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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대포港 개발 과욕 탈 날라

항만 매립 주민들 기대 반 우려 반 … 수려한 해변 경관·어촌 분위기 깨지지 않을까 걱정

  • 속초=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속초 대포港 개발 과욕 탈 날라

속초 대포港 개발 과욕 탈 날라

대포항 주변 상가

속초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 봄기운이 완연한 대포항(속초시 대포동 소재)은 싱싱한 바다 향기를 따라온 상춘객과 미식가로 북적거렸다. 대포항에 늘어선 난전(亂廛·어민 가족들이 운영하는 무허가 노점상)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앉은 상인과 어민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고 있었다.

“손님이 갈수록 줄어들어요. 옛날엔 대포항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관심이 없어요…. 대규모 개발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손님이 늘지는 의문이네요.”

대포항 난전에서 수십 년째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해온 김모(42) 아주머니는 속초시가 추진하는 ‘대포항 종합관광어항’ 사업에 대해 우려 섞인 기대감을 나타냈다.

재정 확대 기회 사업 키운 속초시

90년대 후반 대포항은 국내 최초로 어항과 관광시설이 어우러진 환경친화적 다기능 종합어항으로 개발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2004년 초부터 본격적인 항만 매립 작업이 시작되자 주민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름에 잠기기 시작했다.



대포항 주민들이 거는 기대는 속초시가 주민들에게 약속해온 ‘현대식 항만과 상가시설’, 그리고 그 안에 주민들에게 제공될지도 모르는 ‘안정적인 땅’이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보다 ‘개발은 했는데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상업화에 실패하거나, 개발해놓은 터에 대자본이 유입돼 수십 년간 유지해온 자신들의 터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더 크다.

“그럼 개발에 반대하는가”라고 묻자 손을 휘휘 내젓는다.

“아니, 반대하는 게 아니라…” 하고는 말끝을 흐릴 뿐이다. 속초시와 조합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반대했다가는 훗날 용지를 불하받을 때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소시민의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속초시와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대포항을 “국내 제일의 설악산 관광지와 연계한 환경친화적인 국제해양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공언해왔다.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낙후된 어업 환경에 불만이 있었던 터라 이러한 공언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해수부는 1999년 ‘주민소득 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파제와 물양장(작은 부두), 그리고 매립지 등의 건설에 필요한 2만4000평 규모의 터를 조성하겠다며 435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내용의 충실성을 떠나 정부가 동해안 소도시에 관심을 갖고 ‘다기능 종합관광어항’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에 주민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속초 대포港 개발 과욕 탈 날라

대포항 개발계획 조감도

그런데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본격화하자 해당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인 속초시는 더 큰 그림을 그리며 밥상에 숟가락 하나를 더 올려놓았다. 해수부의 애초 계획보다 규모를 두 배 이상 확장한다는 야심찬 복안을 내세운 것. 3000평에 그치는 소항구가 단박에 20배 가까이 커지고, 상업용지는 12배 이상 넓어진다고 하니 주민들은 어리둥절했지만 반가웠다.

대포항을 개발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대포항이 동해안 북부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항구이기 때문이다. 설악산을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관례처럼 한번쯤 대포항에 들른다. 속초시로서는 대포항을 개발하면 수도권 등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포항 개발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모든 개발 사업이 그렇듯 어민과 지주, 난전 상인 등 대포항의 이해 관계자들 간에 난상토론이 벌어지며 쉽사리 의견이 통일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속초시는 자체 계획을 끌고 나가려고 했다.

해양 매립은 지주와의 다툼 없이 새 땅을 만들 수 있어 속초시는 좌고우면할 것도 없이 추진해볼 수 있었던 것. 매립으로 인해 새 땅이 생기면 땅을 조성한 속초시는 상당한 돈을 벌 수 있다. 강원도에서는 속초시뿐만 아니라 여러 지자체가 매립 기회를 넘보고 있었다.

