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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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0% 모녀의 우울한 나날들

연극 ‘뷰티퀸’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0-02-04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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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0% 모녀의 우울한 나날들

    ‘뷰티퀸’은 매우 잔혹한 이야기로 공감대를 자극한다.

    연극 ‘뷰티퀸’(마틴 맥도나 작, 이현정 연출)의 배경은 아일랜드 리넨 언덕의 작은 농가다. 언뜻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 집은 개인의 힘으로 벗어나기 힘든 ‘고립’과 ‘굴레’를 상징한다.

    그곳에는 일흔 살 노모와 마흔 살 딸이 살고 있다. 그런데 모녀의 대화에는 독기 어린 가시가 돋쳐 있다. 이들은 매일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판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지지만, 둘 사이의 뿌리 깊은 미움과 화의 원인은 서로에게 있지 않다. 그것은 오랜 기간 영국에서 핍박받으며 지니게 된 피해의식, 떠나고 싶지만 벗어나기 힘든 고향에 대한 애증과 같은 무력감에 있다.

    주인공 모린은 젊은 시절 미인대회 ‘뷰티퀸’이지만 지금은 사회에서 소외된 채 악몽 같은 일상을 반복할 뿐이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산 12년간 누구 한번 자유롭게 만날 수 없었다. 어머니 매그는 매일 아침 싱크대에 볼일을 볼 정도로 정신줄을 놓았으나, 잠시라도 자신을 혼자 둘까 봐 딸에게 집착한다. 어느 날 모린이 어릴 때부터 관심을 둔 파토와 데이트를 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매그는 딸의 정신병력을 이야기해 훼방 놓는다. 그리고 파토가 영국에서 보내온 편지를 전달하지 않고 불에 태우기까지 한다. 편지에는 미국으로 함께 떠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뷰티퀸’은 매우 잔혹한 이야기로 공감대를 자극한다. ‘지금도 충분히 절망적인데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이 0%’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자락의 희망인 파토를 잃으면서 모린의 생활은 파멸된다. 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어머니는 원망스러우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태생을 상징한다. 모린과 매그의 관계는 오랜 기간 곪은 사회적 상처를 의미한다. 극은 모든 희망을 체념한 딸이 애증의 대상인 어머니의 습관을 답습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작품은 ‘현실감’이 강한 사실주의 연극이다. 무대 전환 없이 모든 사건을 거실에서만 진행한다는 점은 극사실주의적인 ‘엿보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극 중 딱 한 번 양식적인 연출이 이루어지는 곳이 있는데, 이 장면으로 극의 전체적인 톤이 사뭇 달라진다. 극의 말미에 초현실적으로 펼쳐지는 모린의 환상 장면은 그의 정신세계를 직접 어필하면서 주관적인 시점을 강화한다.



    작가 마틴 맥도나는 연극 ‘필로우맨’으로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연극에는 어머니와 딸 역의 홍경연, 김선영을 비롯한 연륜 있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2월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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