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프런티어 펴냄/ 486쪽/ 1만9000원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도 법칙이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하버드대 연구팀이 연구한 결과가 있다.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 연구’가 바로 그것. 1937년 시작해서 무려 72년간 진행한, 성인의 발달과 성장에 관한 최장기 ‘전향적’ 종단연구다. 연구 대상은 1930년대 말 하버드대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과 연구 진행과정에서 추가된 서민 남성 456명, 그리고 여성 천재 90명 등 총 814명. 이번 호에 소개하는 ‘행복의 조건’은 현재 이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하버드 의대 정신과 조지 베일런트 교수의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 연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글이다.
‘전향적 연구’란 연구 대상이 50대 때 20대 시절을 회고하는 방식이 아니다. 20대에 겪은 일은 20대, 30대에 겪은 일은 30대, 그리고 50대에 겪은 일은 50대에 기록하는 형식이다. 엄청난 재원과 연구원들의 끈기, 연구 대상의 협조가 필요한 만큼 이러한 연구를 완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하버드대 연구팀은 70여 년에 이르도록 연구를 이끌어왔다. 그리고 이 연구는 연구 대상의 마지막 한 명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막을 내릴 것이다.
책은 모두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 연구’의 여정과 정체성을 돌이켜보았다. 2장에서는 평생에 걸쳐 성인의 발달 개념을 제시하면서, 저자의 주된 연구주제이자 행복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변수인 ‘고통에 대처하는 자세’, 즉 적응적 방어기제(adaptive defense mechanisms)를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이어 3~6장에서는 성인의 발달 과정에 따라 성공적인 노화와 사회적 성숙을 논하며, 품위 있고 만족스러운 노년을 맞는 데 필수적인 과업, 즉 생산성, 의미의 수호자, 통합에 대해 고찰했다. 7~10장은 인생 후반전에서 중요한 요소를 제시했다. 첫째, 병에 걸리더라도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건강. 둘째, 퇴직한 뒤에도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창조성. 셋째, 지혜의 추구. 넷째, 정신적 숭고함을 가꿔가는 것이다. 마지막 11, 12장에서는 저자가 성인발달연구로부터 얻은 교훈을 요약했다.
하버드대 자료실에는 과연 우리가 찾는 ‘행복의 조건’이 있었을까? 하버드대 연구팀은 연구 대상자들이 70~80세에 이르면서 생의 마지막 10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는지 여부는 ‘50세 이전의 삶을 보고 예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과 불행, 건강과 쇠약함 등을 좌우하는 것이 사람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는’ 요인들이었다는 점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만드는 ‘행복의 조건’은 타고난 부, 명예, 학벌 따위가 아니었다. 행복의 조건 중 으뜸은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성숙한 방어기제)였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47세 무렵까지 형성돼 있는 인간관계였다. 나머지는 교육연수(평생교육), 안정적인 결혼생활, 비흡연(또는 45세 이전 금연), 적당한 음주(알코올 의존증 경험 없음), 규칙적인 운동, 알맞은 체중이었다.
1967년부터 이 연구를 주도해온 베일런트 교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어떠한 데이터로도 밝혀낼 수 없는 극적인 주파수를 발산하는 것이 삶”이라며 “행복이란 과학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숫자로 말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우며, 진단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애잔하고, 학술지에만 실리기에는 영구불멸의 존재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에게도 남은 평생 누릴 장기적인 행복감을 스스로 준비할 시간과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 구체적인 실천 명제를 이 책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끊임없이 배우고, 유머를 즐기며, 친구를 사귀면 된다. 그리고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는 동시에 일찍 귀가해 가족들 얼굴 한 번 더 본다면 그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하며 행복할 수 있다.
고리타분한 훈계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평생토록 밀착 조사한 것에 통찰을 더해 얻은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