그러자 지역 환경단체들이 반대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서해 새만금 사업의 사례를 거론하며 동해안 해안선의 보존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속초환경운동연합 이광조 전 사무국장은 “대포항 개발 계획은 환경영향평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고 있는 대포항과 외옹치 일대를 순식간에 파괴해버릴 수 있는 위험한 계획이다”고 말한다. 애당초 해수부 안으로 만족했어야 옳다는 지적이다.

환경인권문제연구소(daepo.or.kr)의 정윤창(54) 대표도 “바다 매립 이후 환경 변화에 대한 면밀한 조사나 주민 동의도 제대로 받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아 속초시가 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사업을 급조한 의혹이 짙다”고 주장한다.

애초 해수부는 속초시의 계획에 반대했다. 그러다 2002년 속초시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조건 아래 속초시의 새로운 개발안을 승인했다. 여기서 지역 환경단체들은 매립을 통해 수익을 올리려는 지자체의 의도를 해수부가 적절하게 통제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 속초시는 청초호 일대에 매립 사업을 펼쳐 시 재정을 확충했으나 그로 인해 청초호 일대가 난개발된 적이 있으므로 이를 의식한 지적이다.

“왜 주민들만 희생” 불신 토로

반면 주민들은 난개발보다 공허한 개발을 염려한다. 항만이 20배 가까이 확대돼 큰 어선이 들어오고, 상업지구가 12배로 확장돼 위락단지까지 조성됐는데 관광객이 오지 않으면 어찌하나 하는 근본적인 두려움인 것이다.

현재 대포항을 찾는 사람은 연간 100만명 정도. 이들은 보통 대포항 주변의 정취를 둘러보고 이튿날 일출을 보고 떠난다. 이 정도는 지금의 대포항 규모로도 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항구가 20배로 커지면 연 2000만명 정도 와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 것인지에 대해 주민들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2000만명은 고사하고 연 1000만명이라도 오면 대포항에 터잡은 어민과 상인들이 만족할 텐데 1000만명이라는 수조차 너무 커 보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외지의 대자본이 들어와 관광객을 싹쓸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시시때때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면서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다.

대포항 번영회의 김강수 회장은 “현재 속초시가 민간자본을 유치해 매립 작업을 하고 있는데, 최악의 경우 속초시가 재벌기업에 땅을 팔아버려 대형 수산물 유통단지라도 들어서는 날이면 주민들은 순식간에 땅도 뺏기고 일터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주민들이 시를 불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시가 주민보다 시 자체 수익사업에 치중하는 행태를 여러 번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 개발된 대포항 ‘주차장 시설’이 대표적인 예다.

대포항은 80년대 이후 관광객이 부쩍 늘어 공영주차장 신설이 숙원사업이었다. 이에 대해 속초시는 대포항 입구에 널찍한 주차장을 개발해놓고, 주민 중심이 아닌 시 수익사업으로 돌려버린 것. 게다가 조기에 주차장 개발비를 회수하기 위해 비싼 요금을 물려 관광객들이 대포항을 외면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대포항의 어민들은 “시가 주차장을 무료로 했다면 대포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수익은 더 올라갔을 것이다”며 지자체의 배 채우는 데 급급한 행태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한 수산물 중개인은 “관광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대포항의 매력은 대포항을 감싸고 있는 수려한 해변 경관과 시골 작은 어촌의 옛모습인데, 누가 청룡열차를 타기 위해 대포항에 오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김강수 회장은 주민을 대표하여 ‘속초시 대포항 개발사업’의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지만, 불만의 정도는 일반 어민들을 뛰어넘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이나 경기도 등 도심에서 사는 이들이 콘크리트 냄새 나는 뻔한 항구에서 무엇을 보고 싶겠습니까. 시는 개발안을 만들어 무조건 주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이런 분위기에 끌려갈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주민들의 반응도 폭발할 것 같습니다.”



주간동아 2005.04.12 480호 (p56~57)

속초=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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