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다국적 커피 전문점인 ‘스타벅스’만 해도 매일 세계 각지에서 평균 4.5개 점포를 열고 있고, 편의점 프랜차이즈 ‘세븐일레븐’도 최대 호황일 때 하루 6개의 매장을 열었다고 한다.
물론 부작용도 생겼다.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 골목 하나를 마주하고 동일 매장이 들어서기도 하고 동종 업종이 한곳에 몰리면서 망하는 매장도 등장했다. 과연 어디에 점포를 내면 무분별한 경쟁을 피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성균관대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와 카이스트 정하웅 교수는 복잡한 물리현상을 규명하는 복잡계 분석기법으로 인구에 따라 각종 시설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분석,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복잡계’란 수많은 독립적인 존재, 또는 현상이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거시적 특성이나 질서를 보이는 현상이다. 흔히 ‘창발현상(emergence)이 일어나는 세계’라 정의한다. 작은 요인이 전혀 다른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뜻하는 나비효과가 대표적인 사례).
서울 중구엔 학교가 턱없이 부족
사람이 많이 몰리는 기차역과 버스정류장, 대형 쇼핑몰 주변에 편의점이나 커피 전문점, 식당이 밀집한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병원이나 학교 같은 공공·공익시설도 사람이 많은 곳에 몰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공공시설물은 사람이 많은 지역에만 몰리지 않는다. 대형 건물과 백화점, 시장이 밀집한 서울 중구의 경우 학교가 다른 구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만 봐도 그렇다.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그 이유를 밝히기로 했다. 공공시설과 상업시설을 골고루 갖춘 미국의 도시들을 분석 대상에 올렸다. 인구수와 시설 분포 사이의 관련성을 수치로 표현한 ‘축적지수’라는 개념도 만들었다. 축적지수가 크면 클수록 인구수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연구진이 진행한 시뮬레이션은 커피 전문점처럼 이윤을 남기는 시설의 축적지수는 1에 가깝게, 병원·학교 같은 공공시설은 3분의 2에 가깝게 나왔다.
이윤추구시설은 인구가 2배로 늘면 2배로 함께 늘어야 하는 데 비해, 공공시설은 1.6배만 늘어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같은 계산법을 미국의 시설별로 적용한 결과 공립학교는 0.69, 경찰서는 0.71, 소방서는 0.78이라는 값을 얻었다. 반면 사립학교는 0.95, 개인병원은 1.13으로 이윤추구시설의 축적지수 1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다. 미국의 사립학교나 개인병원은 사람이 밀집한 곳에 많이 들어서는 데 비해, 경찰서나 소방서는 사람이 많이 살든 적게 살든 골고루 세워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의 보건소에 이 지수를 적용한 결과 0.09라는 수치가 나왔다는 점. 축적지수가 0에 가까우면 인구분포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 국내 공공의료시설이 비교적 골고루 분포해 낙후한 지역까지 잘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인구와 시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시설의 성격이 공익형이냐, 이윤추구형이냐에 따라 분포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 시설이 분포한 상황도 거의 일치했다.
미국의 개인병원(A)과 공립학교(B) 분포도. 개인병원은 인구밀집 지역에 모여 있는 반면 공립학교는 고르게 분포했다. 연구팀은 이어 미국 지도에 나타난, 인구밀도에 따른 이윤시설(C)과 공공시설(D) 2000개 위치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추적했다. 이윤추구시설은 인구가 많은 동부와 서부 해안 일대에 집중된 반면 공공시설은 비교적 전역에서 균일하게 보인다.
상업시설은 물건을 팔 고객이 많은 곳을 찾아 몰릴 수밖에 없는 데 비해, 공공시설은 이용자 수보다 편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구밀집 지역에 마구잡이식으로 점포를 늘리기보다는 인구와 교통량, 상권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매장을 적절히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복잡계 연구, 경제·경영분석 틀로 활용
축적지수로 시설의 성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미국 공립학교는 공공시설의 특징을 보이는 반면, 사립학교는 인구분포에 민감한 이윤추구시설과 유사한 값을 보였다. 미국의 개인병원들도 공익 측면보다 방문고객 수에 기반을 둔 이윤추구시설에 가깝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증명됐다.
무분별한 공공시설의 통폐합이 가져올 문제점도 발견됐다. 무엇보다 ‘이동거리’가 중요한 경찰서, 소방서 같은 공공시설을 인구분포 중심으로 설립할 경우 50% 이상 거리가 멀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공공시설을 정해진 원칙 없이 마구잡이로 배치하면 50% 이상의 사회비용이 더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리학의 한 영역에 그치던 복잡계 연구는 이처럼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틀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분야가 경제학과 경영학이다. 2005년 발생한 ‘한국발’ 국제 금융쇼크는 복잡계 현상의 전형적 사례다. 사태는 한국은행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외환보유고의 투자대상 통화 다변화 계획을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로이터, JP모건 등 주요 외신과 투자평가사들이 이 계획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불과 사나흘 사이에 세계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한국의 통화 다변화정책이 주요 달러화 보유국인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타전되면서 달러화 가치가 동반 급락했다.
이 사건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 유로화 위상 강화,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 증대라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한 나라 정책의 미시적 요동이 증폭되면서 금융시장 혼란이라는 거시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나비효과 모델로 설명된다. 복잡계 연구는 실제로 기업의 이윤추구에서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1987년 미국 거대 금융기업인 씨티그룹은 세계적인 복잡계 연구소인 산타페연구소에 거액의 연구기금을 제공해 주식시장 변동 예측모델을 연구하게 한 바 있다.
1984년 설립된 산타페연구소가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적인 두뇌집단으로 성장한 것은 기업의 이 같은 전폭적 후원 덕분이다. 자연과학 외에 경영·경제 분야에서 복잡계 연구가 활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복잡계 연구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은 미국뿐 아니다. 금융이 발달한 영국과 이웃나라 일본, 중국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국내에서는 경제·경영 분야를 제외하고는 복잡계 연구가 정치나 사회·문화 현상을 바라보는 분석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학계에서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유사 학문을 하는 연구자들끼리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05년 삼성경제연구소를 비롯해 포스텍, 카이스트 등 학계 전문가가 복잡계 네트워크를 출범시키면서 연구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