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롯데그룹(이하 롯데)이 오비맥주 인수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2009년 4월. 하이트맥주와 함께 국내 맥주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통하는 오비맥주는 당시 인수금액만 20억 달러가 넘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첨예한 인수 경쟁 와중에 롯데 정책본부에서 느닷없이 맥주사업 ‘독자 진출론’이 흘러나왔다. “굳이 오비맥주를 인수하지 않더라도 롯데가 맥주공장을 설립해 맥주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독자 진출론의 파장은 상당했다. 일부에서는 인수 경쟁이 가열되면서 오비맥주 몸값이 치솟자 롯데그룹이 ‘김 빼기’ 차원에서 독자 진출론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롯데는 불과 몇 개월 전인 2008년 12월 ‘처음처럼’ 소주를 생산하는 두산주류를 치열한 경쟁 끝에 5030억 원에 인수한 뼈아픈 전례가 있었다. 당시 그룹 내부적으로 인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롯데는 오비맥주마저 분위기에 휩쓸려 비싸게 인수할 경우 감당하기 힘들다고 자체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롯데는 인수전의 마지막 베팅에서 몸을 사렸고, 2009년 5월 오비맥주의 새 주인은 KKR로 확정됐다.
아사히맥주로 ‘예습’ 끝
그 후 롯데가 독자 진출론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실현하기까지 꼬박 2년 10개월이 걸렸다. 롯데 계열사인 롯데칠성음료는 1월 충북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 충주신산업단지에 7000억 원을 투자해 2017년까지 9만9000㎡ 규모의 맥주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롯데가 이처럼 맥주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맥주사업을 롯데의 숙원사업이라고도 얘기한다. 그러나 2018년 국내 매출 200조 원을 노리는 롯데가 초기 매출 5000억 원도 힘든 맥주사업을 숙원사업으로 삼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이보다는 롯데가 주류사업의 포트폴리오 완성과 이를 통한 효율성 신장을 목표로 맥주사업에 진출하려 한다고 보는 전문가가 더 많다. 롯데는 현재 위스키(스카치블루)와 소주(처음처럼), 와인 등 3대 주류에 모두 진출했다. 하지만 맥주 부문이 아킬레스건이다. 맥주는 연간 2조 원에 달하는 시장이다. 롯데가 주류사업에서 맥주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마치 유통 사업에서 백화점은 있지만 대형마트는 없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롯데로선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무엇보다 사업 효율성을 누리지 못해 아쉬웠다. 그만큼 주류사업에서 소주와 맥주를 함께 생산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구조다.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지난해 말 합병해 하이트진로라는 주류 공룡 기업을 탄생시킨 것도 맥주와 소주의 시너지효과 때문이다.
국내 주류 시장은 철저히 도매상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소주와 맥주 2가지 주종을 모두 다루면 도매상을 상대하기에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소주가 약한 지역에서는 맥주를 내세우고, 맥주가 약한 지역에서는 소주를 앞세워 영업력을 보완할 수 있어서다. 롯데는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소매 유통사업의 강자이므로 맥주사업에 뛰어들기만 하면 일정 부분 판로가 보장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롯데는 맥주사업을 본격화하려고 이미 ‘예습’도 끝낸 상태다. 롯데칠성음료와 일본 아사히맥주가 공동 투자한 롯데아사히주류가 국내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롯데아사히맥주가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한 아사히맥주는 총 120만 상자로, 2005년 첫 판매 이후 매년 48%씩 급성장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아사히 생맥주 취급 점포 수는 전년 대비 500여 개가 늘어난 4000여 개로, 국산 맥주업체도 놀랄 정도다.
특히 롯데가 아사히맥주와 기술제휴를 해 롯데맥주를 생산한다면 품질 면에서 국산 맥주를 능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아사히맥주는 1987년 일본에서 슈퍼드라이라는 획기적인 신제품을 출시해 100년 전통의 기린 라거맥주를 누르고 판매량 1위에 올라선 바 있다. 국내 맥주업체가 롯데의 맥주 시장 진출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맥주 시장 1위인 아사히맥주의 기술력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일본 맥주가 국산 맥주에 비해 한 수 위인 것은 사실”이라며 “롯데가 아사히맥주와 어떤 식으로 제휴를 맺고, 어떤 맛의 맥주를 내놓느냐에 따라 예상외로 빨리 시장에 안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 맥주가 의외로 고전할 것이라는 부정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롯데는 국산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 0%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특히 한번 입맛이 길들여진 소비자는 맥주 제품을 쉽게 바꾸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의 점유율 추이를 보면 매년 1∼2%포인트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한 회사가 아무리 잘 팔아도 연간 2%포인트 이상 점유율을 높이기 쉽지 않다. 유독 한 제품만 찾는 소비자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 1%포인트를 높이려면 200억∼300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계산대로라면 롯데가 초기 10% 점유율을 달성하려면 수천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별도로 써야 한다.
