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은 보건의료와 사회보장, 사회복지 등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꼭 필요한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복지 정책의 메카’다.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보사연은 각종 복지 제도와 정책을 연구하고 제안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복지 민주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촉매제 구실을 했다.
국민이 안정된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모두 보사연 손을 거친 제도다.
6월 14일 보사연 김용하 원장을 만나 보사연이 걸어온 지난 40년을 돌아보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복지 정책이 필요한지 들어봤다.
▼ 올해로 보사연 출범 40년이 됐다. 보사연이 지나온 길을 간략히 소개해달라.
“보사연은 우리나라 최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출범하고 넉 달 뒤인 1971년 7월 문을 연 가족계획연구원을 모태로 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성장은 KDI가 책임지고, 인구문제는 가족계획연구원이 맡으라’는 취지로 가족계획연구원을 세웠다. 지금이야 저출산이 사회문제지만, 당시만 해도 급팽창하는 인구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었다.
1975년 이후 인구가 줄어드는 대신 국민건강과 보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엔의 지원을 받아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을 세웠고, 거기서 지금의 의료보장체제를 만들었다. 가족계획연구원과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을 인구보건연구원으로 통합해 한동안 유지하다, 1989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의 연구 기능까지 더해 지금의 보사연을 출범했다.”
▼ 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가장 큰 보람은 보사연 위상을 높인 것이다. 그동안 보사연은 보건복지 연구 분야 싱크탱크로만 기능했을 뿐, 어젠다를 리드하진 못했다. 내가 원장에 취임한 이후 정책연구 성과가 자주 언론에 등장했고,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
또 하나는 오랜 자료를 복원해 디지털시대에 맞게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다. 보사연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연구하려고 3년에 1번씩 출산력 조사를 실시하는데, 최초 조사는 1974년 이뤄졌다. 당시 미국 하와이대 부설 동서문화센터에서 샘플링과 분석기법 등 인구조사 방법론을 배워 실시한 것이다. 그때 만든 자료를 슈퍼컴퓨터에서 사용하던 릴테이프에 저장했다. 이후 저장매체가 바뀌었는데 호환이 안 돼 자료가 대부분 사장됐다. 원장 취임 이후 이 과거 자료를 찾아내 복원했다. 슈퍼컴퓨터에서 사용하던 릴테이프를 국내에서는 읽을 수가 없어 미국으로 보내 과거 자료를 재생해냈다.”
출산율 높이기에 정책 초점 맞춰야
▼ 김 원장은 보건 분야 외에도 다방면에서 정책 자문에 참여해왔는데.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연관 분야를 감안하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 잘못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게 된다. 내 전문 분야는 연금과 사회복지다. 전문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면서도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그런 노력 덕에 어느 자리에 가든 균형 잡힌 얘기를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책을 제언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처한 전체 상황을 깨닫고, 그 바탕에서 합리적 제언과 조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제도와 정책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보건복지 수준은 어디쯤 와 있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26위 정도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사회보장비의 비중은 2010년 기준 9% 수준이다. OECD 평균이 19%인 것을 감안한다면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에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겠지만, 점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
▼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복지 분야에 투입하는 재정을 비생산적이라 보기도 한다.
“글로벌시대에는 국가 경쟁력이 중요하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우리나라 장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은 11%고, 복지선진국 스웨덴은 18%다. 그런데 40년 뒤면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이 38.6%로 늘어나고, 스웨덴은 28.3%가 된다. 스웨덴은 지금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인구구조를 젊게 가져가려고 GDP의 3%를 쏟아 붓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GDP의 0.3%만 쓴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되겠나. 인구구조가 젊어져야 국가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가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지금 당장 인구구조 변화에 투자해야 한다. 사회보장비를 늘리자는 것이 지금 당장 나눠먹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를 강한 국가로 만들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이 더 건강하도록 투자해야 의료비가 감소하고, 저출산에 돈을 써야 인구구조가 건강해진다. 또 교육에 투자해야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
▼ 미래에 대비하는 것도 좋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달라는 국민의 요구가 높다. 대표적인 주장이 ‘반값 등록금’ 문제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회보장 수준을 끌어올리는 문제는 국가가 중·장기 종합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나가야 할 문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목소리 큰 사람의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가의 중·장기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무엇보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자면 보육비 부담을 덜어주고 교육에 더 많이 지원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0~5세 무상보육과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확대를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반값 등록금 문제가 튀어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대학에 가는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목소리 큰 순서대로 아니라 정말 중요한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국민이 안정된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모두 보사연 손을 거친 제도다.
