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5

2009.09.29

공직비리 척결 ‘시퍼렇게 선 칼’

대만, 천수이볜 부부 종신형 선고로 부패 엄벌 전통 이어가

  • 홍순도 언론인·작가 mhhong1@hanmail.net

    입력2009-09-23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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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열린 1심 재판에서 천수이볜(陳水篇) 전 대만 총통이 부인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받자 국내외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이 가운데 주류를 이루는 의견은 단연 ‘정치적 쇼’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한국에서처럼 감옥에서 몇 년만 고생하면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공직부패사범의 처벌에 관한 한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는 한국이라면 이게 분명 정답이다.

    또 이런 시각을 따르자면 천 전 총통은 상고심에서 더 가벼운 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건 대만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공직자 비리사범에 대해서는 조직폭력 범죄만큼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대만의 전통이나 관련법을 알고 나면 이런 예상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얘기다.

    밀수한 조카며느리에게 권총 보낸 장제스

    대만 정부의 전신인 20세기 전반기의 대륙 국민당 정부는 부정부패로 유명했다.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미국이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이 이끄는 공산당의 홍군을 토벌하라고 국민당 정부에 지원해준 최첨단 무기가 하루 이틀 뒤 엉뚱하게 국민당 군을 조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사실만 거론해도 충분하다. 당시의 국민당 군대가 오합지졸이라는 뜻으로 ‘장제스(蔣介石) 군대’-우리말로 하면 ‘당나라 군대’-로 불린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랬으니 국민당 군은 ‘보이지 않는 전쟁’인 첩보전에서도 이길 턱이 없었다. 국민당의 첩보원들은 공산당 내부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반면, 공산당 첩보원들은 국민당 최고위층 주변에 득시글거렸다. 국민당 관료들의 경우 돈이나 여자를 동원해 매수만 하면 무슨 정보든 흘려줬으니 말이다. 요즘 중국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첩보 드라마 ‘첸푸(潛伏)’는 바로 그 무렵 국민당에 침투,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첩보원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장제스 전 총통은 자신이 이끄는 국민당 내부가 ‘물 반, 고기 반’일 만큼 부패 관리로 가득 찼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눈치 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국공 내전 막바지를 제외한 전 기간 동안 압도적인 전력을 보였음에도 1949년 대만으로 쫓겨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봉착했던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기는 했으나 대만에서 그는 분노의 칼을 휘둘렀다. 하기야 대만의 국력을 키워 대륙을 수복한다는 자신의 염원을 실현하려면 늦기는 했어도 그래야 했다.

    게다가 더 이상 공직부패를 용인했다가는 민심이반에 따른 사회불안으로 대만까지 공산화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장제스의 뒤늦은 자각에 처음으로 희생당한 속죄양은 놀랍게도 그의 친인척이었다. 우선 당시 권력층이라면 누구나 손댔던 밀수로 한밑천 챙긴 조카며느리가 호되게 당했다. 여론이 좋지 않자 그가 권총이 든 상자를 선물로 보낸 것이다. 야사(野史)에는 조카며느리가 이때 권총자살을 했다고 전해지나, 비리 혐의로 체포돼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뿐 아니다. 국민당 인사부장이라는 고위직까지 지낸 육촌동생은 형이 전개한 대대적 사정 정국에 휘말려 사형이라는 횡액까지 당했다. 장제스 총통이 죄질 나쁜 비리, 부패혐의 공직자들을 수송기에 싣고 태평양 상공에서 바다에 내던졌다는 끔찍한 얘기까지 그럴듯하게 포장돼 전해내려오는 것은 다 이런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장 전 총통의 뒤늦은 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실을 거뒀다. 공직비리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대만 정부는 이에 자신을 얻어 이후 부패방지법 제정에 나섰다. 1963년 제정한 전시부패방지법이 대표적이다. 불법 금품수수와 횡령죄를 저지르는 공직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률이었다. 실제 처형당한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했으나 10년 이상의 징역을 산 비리공직자가 1년에 수십 명 있었던 것을 보면 엄격하게 법이 적용된 것만은 분명하다.

    1972년에는 이에 더해 공직자의 행동강령을 규정한 ‘혁신 요구 10항목’이라는 원칙도 생겨났다. 공직자에 대한 향응 금지, 관혼상제 통지 금지, 환송 및 환영 금지 등의 원칙이 주 내용이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1990년대에는 수시(守時), 수분(守分), 수법(守法), 수신(守信), 수비(守秘)를 강조한 이른바 오수(五守) 원칙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시간, 분수, 법, 신뢰, 비밀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 윤리강령인 셈인데, 오늘날 공무원 복무법의 근간이 됐다고 보면 된다.

    물론 법이 아무리 강력하고 사회 전반이 ‘청렴 모드’라 해도 부패한 공직자는 나오게 마련이다. 부패 일소와 개혁을 부르짖은 것이 주효해 총통으로 당선, 연임까지 한 천수이볜 같은 정치지도자도 권력의 맛을 보자 타락의 수렁으로 빠져들지 않았는가. 하지만 천 전 총통의 사례에서 보듯 그 대가는 엄청나다.

    직무 관련 부정부패 최소 징역 5년

    공무원 복무법의 처벌 규정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이른바 도리죄(圖利罪·이익을 도모한 죄) 처벌 조항인 이 규정에 따르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부정부패를 저지른 공직자는 최소 징역 5년 이상의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 부당한 이득에 대한 추징금 외의 벌금 역시 엄청나다. 법에서는 3000만 대만달러(11억원) 미만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공직비리를 감시하는 기관만 해도 사법 기능까지 지닌 감찰원을 비롯해 경찰, 검찰 등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대만의 이런 시스템과 법률을 벤치마킹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금세기 들어 대만 공직사회는 더욱 깨끗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정부패 및 비리 혐의로 적발되는 공직자 수가 이전의 절반인 연 100여 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만 정부의 통계다. 당연히 이들은 대부분 징역 5년 이상의 중벌에 처해졌다. 사실상 사회에서 매장됐다고 봐도 된다.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다음 재직 때보다 더 잘나가는 공직자들이 판을 치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자주 비교되는 대표적인 나라다. 한국이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다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일부 국수주의자들이 들으면 대단히 기분 나쁠지 모른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공직자들의 청렴도에 관한 한 기분 나빠야 할 사람은 대만인들이다. 전 주한 대만대표부 샤오강청(蕭剛成) 참사관도 “한국은 거의 모든 면에서 대만보다 앞서 있다. 그러나 청렴도에서는 차이가 많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한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드물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그만큼 부패는 국가나 사회 발전에 암적인 존재다. 천 전 총통의 재판을 계기로 대만에게서 배울 것은 배우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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