애주가 입맛 바꾸기가 관건
롯데아사히주류가 7년간 쌓은 노하우도 어디까지나 수입 맥주 시장에서 달성한 것일 뿐 국산 맥주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있다. 아직 국내 맥주 시장에서 수입 맥주 시장은 점유율 5% 미만이다. 롯데가 맥주 시장에서 정면승부를 펼치려면 95% 이상을 차지하는 국산 맥주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해야 한다. 5%도 안 되는 수입 맥주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국산 맥주 시장에서도 롯데가 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롯데 충주공장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충주공장은 설비 면적과 투자비용 등을 감안할 때 연 생산량이 40만kL 정도다.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인 오비맥주의 연 생산량(128만kL)의 31% 수준이다. 롯데가 충주공장을 100% 가동하고 생산량을 전량 판매한다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두 자릿수 점유율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의 견제도 심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맥주 시장은 양사의 상위 10개 브랜드가 이끌어간다”며 “롯데가 11번째 브랜드를 내놓는다고 해서 소비자가 크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가 공장 완공 후 맥주 생산에 나서는 것은 2017년 이후인데 경쟁업체가 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벌써부터 하이트맥주는 제품 다변화 전략으로 수십 종의 신제품을 추가로 내놓는다는 복안을 세웠다.
일부 전문가는 이 같은 복합적인 이유로 롯데가 독자 진출은 선언했지만 롯데 맥주 탄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지나친 투자비용 탓에 인수합병이라는 지름길 대신 독자 진출 카드를 다시 꺼낸 롯데가 앞으로 맥주 시장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까. 어찌 됐든 소비자 처지에선 맥주 고르는 재미가 더 쏠쏠해질 전망이다.
첨예한 인수 경쟁 와중에 롯데 정책본부에서 느닷없이 맥주사업 ‘독자 진출론’이 흘러나왔다. “굳이 오비맥주를 인수하지 않더라도 롯데가 맥주공장을 설립해 맥주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독자 진출론의 파장은 상당했다. 일부에서는 인수 경쟁이 가열되면서 오비맥주 몸값이 치솟자 롯데그룹이 ‘김 빼기’ 차원에서 독자 진출론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롯데는 불과 몇 개월 전인 2008년 12월 ‘처음처럼’ 소주를 생산하는 두산주류를 치열한 경쟁 끝에 5030억 원에 인수한 뼈아픈 전례가 있었다. 당시 그룹 내부적으로 인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롯데는 오비맥주마저 분위기에 휩쓸려 비싸게 인수할 경우 감당하기 힘들다고 자체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롯데는 인수전의 마지막 베팅에서 몸을 사렸고, 2009년 5월 오비맥주의 새 주인은 KKR로 확정됐다.
아사히맥주로 ‘예습’ 끝
그 후 롯데가 독자 진출론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실현하기까지 꼬박 2년 10개월이 걸렸다. 롯데 계열사인 롯데칠성음료는 1월 충북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 충주신산업단지에 7000억 원을 투자해 2017년까지 9만9000㎡ 규모의 맥주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롯데가 이처럼 맥주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맥주사업을 롯데의 숙원사업이라고도 얘기한다. 그러나 2018년 국내 매출 200조 원을 노리는 롯데가 초기 매출 5000억 원도 힘든 맥주사업을 숙원사업으로 삼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이보다는 롯데가 주류사업의 포트폴리오 완성과 이를 통한 효율성 신장을 목표로 맥주사업에 진출하려 한다고 보는 전문가가 더 많다. 롯데는 현재 위스키(스카치블루)와 소주(처음처럼), 와인 등 3대 주류에 모두 진출했다. 하지만 맥주 부문이 아킬레스건이다. 맥주는 연간 2조 원에 달하는 시장이다. 롯데가 주류사업에서 맥주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마치 유통 사업에서 백화점은 있지만 대형마트는 없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롯데로선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무엇보다 사업 효율성을 누리지 못해 아쉬웠다. 그만큼 주류사업에서 소주와 맥주를 함께 생산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구조다.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지난해 말 합병해 하이트진로라는 주류 공룡 기업을 탄생시킨 것도 맥주와 소주의 시너지효과 때문이다.