6월 14일 보사연 김용하 원장을 만나 보사연이 걸어온 지난 40년을 돌아보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복지 정책이 필요한지 들어봤다.
▼ 올해로 보사연 출범 40년이 됐다. 보사연이 지나온 길을 간략히 소개해달라.
“보사연은 우리나라 최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출범하고 넉 달 뒤인 1971년 7월 문을 연 가족계획연구원을 모태로 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성장은 KDI가 책임지고, 인구문제는 가족계획연구원이 맡으라’는 취지로 가족계획연구원을 세웠다. 지금이야 저출산이 사회문제지만, 당시만 해도 급팽창하는 인구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었다.
1975년 이후 인구가 줄어드는 대신 국민건강과 보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엔의 지원을 받아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을 세웠고, 거기서 지금의 의료보장체제를 만들었다. 가족계획연구원과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을 인구보건연구원으로 통합해 한동안 유지하다, 1989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의 연구 기능까지 더해 지금의 보사연을 출범했다.”
▼ 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가장 큰 보람은 보사연 위상을 높인 것이다. 그동안 보사연은 보건복지 연구 분야 싱크탱크로만 기능했을 뿐, 어젠다를 리드하진 못했다. 내가 원장에 취임한 이후 정책연구 성과가 자주 언론에 등장했고,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
또 하나는 오랜 자료를 복원해 디지털시대에 맞게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다. 보사연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연구하려고 3년에 1번씩 출산력 조사를 실시하는데, 최초 조사는 1974년 이뤄졌다. 당시 미국 하와이대 부설 동서문화센터에서 샘플링과 분석기법 등 인구조사 방법론을 배워 실시한 것이다. 그때 만든 자료를 슈퍼컴퓨터에서 사용하던 릴테이프에 저장했다. 이후 저장매체가 바뀌었는데 호환이 안 돼 자료가 대부분 사장됐다. 원장 취임 이후 이 과거 자료를 찾아내 복원했다. 슈퍼컴퓨터에서 사용하던 릴테이프를 국내에서는 읽을 수가 없어 미국으로 보내 과거 자료를 재생해냈다.”
출산율 높이기에 정책 초점 맞춰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 정책의 메카’임을 강조하는 김용하 원장.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연관 분야를 감안하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 잘못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게 된다. 내 전문 분야는 연금과 사회복지다. 전문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면서도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그런 노력 덕에 어느 자리에 가든 균형 잡힌 얘기를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책을 제언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처한 전체 상황을 깨닫고, 그 바탕에서 합리적 제언과 조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제도와 정책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보건복지 수준은 어디쯤 와 있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26위 정도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사회보장비의 비중은 2010년 기준 9% 수준이다. OECD 평균이 19%인 것을 감안한다면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에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겠지만, 점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
▼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복지 분야에 투입하는 재정을 비생산적이라 보기도 한다.
“글로벌시대에는 국가 경쟁력이 중요하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우리나라 장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은 11%고, 복지선진국 스웨덴은 18%다. 그런데 40년 뒤면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이 38.6%로 늘어나고, 스웨덴은 28.3%가 된다. 스웨덴은 지금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인구구조를 젊게 가져가려고 GDP의 3%를 쏟아 붓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GDP의 0.3%만 쓴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되겠나. 인구구조가 젊어져야 국가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가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지금 당장 인구구조 변화에 투자해야 한다. 사회보장비를 늘리자는 것이 지금 당장 나눠먹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를 강한 국가로 만들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이 더 건강하도록 투자해야 의료비가 감소하고, 저출산에 돈을 써야 인구구조가 건강해진다. 또 교육에 투자해야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
▼ 미래에 대비하는 것도 좋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달라는 국민의 요구가 높다. 대표적인 주장이 ‘반값 등록금’ 문제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회보장 수준을 끌어올리는 문제는 국가가 중·장기 종합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나가야 할 문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목소리 큰 사람의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가의 중·장기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무엇보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자면 보육비 부담을 덜어주고 교육에 더 많이 지원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0~5세 무상보육과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확대를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반값 등록금 문제가 튀어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대학에 가는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목소리 큰 순서대로 아니라 정말 중요한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