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류 아나운서
한 손에 수첩, 다른 손엔 마이크를 쥐고 카메라 앞에 서기만 해도 팬들은 물론 선수들까지 설레게 하는 두 명의 ‘얼짱녀’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가 그들이다.
스포츠의 매력을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색다르게 포장해 선사하는 KBS N 김석류(26)·송지선 (28) 아나운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한마디로 ‘달콤 살벌한 자화자찬 플러스 알파’. 가톨릭대에서 의류학을 전공한 송지선 아나운서는 원래 의류 머천다이저가 꿈이었다.
그러다 유학을 준비하던 어느 날 문득 유학 갈 돈으로 아나운서 학원에 한 달만 다녀보겠다고 마음을 다졌고 결국 이 길을 택했다. 한양대 생활과학부를 졸업한 김석류 아나운서는 건축가가 꿈이었다.
일본 와세다대 교환학생으로 선발됐을 만큼 열의를 보였지만 미련을 버리고 방송의 길로 들어섰다. 두 아나운서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시청률이 한 자릿수인 케이블 스포츠 채널의 아나운서지만 지명도와 인기는 지상파 방송의 유명 아나운서 못지않다.
이들이 현장을 누비자 방송 노출에 인색하던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미디어에 다가갔다. 그중에서도 두 아나운서와 가장 많이 접촉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송지선 “선수들의 호기심이 ‘적나라하게’ 느껴져요. 강민호, 홍성흔(이상 롯데) 선수는 왜 자기랑 인터뷰 안 하느냐고 얘기하기도 해요.
진갑용(삼성) 선수도 장난으로 제게 면박을 주면서 인터뷰 요청을 해요. 그간 프로 선수들이 자신을 알리는 데 무관심했는데 이젠 그런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깨알 메모 내공으로 팬 갈증 해소
올해 인기 절정인 프로야구 무대에서 두 미녀의 활약은 도드라진다. 5개월여의 페넌트레이스 기간에 팬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매일처럼 각팀 선수와 감독의 속사정이며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야구를 모르면 할 수 없는 일.
경기마다 수훈 선수에게 한두 개의 질문을 던지는 게 다지만 행여 골수 팬들에게 지적받지 않을까 싶어, 또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전문성을 살려나가기 위해 경기 전 감독과 선수들을 만나 지식을 얻고 경기 내용도 9회까지 빠짐없이 모니터한다. 두 아나운서의 수첩은 깨알 같은 메모로 가득하다.
김석류, 송지선 아나운서의 야구수첩. 깨알 같은 메모가 ‘내공’을 느끼게 한다.
송지선 “경기 상황을 구체적으로 메모해요. 예를 들어 유격수를 스치고 간 안타면 유격수 어느 방향으로 빠졌는지, 그 타구를 좌익수가 어느 위치에서 잡았는지까지 적어놔요.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뿐 아니라 팀 전체로서 아쉬웠던 상황도 정리하죠. 노트만으로는 모자라 작은 메모지를 여러 장 사용하는데, 이건 석류가 알려준 비법이에요.”
김석류 “꼼꼼한 지선 언니처럼 일일이 볼 카운트까지 기록하진 않아요. 대신 양팀 라인업을 적고, 거기다 각 선수의 플레이나 대표 기록을 써놓고 질문지를 만들어요. 급하게 선수 인터뷰할 땐 이 노트가 큰 도움이 되죠.”
이렇게 땀을 쏟다 보니 어느새 ‘야구 박사’가 돼갔다. 그러나 나름의 고충도 생겼다. ‘야구’가 눈에 보이면서 그만큼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송 “전문가가 보는 야구와 팬이 보는 야구의 차이를 알게 된 거죠. 저는 그 중간쯤에 있으니 혼란스러워요. 질문을 준비하다 ‘혹시 이 얘기는 팬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복잡해지는 거죠.”
김 “올해 들어선 팬들이 모르는 얘기도 많이 알게 됐거든요. 구단 사정이나 선수 개개인의 고민 같은 것이죠. 그래서 어디까지 얘기하고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아요.”
자! 두 분도 이제 야구 전문가인데 만약 야구 국가대표팀 공동감독으로 임명돼, 베스트 9를 뽑는다면?
송 “국제대회에선 적응력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외야수는 김현수(두산), 이용규(기아)….”
김 “또 한 자리엔 이진영(LG)이 있겠네요.”
송 “포수는 박경완(SK), 진갑용 선수를 꼽겠어요. 내야수는… 참 어렵네요. 좋은 선수가 너무 많아서. 그래도 1루수엔 국제대회에 강한 김태균(한화) 선수를….”
김 “수비섭(기아의 최희섭을 지칭) 선수도 있잖아요.”
송 “2루수는 정근우(SK), 유격수는 아직은 박진만(삼성) 선수가 필요하다고 봐요. 3루수는 이범호(한화) 선수.”
김 “3루수엔 김상현(기아)… 김상현… 김상현!”
김·송 “투수는 하나 둘 셋, 봉중근(LG)! 사심 가득 넣어서, 호호.”
송지선 아나운서
김 “지난해 박재홍(SK) 선수와 인터뷰하면서 ‘홈런 1위 오르셨네요’라고 축하를 했는데 박 선수가 ‘아닌데요’라고 해서 당황했죠. 또 심수창(LG) 선수가 결혼한다는 소문을 듣고 방송에서 결혼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심 선수가 깜짝 놀라며 부인했어요. 주변분들 얘기 듣고 물어본 건데, 사실이 아니었던 거죠. 그 사건을 계기로 제가 직접 확인한 게 아니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요.(웃음)”
경기 전 더그아웃 들어왔다고 소금 뿌려
송 “작년에 뜻하지 않은 소문이 번져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연예 스캔들 기사 보면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그 중심에 서니까 정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더라고요. 선수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을 우연히 들었는데, 그땐 정말 야구에 대한 믿음도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이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죠.”
김·송“(갑자기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선수들이 하는 얘기, 저희에게 다 들어와요. 호호.”
게다가 아직 야구판에 여성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럴 때마다 두 사람은 여성 스포츠 캐스터가 되려는 꿈의 한계와 현실의 벽을 느낀다.
송 “경기 직전 모 구단 더그아웃에서 선수와 인터뷰를 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석류가 같은 구단 선수와 인터뷰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팀의 한 코치가 전날 제가 경기 전 더그아웃에 들어왔다고 석류가 간 날 소금을 뿌렸다는 거예요.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한계를 온몸으로 느낀 사건이었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두 사람은 오뚝이처럼 일어선다. 이젠 ‘그러려니’ 하는 여유가 생겼다. 스스로 마음을 열고 현실에 적응하려는 마음가짐이 강한 추진력이 돼준다.
김 “더는 1년 전의 ‘들뜬 아이’가 아니죠. 이젠 미래가 그려져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절박함도 느낍니다. 방송을 하고자 했을 땐 쇼핑호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대본이 없고, 곧바로 피드백이 오는 스포츠 캐스터의 매력이 제 성격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송 “지난해 힘든 일을 겪으면서 긴 호흡으로 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스스로를 자유스럽게 열어놓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려 해요. 내공을 쌓다 보면 그걸 스포츠에 접목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죠.”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예쁘다. 그렇지만 진정 아름다운 건 그들의 끝없는 도전이다.