국내 주류 시장은 철저히 도매상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소주와 맥주 2가지 주종을 모두 다루면 도매상을 상대하기에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소주가 약한 지역에서는 맥주를 내세우고, 맥주가 약한 지역에서는 소주를 앞세워 영업력을 보완할 수 있어서다. 롯데는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소매 유통사업의 강자이므로 맥주사업에 뛰어들기만 하면 일정 부분 판로가 보장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롯데는 맥주사업을 본격화하려고 이미 ‘예습’도 끝낸 상태다. 롯데칠성음료와 일본 아사히맥주가 공동 투자한 롯데아사히주류가 국내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롯데아사히맥주가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한 아사히맥주는 총 120만 상자로, 2005년 첫 판매 이후 매년 48%씩 급성장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아사히 생맥주 취급 점포 수는 전년 대비 500여 개가 늘어난 4000여 개로, 국산 맥주업체도 놀랄 정도다.
특히 롯데가 아사히맥주와 기술제휴를 해 롯데맥주를 생산한다면 품질 면에서 국산 맥주를 능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아사히맥주는 1987년 일본에서 슈퍼드라이라는 획기적인 신제품을 출시해 100년 전통의 기린 라거맥주를 누르고 판매량 1위에 올라선 바 있다. 국내 맥주업체가 롯데의 맥주 시장 진출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맥주 시장 1위인 아사히맥주의 기술력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일본 맥주가 국산 맥주에 비해 한 수 위인 것은 사실”이라며 “롯데가 아사히맥주와 어떤 식으로 제휴를 맺고, 어떤 맛의 맥주를 내놓느냐에 따라 예상외로 빨리 시장에 안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 맥주가 의외로 고전할 것이라는 부정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롯데는 국산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 0%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특히 한번 입맛이 길들여진 소비자는 맥주 제품을 쉽게 바꾸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의 점유율 추이를 보면 매년 1∼2%포인트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한 회사가 아무리 잘 팔아도 연간 2%포인트 이상 점유율을 높이기 쉽지 않다. 유독 한 제품만 찾는 소비자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 1%포인트를 높이려면 200억∼300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계산대로라면 롯데가 초기 10% 점유율을 달성하려면 수천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별도로 써야 한다.
애주가 입맛 바꾸기가 관건
롯데아사히주류가 7년간 쌓은 노하우도 어디까지나 수입 맥주 시장에서 달성한 것일 뿐 국산 맥주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있다. 아직 국내 맥주 시장에서 수입 맥주 시장은 점유율 5% 미만이다. 롯데가 맥주 시장에서 정면승부를 펼치려면 95% 이상을 차지하는 국산 맥주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해야 한다. 5%도 안 되는 수입 맥주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국산 맥주 시장에서도 롯데가 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롯데 충주공장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충주공장은 설비 면적과 투자비용 등을 감안할 때 연 생산량이 40만kL 정도다.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인 오비맥주의 연 생산량(128만kL)의 31% 수준이다. 롯데가 충주공장을 100% 가동하고 생산량을 전량 판매한다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두 자릿수 점유율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의 견제도 심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맥주 시장은 양사의 상위 10개 브랜드가 이끌어간다”며 “롯데가 11번째 브랜드를 내놓는다고 해서 소비자가 크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가 공장 완공 후 맥주 생산에 나서는 것은 2017년 이후인데 경쟁업체가 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벌써부터 하이트맥주는 제품 다변화 전략으로 수십 종의 신제품을 추가로 내놓는다는 복안을 세웠다.
일부 전문가는 이 같은 복합적인 이유로 롯데가 독자 진출은 선언했지만 롯데 맥주 탄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지나친 투자비용 탓에 인수합병이라는 지름길 대신 독자 진출 카드를 다시 꺼낸 롯데가 앞으로 맥주 시장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까. 어찌 됐든 소비자 처지에선 맥주 고르는 재미가 더 쏠쏠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