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9

2008.04.01

“독도 영화, 스타들 손사래 한숨 나죠”

“몇 년이 걸려도 반드시 완성, 이제는 사명감 느껴”

  • 오진영 자유기고가 ohnong@hanmail.net

    입력2008-03-26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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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영화, 스타들 손사래 한숨 나죠”

    ‘개 같은 날의 오후’ ‘보리울의 여름’을 찍은 이민용 감독은 4년째 ‘독도’를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영화사입니다. 이름도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에서 따와 ‘파미르 컬쳐’라고 지었어요.”

    사무실은 정말 가파른 경사길 따라 한참을 올라간 서울 정릉동 꼭대기에 있었다. 북악스카이웨이 옆. 발아래로 황사에 잠긴 서울 시내가 보이는 이곳은 가정집 차고를 개조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새로 바른 벽지 냄새가 물씬 풍겼다. 엊그제 이사 와서 집기를 막 풀어놓은 상태라고 했다.

    홍순칠 수비대장과 33인 이야기 … 4년째 지지부진

    이민용(50) 감독이 차고에 영화사를 차린 것은 그가 4년째 고군분투하며 추진 중인 영화 ‘독도’(가제) 프로젝트 때문이다. 이 감독은 2004년 7월 ‘보리울의 여름’ 개봉 후 차기작을 물색하던 중 한 영화사 대표에게서 독도의용수비대 실화를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동의했다.

    “6·25전쟁 직후 행정 공백기나 다름없던 1953년에 민간인 신분으로 사설경비대를 만들어 56년까지 3년8개월 동안 일본 해경과 충돌하며 독도를 지켰던 홍순칠 수비대장과 울릉도 청년들로 구성된 33인의 독도수비대 이야기입니다.”



    독도수비대를 이끈 홍순칠(1929~1986) 대장의 부인이자 수비대 보급대원이었던 박영희 씨와 홍 대장이 생전에 쓴 수기 ‘이 땅이 뉘 땅인데’ 영화 판권 계약을 맺고 시나리오 작업을 마친 때가 2005년. 그 후 투자 유치와 배우 캐스팅에서 난관에 부딪혀 지금까지 4년째 답보 상태다.

    “규모가 큰 투자회사들 처지에서는 독도를 소재로 한 영화에 투자를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일단 이런 영화는 일본시장에 배급이 안 될 것이고, 자칫하면 일본시장에서 괘씸죄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합디다.”

    투자를 받기 위해 스타급 배우의 캐스팅도 시도했는데 역시 여의치 않았다. 그는 “2006년까지 2년에 걸쳐 정상급 배우들을 접촉해봤지만 다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섬과 바다에서 오랜 시간 고난도 촬영을 해야 하는 데다, 한류 열풍의 중심인 일본시장의 정서를 거스를 수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독도 영화, 스타들 손사래 한숨 나죠”

    2005년 영화 준비 과정에서 제작진과 독도 탐방을 한 이민용 감독(맨 왼쪽).

    결국 처음 제작을 제의한 영화사는 포기했고, 그 뒤에도 두 군데 영화사가 작업을 추진하다 무산돼 마침내 이 감독이 독도 프로젝트를 위한 영화사 ‘파미르 컬쳐’를 차리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하나뿐인 아파트를 담보 잡아 받을 수 있는 은행 대출은 한계에 이르렀고 주위 사람에게 빚도 꽤 많이 졌다.

    이렇듯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영화 ‘독도’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초 홍순칠이라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을 역사 속 영웅으로 조명하고, 외따로 떨어진 섬에서 혹한과 태풍을 견디며 일본의 침략을 막아낸 수비대원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감독으로서의 야심’에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지만,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동안 독도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서 이 영화가 꼭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는 것. 시나리오 집필 당시 독도를 방문해 희귀 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는 이 감독은 “독도는 우리나라 미래 번영을 약속하는 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독도를 차지하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도 우리 국민은 ‘설마 빼앗기겠어?’라고 태평하게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목표는 이 문제를 국제분쟁화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는 것인데,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어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것이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세계에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이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3기 출신으로 1995년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로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그해 청룡 대종 춘사 백상 등 국내 4대 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을 휩쓴 그는 2006년 아들 이삭(15) 군과 함께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19일간의 국토 종단을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감독의 사무실 벽 한쪽엔 ‘한미 FTA 저지, 스크린쿼터 사수’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모자를 쓴 그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써놓은 모자를 눌러쓴 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컴퓨터 화면을 열어 영화 시작화면에 자막으로 올리려고 써놓았다는 글을 보여줬다.

    “독도의 바위를 깨면 검붉은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 33인의 독도의용수비대원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울릉도에서 독도에 이르는 뱃길만큼이나 고된 난항을 겪으면서도 독도 프로젝트를 사수하겠다는 이 감독. 그의 얼굴에 사재까지 털고 가짜 징집영장을 만들어가며 수비대원을 모았다는 열혈 청년 홍순칠 대장의 모습이 잠깐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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