됐다”고 말한다. 고 박정구 회장, 박삼구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경영하는 협력업체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보고를 받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두 회사를 정리하라’고 지시하는 과단성을 보인 것. 과거 사장들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이어서 회사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음은 물론이다.

    그는 구조조정과 함께 수익 모델도 적극 개발했다. 민자제안 사업과 환경 사업이 그것이다.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충주 공군기지 관사 건설 등을 통해 토목사업 실적을 쌓았다. 또 환경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신규 하수종말 처리장 등의 분야에선 실적 1위를 기록했다. 2006년은 해외 사업을 재기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구축할 예정이다.

    신 부회장의 이런 노력으로 금호건설은 매년 획기적으로 실적이 개선됐다. 2004년 17위에 그쳤던 시공능력 평가 순위가 지난해 9위로 8단계나 뛰어올랐다. 지난해 수주 실적도 2조2000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실경영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영업이익률이 2년 연속 10%를 넘어 건설업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재계에서 ‘골프 애호가’로 유명하다. 80년대 중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골프에 입문했지만 그는 1년 만에 70대를 쳐 주위를 놀라게 했다. 처음으로 필드에 나가 ‘가벼운’ 내기 골프에서 진 것이 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6개월간 매일 새벽과 저녁에 각각 2시간씩 연습하면서 ‘칼’을 간 끝에 두 번째 라운딩 때 80대를 기록했다. 그 후 6개월 만에 76타를 기록했다.

    “골프는 부지런해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분명 기복이 있는 운동입니다. 레이업을 해야 하기도 하고 과감히 도전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경영도 이와 흡사한 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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