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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슬근슬근 자급자족, 슬렁슬렁 보물찾기

즐겁고 신나는 취미, 집 가꾸는 맛에 산다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즐겁고 신나는 취미, 집 가꾸는 맛에 산다

즐겁고 신나는 취미, 집 가꾸는 맛에 산다

1 막힌 구들의 응급조치로 환풍기를 달았다. 2 쪽창에 격자문을 짜고 한지를 발라 밖에서 덧댔다. 3 먹어도 되는 것들로 천연 황토페인트를 바른다. 4 타일 본드를 바르고 나서 타일을 붙이는 모습. 순간마다 자신이 규칙을 정하는 재미가 좋다.

집을 손수 지으면 돌보고 가꿀 일도 그만큼 많다. 한겨울에는 물이 얼거나 수도관이 터지기도 한다. 태풍이 몰아치면 흙벽의 일부가 떨어지기도 하고, 구들도 오래되면 뜯어서 새로 놓아야 한다. 산골은 아파트처럼 관리사무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 주고 해결하려 해도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손수 지었듯이 직접 돌보고 가꿔야 한다. 하지만 이게 번거롭고 성가신 일만은 아니다. 나름 적당한 긴장감과 배움의 즐거움이 있다. 윌리엄 코퍼스웨이트는 자신의 책 ‘핸드메이드 라이프’에서 다음과 같이 좀 과격한 주장을 했다. ‘집을 가꾸는 일의 경이로움과 특권에 대한 감을 잃느니, 지금 있는 집을 다 태워버리고 동굴에서 사는 편이 낫다.’

먹어도 되는 것들을 페인트로 사용

경이로움과 특권까지 있는 줄은 잘 모르겠지만 집을 돌보고 가꾸는 일에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는 건 맞다. 사실 집을 꼭 가꿔야 하는 건 아니다. 완벽한 집이란 없다. 집이 기울었거나 비가 새지 않는 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살아도 된다. 우리 식구는 시골 빈집에, 그것도 방 한 칸만을 빌려서 4년이나 산 경험이 있기에 지금 집에 대해서는 그냥 감사하고 산다.

그런데 살다 보면 조금씩 고치거나 바꾸고 싶을 때가 온다. 같은 일이라도 때에 따라 다르다. 모든 걸 한꺼번에 완벽하게 하려면 고단한 일이 된다. 그러나 충분히 준비하고, 마음이 일 때 하면 그것은 배움의 과정이자 색다른 취미 활동이 될 수 있다. 방 쪽창에 한겨울이면 성에가 껴서 이를 없애고 싶다. 나무로 간단히 격자문(格子門)을 짜고 그 위에 한지를 바른 다음 쪽창에다 덧붙였다. 그랬더니 성에가 끼지 않는다. 얇은 한지 한 장의 힘이 놀랍기만 하다.

이 밖에도 집을 따뜻이, 또 밝게 하는 일은 많다. 외벽만 해도 하기 나름이다. 집을 처음 지었을 때 집 둘레 흙과 모래를 섞어 미장을 했다. 그래서 우리 집 벽 빛깔은 마당 흙과 비슷해 누렇지만 편안한 느낌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래가 조금씩 떨어지고, 나무 기둥과 벽 사이에 작은 틈새도 생겼다. 이를 메우면서 빛깔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생각이 있으면 어딘가에 길도 있는 법. 마침 천연 페인트를 알게 되었다. 바로 그거다. 천연 페인트의 재료는 다양하다. 밀가루, 우유, 찹쌀. 우뭇가사리…. 이들 재료의 공통점은 그야말로 천연이라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끓이거나 하면 쉽게 엉기는 성질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음식을 해 먹다가 그 고유한 성질을 알게 되고, 이를 건축에도 두루 적용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하고자 하는 건 천연 황토페인트. 황토를 물에 갠 다음 체로 고운 반죽만 내린다. 이를 찹쌀풀과 우뭇가사리 우린 물과 섞는다. 우뭇가사리는 접착성도 좋게 하지만 발수(拔水) 작용이 있어 비가 들이치는 걸 어느 정도 이겨낸다. 이때 정확한 비율을 맞추려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날 수도 있다. 좀 부족하더라도 분위기를 바꾸고, 또 나무와 흙벽 틈을 메우는 데 의의를 둔다. 찹쌀풀이 많이 들어가면 마르고 나서 실금이 생기기도 한다. 설사 잘 안 되었더라도 다시 그 위에 덧바르면 된다. 다만 이런 일을 하는 데는 날씨가 관건이다. 자재를 준비했다가 밤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날을 잡아 칠을 했다. 이제 붉은빛이 감돈다. 한결 활기찬 느낌. 칠하면서 작은 틈새를 발라준 만큼 집 안 보온도 더 잘되는 느낌이다.

타일을 바르니 구들장이 봐달라고 손짓

이렇게 집을 가꾸다 보면 은근히 재미있다.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보고 싶은 것이 자꾸 생긴다. 언제부터인가 집 가꾸기가 취미가 되었다. 예전에 즐겼던 운동경기나 바둑 같은 오락과는 견줄 수 없는 재미가 쏠쏠하다. 뭐라고 할까. 이제는 이미 짜인 규칙에 따르는 놀이는 재미가 덜하다. 기존의 오락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람이 반복해서 놀아나는 꼴이 아닌가.

그러나 집을 돌보고 가꾸는 활동은 아주 색다른 놀이이자 취미가 된다. 자신이 전적으로 주도한다. 무엇보다 혼자서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 할 때마다 자신이 필요한 규칙을 정하기에 뇌와 손을 자극하는 맛이 좋다. 새로운 영역을 자꾸 개척하는 취미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취미 활동의 결과물도 삶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요 며칠은 욕실 타일 붙이는 일을 했다. 옛날 집이 다 그랬듯 그동안 욕실에 타일을 제대로 붙이지도 않고 살았다. 그렇게 10여 년 지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오래되니 습기가 차고, 또 습기가 많이 몰린 곳에 검은 곰팡이가 피었다.

얼마 전부터 그게 눈에 거슬렸다. 마침 이웃이 새로 집을 지으면서 타일 붙이는 걸 보게 되었다. 아, 저것도 손수 하면 되는구나. 새로운 일인 만큼 배워야 할 게 많다. 타일 붙이기는 직접 하더라도 타일과 그 밖의 관련 재료를 사야 하니 돈도 제법 든다. 벽면과 타일 크기를 정확히 재는 일에서부터 뇌가 새롭게 움직인다. 타일을 붙이는 일도 새롭다. 벽에 먼저 붙인 타일이 흘러내리지 않아야 하며, 재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서리의 작은 타일을 적게 잘라도 된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취미 삼아 하니까 일이 아주 늦다. 꼬박 사흘 걸렸다. 이왕 하는 김에 욕실 대청소도 했다. 오랜만에 욕실이 환해졌다. 몸도 마음도 밝고 활기차다. 욕실에 들어설 때면 식구 모두 마치 도시 아파트에 온 것 같단다.

하나의 취미가 끝나기 무섭게 새로운 게 나타났다. 안방 구들이 10년이 넘어가니 조금씩 막힌다. 구들 속 열기가 지나가는 고래에 그을음과 재가 쌓이면서 막히는 낌새다. 급하게 환풍기를 달아 그을음을 뽑아냈더니 아쉬운 대로 몇 해는 더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준비가 되는 대로 구들을 다시 놓고 싶다. 집은 내게 취미거리가 떨어지지 않게 계속 대준다.



주간동아 2010.03.02 725호 (p74~75)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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