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양이 수염은 생존과 직결된다.
“아빠, 여기 좀 보세요.”
“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입술 근처.
“이거 수염 아닌가요?”
햐! 이 녀석 봐라. 몇 달 전부터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수염까지. 사춘기 때 일어나는 몸의 변화가 얼마나 설레었던가. 아이가 어른이 되는 징조.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갑자기 아득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잔치를 해주기로 했다. 콧수염을 기념하는 성장 잔치.
남자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징조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목소리로는 변성기, 고추와 입술 둘레에는 털, 그리고 몽정이 있다. 그런데 고추 털과 몽정은 본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모른다. 목소리도 본인이 소리를 내지 않으면 모른다. 반면에 콧수염은 가릴 수 없고, 숨길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다 알게 된다.
털과 수염에도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자라면서 아들처럼 수염이 나는 걸 찬찬히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사춘기는 잠깐의 설렘으로 끝나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긴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농사를 짓고, 자연과 가까이 살다 보니 수염도 다시 보게 됐다. 우리 주변에서 수염을 소중히 여기는 짐승이라면 고양이를 들 수 있다. 고양이는 틈만 나면 수염을 돌보고 가다듬는다. 그 이유는 생존능력을 높이기 때문. 수염으로 방향과 공간을 감지하고, 잡은 먹잇감의 순간적인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는 힘을 얻는다.
식물도 자세히 보면 작은 솜털이 많이 나 있다. 칡덩굴이 방향을 잡아 뻗어가는 데는 줄기에 난 솜털이 큰 구실을 하는 것 같다. 벼 낟알에는 강모라 부르는 작은 털이 있고, 벼 줄기에도 여린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다. 이 역시 벼가 땅에 뿌리내리는 데 그 나름대로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사람 몸에 나는 털도 나름의 역할을 하리라. 머리털은 머리를, 눈썹은 눈을 보호한다. 몸 전체에 있는 작은 솜털은 온도 변화를 감지하면서 몸을 보호한다. 그런데 수염은 왜 남자에게만 나는 걸까. 단순히 남성호르몬 때문이라는 설명으론 충분하지 않다. 그 고유한 뜻이 있으리라. 호기심에 수염을 몇 해 길러봤다. 수염이 조금씩 길어지자, 그 뜻도 하나 둘 느낌으로 다가왔다. 수염 역시 몸을 보호하되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입과 관련해 좀 특별한 거 같다.
아무래도 수염은 먹을거리와 관련이 많다. 콧수염이 길게 자라면 음식을 한꺼번에 많이 먹을 수가 없다. 숟가락에 음식을 가득 담아 입으로 가져가면 수염에 먼저 닿는다. 한입에 너무 많이 넣지 말라고, 턱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가 된다. 기름 범벅이 된 음식 역시 덜 먹게 된다. 기름기가 수염에 닿으면 끈끈한 느낌에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2 보리 까끄라기. 자신을 보호하고 자손을 번창하기 위해 진화했다. 3 볍씨에도 사람 몸처럼 보송보송한 털이 나 있다. 4 이리저리 뻗어가는 칡덩굴. 줄기에 난 털은 방향을 잡는 데 큰 구실을 하는 듯. 5 사춘기 청소년의 가뭇가뭇 콧수염.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순간이라 찰칵.
이 밖에도 입으로 흘러들어오는 이물질을 수염이 막거나 한 번 걸러준다. 이를테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나 땀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막아준다. 덩달아 수염은 땀을 지나치게 많이 흘리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여러 이유 때문인지 수염을 기르면 자신도 모르게 수염을 자주 쓰다듬게 된다. 그런데 수염이 남성에게만 나는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남성이 여성에 견주어 외부 환경과 더 많이 접하고, 위험에도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 자기 몸을 보호하면서 가족이나 집단의 먹이를 올바르게 조달하고자 하는 진화적인 이유일 것이다.
소박하지만 의미 큰 잔치
오늘날은 먹을거리를 마련하면서 인간이 갖는 고유한 감각보다 정보나 지식에 많이 의존한다. 그나마 대부분 돈을 주고 사서 먹게 된다. 그럴수록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전성은 커진다. 수염이 성가시다고 대대로 깎아도 퇴화하지 않고 계속 나는 건 어쩌면 수염이 우리가 모르는 어떤 기능을 하기 때문일 터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면서 여러 번 기쁨을 만끽한다. 출산에 따른 첫 만남, 첫 뒤집기, 첫 배밀이, 첫 말, 첫 걸음걸이…. 이렇게 아이가 성장하면서 처음으로 해내는 모습에 부모는 환호에 가까운 기쁨을 느끼고, 가끔은 잔치를 연다.
사춘기 역시 마찬가지. 아이가 어른으로 넘어가는 문턱이 아닌가. 성호르몬이 활발하게 생기면서 남자와 여자라는 고유의 성을 자각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몸 안에 아기 씨앗이 생기는 순간을 자각한다는 것은 성장과정의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잔치가 별것인가. 특별한 음식 하나 해서 마음을 나누면 되는 걸.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떡은 역시나 찹쌀떡. 이번에는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축하 뜻을 담기 위해 아내 의견을 찬찬히 들어가며 정성을 기울였다. 사춘기를 기념하는 잔치답게 특별히 대추도 넣었다. 상은 소박하지만 뜻은 크다.
아이를 의무로 키우면 반항기를 거친다. 반면에 권리로 키우면 아이는 반항이 아닌 발랄함으로 자신을 발산한다. 그러니 콧수염 잔치는 아들보다 먼저 아버지인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