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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은 ‘통계적으로’ 한물갔다?

통계학자 차경천 교수 “베이징올림픽 전후가 전성기, 재기 관건은 정신력”

박태환은 ‘통계적으로’ 한물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영웅인 국가대표 수영선수 박태환(20)이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에게 쏟아지던 찬사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충격과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 원인을 둘러싸고 비판과 변명이 무성하다. 아직은 전도양양한 이 어린 영웅에게 계속 기대를 걸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을 이제는 거둬주어야 할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박태환은 ‘통계적으로’ 한물갔다?

*2008년 8월10일 베이징올림픽 400m 경기 기록을 예측한 결과 박태환(당시 18.9세)은 224.31초, 경쟁자 해킷(당시 28.3세)은 224.63초로 박태환이 오차범위 안에서 약간 앞섰다. 박태환의 전성기 이후 기록예측곡선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통계학적인 예측기법을 스포츠 분야에 도입해 화제를 일으킨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차경천 교수를 7월28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만났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경영공학박사 출신인 차경천 교수는 일찍이 이승엽의 최고 홈런수 41개를 예측했고,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는 “박태환이 최소 은메달 2개는 딸 수 있다”는 통계학적인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과학동아’ 2008년 8월호 참조).

차 교수는 지난 6월 통계학 강의에서 ‘수영선수의 라이프 사이클과 기록 예측’ 모형을 예시하면서 “박태환 선수는 이미 전성기를 지났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는 전성기 직전이었기에 신이 내려준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과학적 통계예측으론 19.21세가 정점
박태환의 부진으로 국민의 충격과 실망이 크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기록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 안타깝다. 아직 어린 선수인데, 쏟아지는 비난과 헤어나기 어려운 좌절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박 선수를 만났을 때는 그의 전성기가 언제인지, 예상 기록이 얼마인지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다.”

박태환의 전성기는 언제였나.

“2005년 4월1일부터 2008년 4월20일까지 박태환의 기록을 통계학적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그의 전성기는 19.21세였다. 베이징올림픽 400m에서 우승한 날이 지난해 8월10일인데, 그때 박태환의 나이는 18.9세였다. 전문가들의 경험에 따르면 수영선수의 전성기는 19~20세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 경쟁자이던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는 23.1세였고, 호주의 그랜트 해킷은 28.3세여서 둘 다 전성기를 벗어나 있었다. 두 선수의 전성기는 20.24세였다.”

차 교수는 박태환의 기록을 추정하는 방정식을 보여줬다. 종목별 최고기록과 기록에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물이 들어온 안경, 25m짜리 수영경기장에서 스퍼트 효과가 미치는 영향 등)을 분자로 하고, 현재 나이와 전성기 나이의 차이가 미치는 영향을 분모로 한 수식으로 전성기 때 최고의 기록이 나오도록 설계한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3명의 선수 기록을 예측한 결과는 어떠했나.

“세 선수의 이전 기록들을 참고로 해서 분석한 결과 박태환이 200m에서는 펠프스에게 뒤지고, 400m에서는 해킷에게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1500m에서도 해킷을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노민상 감독에게 ‘박태환이 200m에서는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는 데 힘쓰고, 400m에서는 올인하고, 1500m는 자료가 부족해 분석 결과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해줬다.”

박태환은 ‘통계적으로’ 한물갔다?

차경천 교수

차 교수는 지난해 5월 초 노 감독에게 보여준 기록예측 그래프를 보여줬다(그래프 참조). 이 그래프를 보면 박태환의 기록예측곡선이 유독 가파른 데 비해 펠프스나 해킷의 기록예측곡선은 완만하다.

펠프스나 해킷은 전성기를 지나도 기록에 큰 변화가 없는데, 박태환은 전성기가 지나면 기록이 크게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수의 잠재력 때문이라고 본다. 박태환은 잠재력에선 경쟁자들에 비해 떨어져도 강도 높은 훈련과 정신력으로 전성기에 최고기록에 도달할 수 있었던 듯하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박태환은 새벽 4, 5시에 일어나 저녁 8시까지 수영 연습에 몰두한 것으로 안다. 펠프스 등 다른 경쟁자들은 수영클럽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연습했기 때문에 훈련량에서 절대적으로 차이가 났다.”

경쟁자들은 그렇게 즐기면서 연습을 하기 때문에 전성기의 기록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 아닐까.

“글쎄…. 한국 선수들보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고 영법(泳法)이나 수영복 등 여러 면에서 첨단 기법을 활용한 효과도 보지 않았겠나.”

박태환도 미국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스스로도 미국에서 훈련을 잘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최근 미국에서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듣지 못했다. 태릉에서 연습할 때보다 얼마만큼 강도 있게 훈련했는지도 알 수 없다. 또한 기록 단축에 도움이 되는 전신수영복에도 적응하지 못해 이번 대회에서 혼자만 입지 않았다고 하니 안타깝다.”

기록예측곡선은 어디까지나 통계치일 뿐, 박태환이 더 열심히 노력하면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체력과 정신력을 잘 관리하면 전성기의 기록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통계적 결과로 볼 때 박태환의 경우는 단순한 슬럼프라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통계적 수식(數式)에는 정신력이라는 변수가 반영돼 있지 않지만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박태환은 베이징올림픽의 영광에 만족하지 않고 더 분발할 수 있는 자기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젊은데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겠나. 주위에서도 그런 유혹들을 이기고 오로지 자기 관리와 연습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렇다 해도 아직 전성기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너무 일찍 기대를 접을 수는 없지 않나.

“내가 분석자료로 사용한 기록은 지난해 5월 이전에 얻은 것들로, 최근 연습 기록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차가 있을 수도 있다. 박태환의 기록에 대해 좀더 많은 자료를 얻으면 더 정밀한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차 교수가 사용한 통계적 기법을 스포츠 선수 관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나.

“스포츠는 분명한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통계적 기법을 활용하기에 좋다. 선수들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면 종목마다 선수들의 전성기를 예측해내고, 훈련기법이나 기록에 영향을 미치는 착용물 등에 의한 변화도 추정할 수 있다. 잠재력 있는 신진 선수 발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9.08.11 698호 (p72~73)

  • 안기석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da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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